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면 금암리 499(금암중촌길 58-37)에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둔암처사遯庵處士 박응윤朴應胤을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기미己未(1979)년에 후손들이 세운 추모재追慕齋가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 고도계가 해발 107m를 표시하고 구글지도는 「위도 35°08'21.7"N 경도 128°23'07.2"E」를 가리킨다.
중촌中村마을 끝부분에 위치한 추모재追慕齋는 솟을삼문에 경원문景源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本堂은 추모재追慕齋라 평액 했으며 4개의 기둥에는 주련이 있고, 마루의 내부에는 추모재상량문追慕齋上樑文, 추모재기追慕齋記, 추모재사실기追慕齋事實記, 기記 및 경제추모재敬題追慕齋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追慕齋 주련[해문-백촌]
齎志由來歲月深 뜻을 품은 이래로 세월은 흘렀는데
告成今日感難禁 오늘에 낙성하니 감회 막기 어렵구나.
精靈宛爾臨於此 선조 영혼 선명히 여기에 다다르니
霜露年年可展忱 해마다 조상추모 정성을 펼 것이리.
‣ 측기식<志四寘去聲> 7언절구
十二侵平聲韻深禁忱
✻齎志 : 회포懷抱 마음속에 생각을 품다. 마음속에 뜻을 품다
✻由來 : 종래로, 예로부터, 일의 시작, 근거 원인 이유, 원래 그동안, 원래부터, 전부터
✻告成 : 어떤 일이 다 이루어짐을 알림 뜻① 완성을 알리다 ② 준공하다 ③ 낙성하다
✻精靈 : 산천초목이나 무생물 등 갖가지 물건에 깃들어 있다는 혼령
✻難禁 : 금하기 어려움
✻宛爾 : 완연히 완연宛然하다 아주 뚜렷하다
✻霜露 : 서리와 이슬
상로재(霜露齋) : 돌아가신 부조(父祖)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의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그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면 군자가 그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섬뜩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서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
✻展忱 : 忱은 정성 침. 충성 , 열성.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追慕齋上樑文
世代相禪曠感音㫖之寂寥 人事有時聿覩亭齋之輪奐 久矣經營心上 今爲突兀眼前 恭惟遯菴朴公諱應胤字聖久 密城巨閥 新羅璿源 始屢傳至單八大君 又三傳有十二中祖 同正公仕高麗居松京至雲孫 戶判公復萊城徙龜齡至三世 參軍公懲毖 士禍筮遯社陵村 參奉公絶謝名韁移隱儉岩里 工曹判書公之善政晋洽於三縣 貞夫人李氏之淑儀稱頌於當世 桐川公之學行士友推重之 武庸公之功勳朝家崇獎矣 允矣栗浦權管公相時退隱 猗歟寒岡文穆公講道從逰 振揚家聲自有世類之傳繼 炳耀史乘足認籫組之緜連 始公之生際 終公之歿在 長陵盛世稟秀異之資 明陵季年襲文獻之懿 耕稼素志便同鹿門之遺安 漁樵閒情何殊桐栢之行義 心靈灑落蘿月松風 起居安閒泉聲岳色 嘉遯貞吉足以肩明哲知幾 存歿順寧亦可謂仁厚有證 滄桑累幻蕩逸先蹟之遺傳 杞宋無徵彌深後昆之痛恨 乃開會詢議寔出於烏鳥之情 遂鳩材募工亟圖其羹墻之慕 追安厝之所在當就赤浦庄 度句管之便宜竟卜比谷洞 洞壑窃窕允合隐逸之棲遲 雲林幽湥逈絶城市之喧鬧 貲傾廩而不惜特出孝思 手執役而不憚各輸誠力 工何患無公輸子之巧手 筮亦得叶姜太公之吉辰 燠爲室凉爲堂四時之起居俱適 築以石盖以瓦百年之風雨攸除 甍簷高飛掩暎放烟樹之外 楣扁載揭輝煌放岩壑之間 斯足以齊宿灌鬯受釐焉 亦可以聚族迎賓講業也 儲經史於几案以備進修 栽花竹放庭除以資玩賞 豈徒爲東南觀廳之美 實則由子孫繼述之誠 聊陳頌辭 庸助偉唱
