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일암리 창원황씨 모화재 慕化齋

천부인권 2019. 11. 5. 07:36

2020.7.7. 일암리 창원황씨 모화재 전경

 

 

2019.10.30. 일암리 창원황씨 모화재(慕化齋)

 

진전면 일암리 744번지는 회산황씨의 재실인 모화재(慕化齋)가 있는 곳으로 적석산식당에서 골목길을 걸어 올랐더니 좌측에 보였다. 골목에서 들어가는 입구가 길인가 의심하면서 접근하니 마당이 좁은 재실이라 정면 사진은 얻기 어려웠다.
재실에는 모화재(慕化齋)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일족(一族) 황교준(黃敎俊)이 쓴 모화재기(慕化齋記), 모화재상량문(慕化齋上樑文)이 있고, 용희공(龍熙公)의 5대손 황도용(黃道容)이 쓴 모화재운(慕化齋韻)과 사종헌(思宗軒), 수목당(修睦堂) 현판도 걸려있다.

 

 

 

 

일암리 창원황씨 모화재 입구

 

 

 

일암리 창원황씨 모화재

 

 

 

모화재 편액

 

 

 

 

모화재 주련 [해문] 文山

嘉猷先蔭偉基成 아름다운 꾀를 주신 선조 덕분에 큰 터전을 이루었으니
仁徽慕化不勝情 자애롭고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감화됨은 정을 이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崇祖尙門勤仕報 조상을 받들고 문중을 위해 부지런히 섬기며 보은하고
封樹營齋裔冑誠 봉분하고 나무를 심어 재를 올리면 먼 자손까지 정성을 다하리라.

 

 

 

 

 

慕化齋記 [原文]
舊昌原鄕三鎭之南 有積石山 陭䧢秀麗 而松林鬱蒼 溪水激湍 岩壁於琪花異草 朝夕嵐光霞彩 四時絶景 山下連墻接屋 閑靜古村名曰日岩里 可宜隱君子所居之地野 昌原黃公諱龍熙處士 而寓居基業 於焉百有餘年至于 今四十餘家 累代盡誠奉祀 隨俗於慨嘆一無齋舍 一族熟議 丙子年營築三架 請於吾齋記 淺學非才 固辭爲讓 寅聖道容甲容三人懇請 以危坐正襟 余雖非直孫 上於同祖石巖公之本孫也 其誠之感動敬禮以答曰 子孫以祖先追慕 不差近遠 世代則近祖厚猿祖薄 是事難於爲先之道也 恭敬以桑梓 淨潔以蘋蘩 香火芬與 祖先蔭德 永久不忘 又曰 是齋宮構 爲事龍熙公 公莫限將次 累代子孫而繼承追募之誠 文勢振作之意 可謂稱善 詳考 墳墓封築自始孔子 墓祭自始程子 齋舍自始朱子 皆是祖先追募不忘之事也 定居以開 子孫萬代之基業 祖先道香之德 深厚亦子孫 思慕之情懇切 此以齋號慕化齋 依宗人口述畧記諸子孫 是齋登臨 羹墻之慕 繼祖先遺業 花樹敦睦之誼 相扶相助 爲崇祖尙門 澤及萬世 永遠無窮矣 詩曰 亡念爾祖聿脩其德諸子孫 是齋於務進祖先慕化矣
丙子仲秋 族後生 敎俊 謹記

 

