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동면 묵지마을 김녕김씨 서강재 書岡齋

천부인권 2019. 12. 7. 17:00



2019.10.30. 동전리 묵지마을 서강재 입구 모습


진동 묵지마을은 동전터널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내려가야 접근할 수 있는 마을인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번 국도를 지나면서 둘러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을은 한적하고 마을 진입로도 그리 넓지는 않다. 묵지마을 입구에 도달하면 길가에 서어나무 노거수가 도열하며 맞아주는데 처음 마을을 개척한 사람이 밖에서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심어 둔 것으로 생각했다. 마을의 위쪽에 자리한 김녕김씨의 서강재(書岡齋)는 진동면 동전리 198-2번지에 위치한다.




서강재 대문에 걸린 임청문(臨淸門) 편액


서강재의 대문에는 임청문(臨淸門)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임청(臨淸)"이라는 뜻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서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라는 싯구에서 ‘임(臨)’ ‘청(淸)’를 취한 것이다.




2019.10.30.서강재(書岡齋) 모습



서강재(書岡齋) 편액




대문을 들어서니 서강재(書岡齋) 건물과 편액 및 주련이 보인다. 그 주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서강재(書岡齋) 주련
祖宗視之均是子孫 조종(시조)이 보실 때에 균등한 자손들이니
匪源曷流匪根曷長 근원이 아니면 어찌 흐를 것이며 뿌리가 아니면 어찌 자라겠는가.
壟雲密邇彌增怵惕 언덕에 구름이 빽빽하게 둘러싸니 두려워 조심함이 더욱 간절하여
課忠責孝勿墜前光 과업에 충실하고 효의 책임을 다하며 선대의 빛남을 떨어뜨리지 말지니라.



서강재(書岡齋)는 밖으로 유리문을 달아 안쪽에 걸려 있는 기문은 찍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다시 가서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서강재(書岡齋)의 내력을 담은 기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書岡齋記
維廬山之南 屛岩之下 有穹然而顔書岡齋 者金寧金氏齋宿之所 而慕厥祖嘉善公諱斗一創建也 嗚呼金氏卽白村先生肖裔也 先生之貞忠大節固 東方百世尸祝而遑遑至 英廟伸寃錄用 則千日復明亦有時存耶 方禍家殘族屛伏絶匡惴惴 然影音之惑恐呈露 則黨禍之慘 尙怒言栽 公負母筮遯乎 此墨池之里 而今振振雲仍 克趾厥美信乎 醴泉有源也 余曾遊洞府奧曠林澗淸絶宜隱者之所 盤桓而曠世之下想仰 公超然獨往之氣也 自古明哲之色 擧遠流一遵素位之正而無慕乎外 故其義雖晦於當時 而惟錫祚遺蔭之流注子孫 是以永世虔奉 而報祀不忒理固然也 人之道莫大乎慕先慕也 者欲善述其志與事也 惟金氏克承先謨啓迪來 後益講名祖扶綱之忠 肥遯之義 銜訓效德 則先之靈洋洋如在左右 而蔭陟降祥之无彊矣 後日者自檜山來者 稱門欄之復赫然者 則余必曰金氏也 其肯構也 幹事而賢勞者曰 溶元溶祚溶仁洪權鳳權贊權俊權也 聞其事而記文者 完山李雨燮也 時黑鼠之陽月也


서강재기(書岡齋記)
광려산 남쪽 병풍 같은 바위아래 하늘에 치솟은 서강재(書岡齋)는 김녕김씨들이 재계하고 묵은 곳으로 그들의 선조는 가선공(嘉善公) 휘 두일(斗一)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오호! 김씨들은 즉 백촌(白村) 김문기의 후예이다. 선생의 곧은 충과 큰 절개는 진실로 동방에서 백세토록 사림들이 향사를 드림을 이어왔다. 영조 때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나라에 채용되어 하늘의 해가 다시 밝아졌으니 때는 존재함이 있음이라. 바야흐로 화를 입어 집안의 남은 씨족들 나타내었으니 곧 당화의 혹독함에 성낸 말이로다. 공은 어머니를 업고 이 묵지곡에 숨기를 점쳤다. 지금은 후손들이 넉넉한 터에 떨치고 살고 있음은 그 터가 아름답다함을 믿겠고, 샘물이 단것도 근원이 있음이라. 나는 일찍이 마을에 한번 놀러간 적이 있는데 깊고 넓은 산골물이 빼어나게 맑아 마땅히 은자가 머물만하고 넓은 세상 아래 공을 우러러 세속을 초월한 독특한 기를 생각하였다. 예부터 명석한 색깔을 들추어 멀리 흐름에 한 결 같이 쫓아 깨끗한 지위에서 바르게 지냈으나 바깥으로는 사모하지 아니했다. 그런고로 그 의는 당시에는 감추어졌으되 오직 복조가 내려져 끼쳐진 음덕은 자손에 흘러내려 이어졌으니 이는 영세토록 경건히 받들고 제사로 갚은 것은 변함없는 진실한 이치이다. 사람의 도에 가장 큰 것은 추모인저! 선조의 뜻과 더불어 행적을 옳게 펴 닦는 것이다. 오직 김씨들은 선조의 꾀한 일을 충실히 잇고 뒤를 열고 나아가 이름난 선조께서 강상(綱常)을 도운신 충성(忠誠)을 더욱 강의(講義)하면 은둔하여 사신 의를 살찌게 할 것이다. 가르침을 받들고 덕을 본받으면 곧 선조의 영령은 길이 좌우에 계시면서 음덕을 내리시며 상스러움은 후일에 끝이 없을 것이다. 회산으로부터 오는 자들이 집안을 칭송하고 다시 빛날 것이니 나는 반드시 김씨들이라 할 것이다. 그 재실을 지음에 일을 주관하여 노력한 자는 용원, 용조, 용인, 홍권, 봉권, 찬권, 준권이라 들었고 그 일에 기문을 지은 자는 완산(完山) 이우섭(李雨燮)이요 임자년(1972) 10월이라.


출처 및 참조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