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창원 북면 감계리 청송심씨 감의재 鑑義齋

천부인권 2019. 2. 2. 19:39



△2019.2.1 북면 내 감계리의 청송심씨 감의재 풍경


2019.2.1. 창원향교지에 실린 재·누정(齋·樓亭) 기문(記文)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감의재기(鑑義齋記)를 보고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감2길 12에 위치한 청송심씨 재실인 감의재를 무작정 찾아 나섰다. 인터넷 상의 실마리를 찾아 조롱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감의사(鑑義祠)를 찾으면 될 것으로 믿고 그곳으로 갔다. 다행히 감의사를 관리하는 분을 만나 감의사 경내도 구경하고 목적지인 감의재(鑑義齋)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었다.
감계리는 외감계와 내감계리로 구분되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천지개벽을 하여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옛 내감계리는 빌딩 숲에 끼인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상한 마을로 보인다. 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마을에는 폐가옥이 늘고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마을은 파괴될 것이다. 그런 위태로운 마을로 변해가는 내감계마을에는 청송심씨와 동래정씨의 재실이 있다. 다행히 청송심씨의 감의재는 문이 열려 있어 구경을 하고 사진으로도 기록했다.




△북면 청송심씨 감의재



△감의재 외삼문에 달린 숭모문 편액



△정면에서 본 청송심씨 감의재



△감의재 편액



△감의재 주련


감의재의 외삼문에는 ‘숭모문(崇慕門)’이라 편액했고 본당에는 감의재(鑑義齋)라 현판 했다. 가문의 정신을 상징하는 주련은 이렇게 적었다.
[해문-조여 이현호(調汝 李絃浩)]


繼述祖先之偉業  선조의 위대한 사업을 잇고 계술(繼述)¹⁾하고
擴大傳家之名聲  가문에서 전하는 명성을 키우고 넓히며
齋嚴以獻百世享  재계하고 엄숙하여 백세토록 제향을 올리고
敦睦以講一本情  돈독하고 화목하여 한 집안의 정을 익혀라.


【주석】

繼述(계술)¹⁾ :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줄인 말로 선대의 뜻을 이어가고 사업을 잘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청송심씨 감의재기 편액


鑑義齋記
追遠報本人之大禮也 此義不啻鏡鐵分明 而自葛伯之類蠢動節文 潛消惟靑松沈門 能脫風靡奉先侈業何其盛也 盖其上世勳業蟬聯大明國朝 如靑城伯德符靑川府院君溫靑松府院君澮 俱入黃閣名耀彤靑其後忠惠公連源翼孝公鋼溫陽公仁謙繼踵登揚歷數人家復誰加焉哉 溫陽七代孫 贈司僕寺正鐥自密陽始居昌原之鑑湖 爵臺山鎭于後籠山盤于案蛟龍山 天柱九龍白月諸峯 羅列遠近中有村 曰鑑湖 桑麻稻黍年登四野誦詩講禮日課 堂庭眞有考槃之趣 又以八景題詠興懷 龍峯瑞月 兎岩落照 達川流觴 籠岩樵笛 鑑湖霽月 花山歸霧 新基龜泉 䨨谷龍湫 若是之湖山 勝區豈無風月之主人 寺正公之移卜必有由以 而公擧五丈夫今纔廟盡雲仍數百善人之居古地 而昌大天之有命理之明的 今公六代孫奎燮將建齊宿之所 欲伸如在之誠乃與 性燮載鳳茂燮載浩辨燮幷力推進 盖擧公五子之孫之各一也 揭齋曰 鑑義名有意義嗚呼 人之追遠蒸嘗固宜其氣禪血受者之道理 則當仁不讓者然當此忘本壤禮日增之時 猶惓惓於奉先裕後庶乎 其不負乃祖嘉謨至訓者 軟不侫以 其族相弼有輔仁曾 其累世先事撰述 今又復傳之屬 自顧蔑矣 而仍念謀忠善事略以爲伸誠於祖先者可以解憂 則從玆以往必蒙無涯之吉祥所 謂祖先饗之子孫 保之者果在此歟
開天四三二一年 戊辰 小滿節 恩津 宋貢鎬 撰
昌原市 北面 鑑溪里 靑松沈氏 齋室


