2010.11.28 구 통영청년단회관
통영시 서문로 21에 위치한 ‘구 통영청년단회관(舊 統營靑年團會館)’은 2002년 5월 31일에 등록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관리하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이 건물은 줄곧 충무고등공민학교, 통영 서도회사무실, 재단법인 통영사연구회, 통영문화원이 새 청사로 이전하기 전까지 입주하여 사용한 곳이다.
이 건물은 3·1운동 이후 박봉삼(朴奉杉:1875~1936) 열사를 초대 단장으로 하여 통영 애국 선각자들이 성금을 모아 민족의식 고취와 자생적인 사회계몽운동을 하고자 건립한 회관이다.
우리나라 청년단체들의 조직화와 활동의 역사적 배경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과 3·1운동에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경남지역의 청년단체는 1921년에 79개로 증가 되었다. 당시 통영은 총 4개의 청년단체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 통영청년단회관을 건립하기 위해 이영재(李永宰)는 대화정 238번지(문화동)의 남새밭 254평을 건립부지로 희사했고 단원들은 각자 일일씩 건축공사에 노동을 분담하였다. 건물은 여황산 자락의 호주선교사 집 두 채를 지었던 중국인 기술자에 의해 기초공사가 시작되었다. 3대 단장인 임철규(林轍圭)는 아우 임창규(林昌圭)와 합의 하여 문중전답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건축비 전액을 희사했다. 1919년 7월 21일부터 시작된 건축공사는 1923년 11월 18일까지 약 5년에 걸쳐 이루어 졌다.
일제의 온갖 방해와 자금난을 무릅쓰고 1923년 대지 254평에 120평의 2층 벽돌집이 건립됐다. 건물은 정면 가운데에 현관을 둔 좌우 대칭형으로 1,2층 모두 수직창이 나란히 배치된 붉은 벽돌 건물이다.
5대 단장인 방정표(方正杓)를 마지막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될 때까지 10여 년간 항일운동의 본거지였다. 일제에 의해 해산된 후 소유권분쟁이 있자 1945년 3월 30일 임철규는 건물과 대지를 통영읍에 기부하여 영구보존토록 하였다.
건물의 내부는 일부 수리를 하여 변형되었으나 외형은 원형이 보존된 상태이다. 실용적이고 작식이 억제된 근대 기능주의 건축경향을 띠고 있으며 일제의 탄압에도 꿋꿋하게 민족정신을 계승해 온 통영근대사의 산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및 참조
통영시지 제2권-통영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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