모화재기(慕化齋記) [해문]
옛 창원 고을 삼진(三鎭)의 남쪽에 적석산(積石山)이 있다. 산세(山勢)는 험하고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소나무가 울창(鬱蒼)하고 냇가는 매우 세찬 여울이 흐르고 암벽(岩壁)에는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있다. 아침저녁의 람광(嵐光)¹⁾과 하채(霞彩)²⁾는 사시(四時)³⁾에 절경(絶景)이다. 산 아래에 이어서 담(墻)이 접한 집 있어 한가롭고 조용한 오랜 마을의 이름은 일암리(日岩里)이다. 가히 숨어사는 군자(君子)의 주거지로 마땅한 곳이다.
창원황공(昌原黃公) 휘(諱) 용희(龍熙) 처사(處士)⁴⁾께서 이곳에 우거(寓居)⁵⁾하여 기업(基業)⁶⁾을 열었으니 어언(於焉) 100여년에 이러러 자손도 40여 집안을 이루었다.
누대(累代)로 정성을 다하여 선조를 받들어 제사함에 세속(世俗)⁷⁾에 따라 제사지내는 집이 없음을 한스럽게 생각해 오다가 일족숙의(一族熟議)로 병자년(丙子年;1996)에 영축삼가(營築三架)⁸⁾하고 나에게 재실의 이름과 기록을 청(請)하므로 내가 학문이 낮고 재주가 없어 사양(辭讓)하였으나 인성(寅聖), 도용(道容), 갑용(甲容) 3명이 위좌정금(危坐正襟)⁹⁾하여 간청(懇請)하는지라 내 비록 직손(直孫)¹⁰⁾은 아니나 위로가면 같은 조상인 휘(諱) 범(汎)인 석암공(石巖公)의 본손(本孫)이다. 가히 같은 자손이라 그 정성에 감동하여 공경(恭敬)한 예(禮)로 답하여 말하기를 대저 자손이 선조를 추모(追慕)함에 있어서 원근(遠近)의 차별(差別)이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세대(世代)가 멀어지면 가까운 조상은 후(厚)하고 먼 조상은 박(薄)하기 쉬운 것이니 이것이 조상을 그리워하는 도리(道理)에 어려운 것이니라.
상재(桑梓)¹¹⁾를 공경하고 빈번(蘋蘩)¹²⁾을 정결(淨潔)하여 향화분여(香火芬與)¹³⁾로 선조의 음덕(蔭德)을 영구(永久)히 잊지 말 것이며 또한 이 재실(齋室)은 용희공(龍熙公)을 위하여 세운 것이나 생각하는 바가 공에게만 그치지 말고 장차(將次)로 누대(累代)로 추모(追慕)하는 정성(精誠)을 자손에게 계승(繼承)시켜 문운(門運)을 진작(振作)시키려는 그 뜻이 선하다 하겠노라.
상고(詳考)컨대 “묘(墓)의 봉축(封築)¹⁴⁾은 공자로부터 시작되었고 묘제(墓祭)는 정자(程子)로부터 오늘날에 이어졌고 재사(齋舍)는 주자(朱子)로부터 시작 되었다하니 이것이 모두 조선(祖先)을 사모(思慕)함을 잊지 않기 위함이니라.” 하고 삶의 터전을 정하고 자손만대(子孫萬代)의 기업(基業)⁶⁾을 열어주신 선조가 끼친 덕(德)이 깊으며 역시 자손의 사모(思慕)함도 또한 간절(懇切)한지라 이에 재실 이름을 모화재(慕化齋)라 하고 종인(宗人)들의 구술(口述)에 따라 간략하게 펼쳤으니 여러 자손들은 이 재실(齋室)에 오르게 되면 갱장지모(羹墻之慕)¹⁵⁾로 선조의 유업(遺業)을 계승하고 화수(花樹)¹⁶⁾처럼 일가친척 사이에 오가는 두텁고 화목한 정을 나누며 서로서로 돕고 조상을 숭배하고 문중을 위하면 혜택이 오래오래 미치니 조상의 덕을 사모하여 감화됨에 힘쓸지어다.
丙子 추석날에 집안후손 교준(敎俊) 삼가 기록하다.

 

【주석】
람광(嵐光)¹⁾ : 산기(山氣)가 아지랑이처럼 올라 빛나는 모양
하채(霞彩)²⁾ : 노을의 아름다운 색채(色彩)
사시(四時)³⁾ :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아울러 이르는 말
처사(處士)⁴⁾ :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우거(寓居)⁵⁾ : 자신의 주거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기업(基業)⁶⁾ : 기반이 되는 사업
세속(世俗)⁷⁾ : 보통 사람들이 사는 사회
영축삼가(營築三架)⁸⁾ : 집을 짓고 쌓아서 3칸의 집을 지었음을 의미한다. 삼가는 4개의 기둥위에 올려 진 3개의 평방을 뜻한다.
위좌정금(危坐正襟)⁹⁾ : 옷깃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다
직손(直孫)¹⁰⁾ : 친자 관계에 의하여 직접 이어져 내려오는 자손
상재(桑梓)¹¹⁾ : 상재향(桑梓鄕)이라고도 하며 뽕나무와 가래나무가 있는 고향을 뜻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반(小弁)의 “維桑與梓, 必恭敬止”에서 유래된 말이다.
빈번(蘋蘩)¹²⁾ : 마중과 다북쑥(변변치 않은 제물(祭物)
향화분여(香火芬與)¹³⁾ : 향을 피워 향기로움을 함께 한다.(제사를 함께 지낸다)
봉축(封築)¹⁴⁾ : 무덤을 만들기 위하여 흙을 쌓아올림 
갱장지모(羹墻之慕)¹⁵⁾ : 죽은 사람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이나 그를 앙모(仰慕)하여, 앉아서는 요 임금을 담장[墻]에서 보고, 밥을 먹을 때면 요 임금을 국[羹]에서 보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화수(花樹)¹⁶⁾ : 위씨화수회(韋氏花樹會)를 의미한다. 중국 당나라 때 위씨(韋氏)가 번성해서 꽃나무 밑에 모여 일가들이 즐겨 놀았음.

 

 

 

 

 

 

사종헌 편액

 

 

 

수목당 편액

 

 

 

 

慕化齋韻
開基世守日岩陽
宿願成齋揭扁堂
遠近招賓嘉宴盛
東西聿族偉儀張
後孫報本年重赫
先祖涵濡歲益昌
俎豆歆饗偕飮福
餘芳蔭澤夢難忘
丙子仲秋五代孫 道容謹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