감의재기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것은 사람의 커다란 예이니 이 의(義)는 거울 보듯 분명할 뿐만 아니라 빈천(貧賤)하고 무뢰한(無賴漢)의 무리가 준동(蠢動)¹⁾하여 예절에 관한 문장이 없어졌으나 오직 청송심씨의 가문에서는 능히 그러한 풍조에서 벗어나 조상을 받들고 업적을 이룬 것이 어찌 그렇게 성대하였을까?
대게 윗대의 훈업이 끊임없이 이어져 조선조에서 크게 이름을 남겼으니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와 청천부원군 온(溫)과 청송부원군 회(澮)가 모두 정승으로서 조정에 이름을 빛냈고 그 뒤 충혜공 연원(連源)과 익효공 강(鋼)과 온양공 인겸(仁謙)이 뒤를 이어 유명하였으니 어느 가문이 이보다 낫겠는가. 온양공의 7대손으로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된 선(鐥)은 밀양에서 처음으로 창원의 감호(鑑湖)로 와서 살았다. 작대산이 뒤에 있고, 농산이 앞에 있으며 교룡산과 천주 구룡 백월 등 여러 산봉우리가 원근에 나열된 가운데에 마을이 있으니 감호(鑑湖)라 부른다. 농사를 주로 지어 해마다 사방의 들에서는 풍년이 들고 시례(詩禮)를 강송(講誦)하는 것을 일과로 삼으니 당정(堂庭)에 진실로 고반(考槃)²⁾의 취미가 있고 또 팔경(八景)을 시로 짓고, 회포 풀며 용봉의 상스러운 달과 토암에 지는 해와 달천에서의 유상(流觴)³⁾과 농암의 나무꾼이 부르는 피리소리와 감호(鑑湖)의 개인 하늘의 달과 화산(花山)으로 돌아가는 안개와 신기구천(新基龜泉)⁴⁾ 추곡용추(䨨谷龍湫)⁵⁾ 이와 같이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어찌 운치 있는 주인이 없으리오.
시정공(寺正公)이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며 공께서 아들 다섯을 두어 지금 먼 친척이 되었으나 그 자손 수백명이 옛 땅에 살면서 창대해 졌으니 하늘은 명이 있는 것이고 이치는 분명하고 정확한 것이다. 지금 공의 6대손 규섭(奎燮)이 재숙하는 곳을 지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드리고 성섭(性燮) 재봉(載鳳) 무섭(茂燮) 재호(載浩) 변섭(辨燮)과 더불어 힘을 합하여 추진하였으니 다 공의 다섯 자제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씩이다. 재실의 간판을 감의(鑑義)라 하였으니 이름에 의의가 있도다.
아아! 사람들이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의당 자손 된 도리이니 착한 일은 내가 먼저 실천하여야 할 것이나 지금 근본을 잊고 예의를 망각하는 일이 날로 증가하는 때에 부지런히 조상을 받들고 그것을 후손에 전달하여 준다면 거의 내 할아버지의 아름답고 지극하신 교훈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일가 상필(相弼)과는 서로 격려하고 도와 덕을 닦은 친구로서 일찍이 여러 조상의 일에 이미 글을 지은 적이 있었으나 지금 또 다시 규섭의 부탁을 받고 스스로 돌아보건대 글을 할 줄 모르나 충성스럽게 하는 일을 생각하고 조상에 정성을 펴는 것을 대략 적어서 걱정을 풀게 하였으니 지금부터 반드시 끊임없이 좋고 상스러운 일을 받게 될 것이며 이른 바 조상이 흠향(歆饗)하고 자손이 보호한다는 것이 과연 여기에 있는 것이로다.
개천 4321년(1998) 무진 소만절에 은진 송공호(宋貢鎬)가 지음
창원시 북면 감계리 청송심씨 재실


【주석】
준동(蠢動)¹⁾ : 無知한 사람이 비밀리에 어떤 일을 책동함.
고반(考槃)²⁾ : 은둔처를 만들어 유유자적하는 일.
유상(流觴)³⁾ : 음력 3월 3일 곡수(曲水)에 잔을 띄워 보내어 그 잔이 자기 앞에 돌아오기 전에 시를 읊어 시재(詩才)를 겨루던 고사.
신기구천(新基龜泉)⁴⁾ : 신기(새터)마을에 허목 미수선생이 손수 만든 ‘달천구천(達川龜泉)’이라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된 우물을 말한다.
추곡용추(䨨谷龍湫)⁵⁾ : 추곡의 용추 협곡을 말한다.




△감의재 팔경


출처 및 참조
창원향교지 하-창원향교(2004.11)-대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