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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면 오서리 서대마을 밀양박씨 구천정사 龜川精舍

천부인권 2019. 9. 26. 06:00



2019.9.16 진전면 오서리 밀양박씨 구천정사(龜川精舍) 외부 전경



2019.9.16 오서리 구천정사 대문 등용문



구천정사 대문 등용문 편액



구천정사(龜川精舍) 내부 모습


창원시 진전면 오서리 760번지는 2012년 11월 29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55호로 지정된 “창원 구천정사(昌原 龜川精舍)”가 있는 곳이다. 구천정사(龜川精舍)는 옛 진해현에서 고성군으로 가는 국도 14호선이 가로지르는 좌측에 위치한다. 14호선의 우측에 형성된 오서리 서대마을과는 뚝 떨어져 GS주유소 뒤편 와우산(190m) 가장자리에 홀로 건립된 150년의 세월을 지닌 와가 고택이다.
구천정사의 쪽문 앞에는 안내판이 서있는데 그 내용은 『창원 구천정사 신암(新庵) 박련홍(朴連弘;1556~)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1864년에 중건한 재실이다. 박련홍은 고성에서 출생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1579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크게 물리쳤다.
정면 6칸 측면 1.5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지붕의 양측에는 1칸 규모의 마루를 부가하고 상부에 눈썹지붕으로 마무리한 형태이다. 정면에는 3칸 규모의 대문채인 등용문(登龍門)이 있으며 마당의 한켠에는 박련홍의 신도비와 신암공의 후손 처사 영환과 연환의 비도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이곳은 장군의 향사(享祀)뿐만 아니라 지방 유림들의 교육장, 일제강점기에는 3.1독립운동을 태동한 장소이며, 이 고장의 교육기관으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구천정사(龜川精舍) 내 신암공신도비와 후손 처사 영환과 연환의 비



구천정사(龜川精舍) 정면



구천정사(龜川精舍) 편액




龜川精舍記-[原文]
龜川精舍在鎭海治西竹谷坊 卽大司馬新庵朴公 藏修遺址 而一方人士相興建學 肄業如院之制者也 鳴呼日月逝矣 人事嬗矣幾何 而戊辰之撤矣 又幾何而天下之變 遂不可復問矣 公之曰忠曰孝新川座銘 曁戒子箴槩可想像 而方八年塗炭之日 內懷衷革之志 外施敵愾之勇 神駒神劍胎天之授 而竟至馬浦之殉 天意有未可諶矣 超除崇貤朝家之優 渥盡矣旣無所於 俎豆數間精舍巋然獨存歲久而記 則修之汚則墁之所 不可己者也 後孫漢鉉燾鉉兩君 恤焉滄桑之感動之堂 構之思迺於丙子之秋謨于 宗修之鐫 其記揭之要 余相其役 噫其勤矣 是豈輪奐觀哉 亦豈爲山川煙雲之云乎哉 惟是先王之寵恩不敢忘也 先公餘烈不敢墬也 雖然世皆遑遑將無曰時詘而擧贏乎 患不苦心耳親力而前而己時之早 此不論也 此則諸公之志而材 又其焉苟然者何廢之不興 而何缺之不補哉 凡天下之必復者 豈止一畝之宮哉 諸公之識其事己 而余爲之識其志
嘉善大夫掌隷院少卿原任奎章閣副提學
延安 李炳觀 記