兒郞偉抛樑東 仰看扶桑旭日紅 萬像咸熙皆自樂 氤氳宇宙盡春風
兒郞偉抛樑西 遐望開京荊棘迷 襄惠左尹居七世 風猷綿邈也興悽
兒郞偉抛樑南 赤浦松楸滴翠嵐 霜露年年芬苾薦 後昆惕愴豈能堪
兒郞偉抛樑北 節彼艅航聞南國 淑氣扶輿洞壑深 居齋亶合述先德
兒郞偉抛樑上 昭昭日月太虛朗 至誠不息無停機 君子省躬日自强
兒郞偉抛樑下 金谷全村後裔舍 竇桂謝蘭世世生 克守先謨賢孝者
伏願上梁之後 禎祥荐至 吉運泰回 闔族睦婣遹追 先隴守護幷美 韋員外之嘉會 甄敎授之思亭 益勉先徽之闡揚 可卜後孫之嗣葺
歲己未仲秋節 竹溪 安龍鎬 撰
추모재상량문(追慕齋上樑文)
세대가 바뀌면 말씀의 뜻이 아득히 적막함을 느끼지만 사람의 일에는 때가 있어 드디어 재실이 환하게 솟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래로다 마음으로 경영해온 세월이여 이제야 눈앞에 우뚝하게 되었도다. 생각건대 둔암(遯菴) 박공(朴公) 휘(諱) 응윤(應胤) 자(字) 성구(聖久)는 밀성(密城)의 큰 문벌이며 신라 왕실에 근원을 두었다. 시조에서 여러 대를 전하여 8대군에 이르렀고 다시 3대를 전하여 12중조가 되었다. 동정공(同正公)은 고려에 벼슬하여 송경(松京)에 살아 자손들에게 이르렀고 호판공(戶判公) 동래성(東萊城)을 회복하여 구령(龜齡)으로 이사하여 3대에 이르렀다. 참군공(參軍公)은 사화(사화)의 잘못을 깨치고 사릉촌(社陵村)에 은둔하였고 참봉공(參奉公) 명예를 사양하고 검암리(儉岩里)로 옮겨 은거하였다. 공조판서공(工曹判書公)은 선정으로 3현(縣)에 그 명망이 가득하였고, 정부인(貞夫人) 이씨(李氏)는 정숙한 행실로 당대에 칭송이 가득하였다. 동천공(桐川公)은 학행(學行)으로 선비와 벗들이 중망하는 바였고 무용공(武庸公)은 공훈으로 조정에서 높이 칭찬하였다. 크도다, 율포(栗浦) 권관공(權管公) 때를 맞추어 물러나 은거함이여, 아름답도다. 한강(寒岡) 문목공(文穆公)의 강학하는 도를 따라 교유하였도다. 그 집안의 명성이 진동하니 이로부터 대대로 유사하게 전하여 계승되고 빛나는 저 역사서에 벼슬이 면면히 이어짐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처음은 공이 태어날 때이고 끝은 공이 세상을 떠날 때인데 장릉(長陵;인조)의 성세(盛世)에 타고난 자질이 빼어났고 명릉(明陵) 말기에 문헌에 칭찬을 입는 일이 있었다. 농사를 지으려는 원래의 뜻을 품고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는 것을 편안히 여겼고 고기잡고 나무하는 한가로운 정은 동백(桐栢)의 행의(行義)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심령이 말고 깨끗하니 달뜬 날 담쟁이와 솔바람을 즐겼고 기거하는데 편안하고 한가하니 샘물소리와 산빛을 즐겼다. 은거를 즐기며 끝이 길하다는 정길(貞吉)을 택하였으니 명철(明哲)들이 기미를 아는 것과 견줄만하고 죽고사는 것을 운명에 맞기니 어질고 두터운 덕을 증명할 수 있겠다. 상전벽해로 혼란에 빠지져도 빼어난 선대의 자취는 이어 전해지지만 기강이 서지 않아 기송(杞宋) 두 나라의 일을 징험할 수 없으니 후손들이 애통히 한하는 바이다. 이에 가문의 종회를 열어 반포조(反哺鳥)의 정을 발하여 드디어 재목을 모으고 목수를 모집하여 조상의 영혼이 국그릇과 담장에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사모하는 일을 도모하도다. 추모하여 봉안하는 장소는 적포(赤浦)의 세장(世庄)에 마련함이 마땅하나 제사를 관장하는 편의를 생각하여 비곡동(比谷洞)에 자리를 잡았다. 