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생각하다

단절의 역사에 허덕이는 창원시에 제안

천부인권 2018. 8. 5. 17:09

 

 

 

2017.9.27 창원향교 석전대제 아헌관 임무를 수행하는 허성무 현시장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를 통합해야 한다고 시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주장하고 강제적으로 통합에는 성공했지만 갈등만 증폭시킨 현재 의창구 지역 국회의원 박완수씨나,
이왕 통합 되었으니 광역시 해야 한다고 수백억 혈세를 쓰고도 성공 못한 안상수씨는 한 번도 창원의 역사적 근거나 통합의 진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지 이 도시는 왜 통합해야 하는지, 통합 이후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당시 한나라, 새누리당의 꼭두각시가 되어 창원시를 자신들의 출세에 이용만 했다.
이들이 만약 창원의 역사를 이해하고 통합해야하는 진짜 이유를 설명했더라면 지금의 폭삭 망한 창원시 꼬라지가 아니라 아주 진취적인 도시로 이끌었을 것이다.

 

 

 

 

창원군지 속의 창원군 약도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옛 지역을 되찾은 창원시에는 어떠한 자원과 지형과 문화와 사람이 있는지 그들은 알려하지 않았다. 창원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모르는데 어찌 아름다운 생각과 발전적인 방향이 기획될 수 있었겠는가.
창원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들을 보게 되면 창원대도호부의 역사를 쓴 ‘창원부읍지’, ‘웅천읍지’, ‘진해현지’ 등이 있고 이후 120여 년간 우리의 힘으로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의 창원 역사는 일본총독부의 기록 등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쓰진 역사를 우리는 부끄럽게 조심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창원시가 자신들의 역사가 무엇인지 기록할 생각도 못했던 때에 기록 역사의 단절을 아쉬워해 개인의 입장에서 유당(攸堂) 김종하(金鍾河) 선생은 5년간 창원시 전역을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여 ‘창원군지(1962년)’를 발행했다. 이 책은 창원군의 연혁·산천·고적·인물 및 금석문을 기록한 향토역사지이다. 1책에 상·하 2편으로 나누어서 서술하였는데, 상편에는 자연환경을 포함한 문화 현상을 기록하였고, 하편에는 각종 헌·루·정(軒·樓·亭)의 기문과 금석문 등의 자료를 수록했다.


상편에는 서문·창원군 약도·총론 외에 제1장 건치 및 연혁, 제2장 산악·하천·도서, 제3장 고적·명승, 제4장 지석묘군과 패총, 제5장 단묘 및 공해, 제6장 교원·사우 및 학교, 제7장 제언·교량·도로, 제8장 방리, 제9장 마산시, 제10장 진해시, 제11장 호구 및 전부, 제12장 토산 및 진공, 제13장 창고, 제14장 진보·봉수·관방·구역원·목장·시장, 제15장 누대·정제, 제16장 사찰 및 능묘, 제17장 관안, 제18장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하편에는 기(記)·서(序)·양송(樑頌)·비지(碑誌)·전장(傳狀)·잠명(箴銘)·상향축문(常享祝文)·제영(題詠) 등을 원문대로 수록하였다.

 

100년간의 창원 역사를 빼버리지 않으려면 창원시는 비록 개인의 열정에 의해 발행 된 책이지만 ‘창원군지(1962년)’의 원문해석과 발행은 필수적인 일이 될 것이다. 전통시대의 역사서와 근대의 역사서를 잇고 창원시가 발행한 ‘창원시사’와 접목하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명실 공이 창원의 역사서가 될 것이다. 이처럼 완전한 모습의 창원을 알게 되면 지금 우리는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명쾌하게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양에 사는 사람들은 창원이라는 도시에 대해 갑자기 기계공업도시로 꾸며진 신도시이며 기네스북에 올라있다는 상남동의 유흥가만 기억할 뿐이다. 창원이라는 도시가 어떤 역사에 근거해서 발전해온 것이며 앞으로 어떤 문화와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에 주목받는 도시가 될 것인지에 대해 지금부터 역사의 교훈에 힘입어 연구하고 발전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창원의 역사, 문화, 자연, 환경, 지리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알아야 발전의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및 참조]

창원군지-국제신보출판사(1962) 김종하
디지털창원문화대전-창원군지 최헌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