[해문]
구천정사기(龜川精舍記)
구천정사(龜川精舍)는 진해현의 서쪽 죽곡로(竹谷里)에 있는데 바로 대사마(大司馬) 신암박공(新庵朴公)의 유품을 보관했던 장소로 한 지방의 인사가 서로 학문을 일으켜 학업을 익힌 것이 서원(書院)의 제도와 같았다.
아아!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는 잘 이어 왔는데 어찌하여 고종(高宗) 무진(戊辰;1868)년에 훼철 되었는가.
또 어찌하여 천하가 변하여 정사(精舍)에 대하여 다시 묻는 사람이 없어졌는가? 공이 말씀하신 충과 효는 신천(新川)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자손들에게 경계(警戒)한 잠언(箴言)임을 개략적(槪略的)으로 상상(想像)할 수 있는데 바야흐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의 팔년전쟁(八年戰爭)에 안으로는 충성(衷誠)되게 개혁(改革)의 뜻을 품고 밖으로는 적개(敵慨)의 용맹(勇猛)을 베풀어 말을 잘 달리고 칼을 잘 씀은 천품(天稟)인데 마침내 마포(馬浦)에서 순절(殉節)하였으니 하늘의 뜻도 믿을 수 없구나.
조정(朝廷)에서 높은 벼슬을 내린 것은 나라에서 은혜(恩慧)를 다하였다. 향사(享祀)를 받들 수간(數間)의 묘우(廟宇)가 없고 정사(精舍)만 우뚝하게 홀로 있은 지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지면 보수(補修)하고 더러워지면 칠하기를 이어왔는데 후손 한현(漢鉉)과 도현(燾鉉) 양군(兩君)이 세상의 변화에 감동(感動)을 느껴 정사를 중건(重建)할 계획으로 병자년() 가을에 종족(宗族)에게 보수할 것을 도모(圖謀)하고 기문(記文)을 새겨 걸려고 나에게 그 역(役)을 요구하였다.
아아! 그 부지런함이여!
이 어찌 집이 어리어리한 것만 보겠는가. 또 어찌 산천(山川)의 아름다운 경치(景致)만을 말하겠는가? 오직 이것이 선왕(先王)의 총은(寵恩)을 감(敢)히 잊지 못함이요 선공(先公)의 훌륭한 공훈(功勳)을 감히 떨어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 사람이 다 마음이 몹시 급(急)하여 허둥지둥하는데 착공(着工)한지 얼마 안되어 훌륭하게 완공하였으니 앞으로는 근심이 없고 몸소 힘써 나아갈 뿐이다.
시대의 늦고 빠름은 논(論)할 것이 없다.
이는 여러 사람의 뜻이고 재목(材木)이 따르니 진실로 그렇다면 어찌 폐(廢)하면 일으키지 않으며 허물어지면 보수하지 않겠는가.
무릇 천하를 회복(回復)하는 사람은 어찌 이 구천정사(龜川精舍)에만 그치겠는가. 여러분은 그 사실만 기록(記錄)하여 주기를 바랐는데 나는 그 뜻을 기록하노라.
가선대부 장예원(掌隷院)소경(少卿)원임(原任) 규장각(奎章閣) 부제학(副提學)
연안(延安) 이병관(李炳觀)이 기록하다.




구천정사 상량문







謹次新庵朴公
彛倫攸在覆穹蒼  변하지 않은 윤리 있으니 창천이 굽어보고
知是君家世篤彰  그대의 가문 세상에 드러난 표창을 아노라.
忠烈如今欽左海  충열(忠烈)은 지금도 같은데 공경함은 우리나라에 있고
義聲不獨頌南鄕  의로운 소리 외롭지 않고 영남에서는 칭찬이 자자하네.
百年殊典幽暝感  백년의 법전이 달라 세상을 달리한 감을 느끼며
崇品貤榮乘牒光  높은 품계 거듭한 영광은 빛나는 보첩에 올랐구나.
何況報與終錫胤  어찌 항상 보은함은 석윤(錫胤)에게 이루어지니
展追宗牗淚麻黃  종손 쫓아 펼쳐진 담장은 마황에 눈물짓네.
校理 南陽 洪肯厚  교리 남양 홍긍후






謹次新庵朴公
千尺勁松欝翠蒼  천척의 꺾이지 않는 소나무는 울창하고 푸른데
忠臣標格歲寒彰  충신의 자리 표시는 추운 겨울 같이 드러난다.
孤軍敵愾無强寇  외로운 군사로 막강한 적을 무찌르고는
壯士歸心自近鄕  장사는 가까운 고향으로 귀향할 마음이었네.
當日除官先激勵  당일로 벼슬을 제수하여 먼저 격려했으니
百年追爵復輝光  백 년의 이룬 작위 다시 밝게 빛나는 구나.
朝廷倘錄勳家裔  조정에서 자상히 기록 되고 문벌 후예라 공훈을 주니
誓在長河一帶黃  장강의 황색 띠에 맹세한다.
性齋 許傳  성재 허전




출처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