골과 마을이 그윽하여 은일(隱逸)한 선비가 깃들어 살기 매우 적합하고 무성한 숲이 그윽하고 깊으니 세속의 시끄러운 다툼을 아득히 단절한다. 곳간을 기울여 돈을 마련함을 아끼지 않은 것은 그 특출한 효성이고 공역(工役)에 팔을 걷고 게으르지 않은 것은 각기 그 정성과 힘을 다한 것이다. 이 공역에 천재 목수인 공수자(公輸子)의 공교한 손재주가 없음을 걱정할 것 없고 점을 치는데 강태공(姜太公)이 잡은 길일에 적합한 날이다. 따뜻한 것은 방이고 서늘한 것은 대청이니 사계절 기거하는데 적합하다. 돌로 축대를 쌓고 기와로 지붕을 덮었으니 백년토록 비바람도 유연히 막겠도다. 용마루 처마는 높이 날개를 펼쳐 고운 숲 너머로 그 모양을 비치고 문설주 위 편액은 높이 걸려 바위골짜기 사이에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이곳은 재숙(齊宿)하고 울창주를 따르며 제사를 주관하기 충분하고 또한 종중이 모이고 손님을 맞이하며 학업을 강학할 수 있겠다. 책상과 궤짝에 경전과 역사서를 가득 쌓아 학문을 닦고 나아갈 준비를 하고 꽃과 대나무 심어 뜰에서 즐겨 감상한 자료를 갖추었다. 어찌 다만 동남방에만 이름난 아름다움이리오. 그 실제는 자손들이 선조를 계승하여 후세에 물려주려는 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애오라지 송축의 말을 나열하는 아랑위 노래로 들보 올리는 일을 돕는다.
어랑차 들보 동으로 던져라. 우러러니 부상목에 아침해 붉게 오르니 세상만물이 모두 빛을 뿜으며 스스로 즐기도다. 순환하는 우주가 모두 봄바람이로다.
어랑차 들보 서편으로 던져라. 아득히 개경(開京)을 보니 폐허에 가시밭이고 양혜(襄惠)공은 좌윤(左尹)으로 7세대를 살았네, 그 기풍 아득히 처연한 흥취 일으키네.
어랑차 들보 남으로 던져라. 적포(赤浦)의 둘레솔은 푸른 남기에 적시었는데 해마다 봄가을 서리에 향을 피워 제를 드리지만 후손들의 처연한 마음 어찌 견디리.
어랑차 들보 북으로 던져라. 우뚝한 저 여항산 남국의 이름났는데, 맑은 기운 상서러운데 골과 마을 깊도다. 재실에 거하며 선조의 음덕을 이어가기 합당하도다.
어랑차 들보 위로 던져라. 빛나는 해와 달 태허(太虛)에 밝으니 지극 정성 쉼 없으니 조화도 쉼이 없네 군자가 스스로를 살펴 날로 강건하도다.
어랑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금곡(金谷)의 온 마을 후손들 집에, 두씨(竇氏) 형제와 난화분을 사양하는 결백한 사람들이 대대로 생겨나서, 선대의 물려주신 계획을 지켜 어질고 효성스럽도다.
업드려 바라건대 이 들보 올린 뒤에 상스러운 기운이 도래하고 복된 운이 크게 돌아와 온 가문이 화목하고 친족들이 따르며 선대의 무덤이 지켜져 아울러 아름다우며 위씨 원외 가문이 아름다운 화수(花樹)의 모임을 하고 견씨 교수가 사정(思亭)을 지어 어버이를 그리듯이 선대의 어진 업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면 후손들이 그 집을 수리하고 지키며 이어갈 것을 점칠 수 있으리.
을미(己未) 중추절(仲秋節) 죽계(竹溪) 안용호(安龍鎬) 짓다.
追慕齋記
함안咸安고을 남南쪽에 웅준雄峻한 산山이 수군數郡을 누리고 있으니 일러 여항艅航이요 산남山南쪽에 요조窈窕¹⁾한 일구청경一區淸境²⁾이 열렸으니 일러 자곡지금암촌玼谷之金岩村³⁾이다. 천석泉石⁴⁾이 맑고 수림樹林이 무창茂蒼⁵⁾하며 풍속風俗이 순미淳美하고 토양土壤이 비옥肥沃하여 가可히 은사隱士의 장수지지藏修之地⁶⁾가 됨직하도다.
마을 옆에 새로이 단장丹粧된 높은 집 한 채가 관첨觀瞻⁷⁾에 솟아나니 이가 고故 둔암처사遯庵處士 밀양박공密陽朴公 휘諱 응윤應胤을 위하여 마련된 재자齋字이다.
