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오서리 호산마을 김해허씨 호산정 虎山亭

천부인권 2019. 9. 26. 17:00



2019.9.16. 오서리 김해허씨 호산정 모습


진전면 오서리 64번지에 위치한 호산정(虎山亭)은 호암산(309m) 자락의 호산마을에 있는 김해허씨(金海許氏) 재실이다. 재사(齋舍)는 현대식 건물로 그리 크지 않으며 호산마을의 언덕에 위치하여 마을을 지나는 정달호산로에서 볼 수 있다. 외관상으로는 일반 집처럼 보이기에 사진을 참고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단조로운 이 재실에는 호산정(虎山亭) 편액과 국한문 호용으로 쓴 호산정기(虎山亭記)가 걸려 있다. 재실의 이름을 호산정이라 한 것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호산정(虎山亭) 근거리 모습



호산정(虎山亭) 편액




虎山亭記
허씨관(許氏貫)은 김해(金海)니 自駕洛首露王后許氏之氏로 전성(傳姓)하고 고려삼중대광(高麗三重大匡) 허염(許琰)이 보계상조(譜系上祖)며 기후문하시중충목공(其後門下侍中忠穆公) 諱 有全과 貞節公 湖隱先生 諱 麒는 以求國忠臣으로 大著麗史하고 中世著祖 禮村公 諱 元輔와 進士公 諱 瓚이니 進士公은 卽 退溪先生 外舅也라 吾曾祖 菊塢公 諱 東八公이 固城 細洞으로부터 이곳 昌原郡의 西域 虎山岩下에 雲林泉石이 閒淑하고 高人逸士의 居處에 알맞은 虎山洞으로 터전을 잡고 偶居修養하시다가 餘年을 마치니 後孫의 世居地이라 辛未春에 諸後孫이 合謀議하야 進士公 諱 瓚의 冑曾孫 中樞府事公 諱 稠以下의 寓慕齋를 始竣하야 奠祖睦族의 道를 講明하고 先人의 志事를 繼承增益함에 古道에 不悖함이라 이제 世情의 變遷으로 後孫들이 先祖에게 養志의 孝와 死后永慕의 誠을 못다하거늘 서로가 修勅하여 神佑를 얻어 益昌하여 頹波의 砥柱가 되고 昏衢의 燈燭이 되리니 어찌 힘쓰지 않으리요 孝悌仁穆으로 諸后孫의 無窮한 繁榮과 永世不沫을 祈願하면서 虎山亭記하노라.
辛未年 白露節 后孫學中 興洗 謹記


호산정기(虎山亭記)
허씨(許氏)의 본관은 김해이고, 가락국 수로왕비인 허씨에서 전하는 성씨이고 고려 시대 삼중대광(三重大匡) 허염이 족보상의 시조이며, 그후 문하시중 충목공 휘 유전과 정절공 호은선생 휘 기는 구국충신으로 고려시대에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중세에 뛰어 난 조상은 예촌공 휘 원보와 진사공 휘 찬이니 진사공은 퇴계선생의 외삼촌이 된다. 우리의 증조 국오공 휘 동팔이 고성 세동으로부터 이곳 창원군 서쪽 호암산 아래 경관이 수려하여 고인일사(高人逸士)의 거처하기에 적합한 이곳 호산에 터전을 잡고 임시로 살면서 수양하시다가 남은 생을 마치시니 우리 김해 허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신미(1991)년 봄에 여러 후손들이 모여서 의논하여 진사공 휘 찬의 직계 증손 중추부사공 휘 조 이하의 선조를 추모할 수 있는 재(齋)를 건립하였는바 조상을 봉향하면서 한편으로는 종족간에 친목을 돈독히 할 수 있도록 강론하여 밝히고 선조들의 드높은 기개와 덕을 계승, 더욱 드높혀 예부터 내려오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기 위함이다. 이제 세태가 바뀌어 후손들이 선조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도와 돌아가신 후에 영모의 정성이 지극히 부족하므로 우리 김해허씨 후손들은 서로가 수양하고 삼가 하여 조상의 음덕을 얻어 더욱 더 창성하여 도덕과 미풍이 무너져가는 세상에 지주(砥柱)가 되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고 어질고, 종족간에 화목하게 지내므로써 우리 김해허씨의 모든 후손들이 무궁한 번영을 영원토록 이어가기를 기원하면서 호산정기를 적는다.
신미(1991)년 백로절(9월 초순)
후손 학중 흥세(興洗) 삼가 기록하다.


출처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