듣건대 공公은 고려조영동정高麗朝令同正 휘諱 원광元光의 후예後裔이며 선묘조宣廟朝 공신功臣 무보공武甫公 휘諱 신영宸英의 손자孫子이다. 그의 혁혁赫赫한 세덕世德과 청초淸楚한 표덕表悳을 보아 당일當日의 중망重望을 추상追想해서 의심疑心할 바 없으나 년대年代가 이미 침원浸遠⁸⁾하고 창상滄桑이 변천變遷⁹⁾되어 가고可考할 바 없으니 참으로 가탄可歎할 일이다, 이에 공의 후손後孫들이 선조先祖의 성미聲微¹⁰⁾가 인멸湮滅¹¹⁾ 무전無傳함을 개탄慨歎하여 모여 의론義論하고 각자各自 성력誠力을 다해서 그의 세장世庄¹²⁾ 옆에 나아가서 와즙瓦葺¹³⁾ 사동삼간四棟三間을 세우니 동량棟樑의 크기와 제도制度의 조밀稠密함과 치장治粧의 아결雅潔¹⁴⁾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可히 찬상贊賞¹⁵⁾함직하도다.
공功이 마치어지자 후손後孫 황계보黃桂甫 그의 종장宗丈 성길씨性吉氏의 소개紹介로 나에게 재명齋名과 기문記文을 물으니 고사固辭키 어려운지라 내 기윽히 세상 사람을 보니 조금 생계生計가 윤택潤澤해지면 강산승경江山勝境¹⁶⁾을 점득占得하여 안일安逸과 자오自娛를 도모圖謀하는 자者 허다許多 하나 공公의 후손後孫처럼 선조先祖의 구지舊址를 찾어 선조先祖를 위爲해 재자齋字를 세워서 선조先祖의 풍유風猷¹⁷⁾를 앙모仰慕하는 자者 과연기인果然幾人이나 되는가. 내 이에 재齋를 추모追慕라 문門을 경원景源이라 이름하고 또 그 성효특서誠孝特書하여 이 재齋에 오르는 자者에 보이고저 한다.
무릇 이 재실齋室의 후손後孫 되는 자者는 이제부터 제숙齊宿하고 번족繁族하며 영빈迎賓할 곳이 마련되어 있으니 이에 기거起居하며 이에 독서讀書하여 오매寤寐¹⁸⁾문問 둔암공遯庵公의 유모遺謨¹⁹⁾를 받들면 이 재齋를 이름한 뜻이 거의 허虛 되지 않으리니 여러분들은 힘쓰고 힘쓸지어다. 공公의 묘소墓所는 고성固城 동해면東海面 적포산자좌赤浦山子坐이고 배위配位 역시亦是 동원쌍분同原雙墳이다. 이 역사役事에 가장 공功이 큰 분은 영국永國과 정대正大요 시종始終 간사幹事한 분은 인주寅柱라고 한다.
歲 己未 白露節 咸安 조광제趙光濟 記
【주석】
요조窈窕¹⁾ : 산수가 깊고 조용함. 여자의 행실이 얌전함.
일구청경一區淸境²⁾ : 한 지역의 깨끗한 곳
체곡지금암촌玼谷之金岩村³⁾ : 훌륭한 골짜기는 금암金岩마을이다.
천석泉石⁴⁾ : 샘과 돌. 산수山水의 경치景致
무창茂蒼⁵⁾ : 무성하고 푸름.
장수지지藏修之地⁶⁾ : 은거隱居하여 수양修養하는 땅
관첨觀瞻⁷⁾ : 자세히 두드러지게 봄. 지켜봄
침원浸遠⁸⁾ : 오랫동안 잠겨(묻혀져) 있음.
창상滄桑이 변천變遷⁹⁾ :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뜻하며,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미聲微¹⁰⁾ : 어렴풋한 목소리
인멸湮滅¹¹⁾ : 죄다 없어 짐
세장世庄¹²⁾ : 대대로 살던 집. 생전에 살던 집
와즙瓦葺¹³⁾ : 기와로 지붕을 덮음.
아결雅潔¹⁴⁾ : 고아하고 순결함
찬상贊賞¹⁵⁾ : 높이 평가하다.
강산승경江山勝境¹⁶⁾ : 명승지名勝地
풍유風猷¹⁷⁾ : 올바른 가르침
오매寤寐¹⁸⁾ : 자나 깨나
유모遺謨¹⁹⁾ : 남기신 큰 교훈
記
유구悠久한 해와 달은 역사歷史를 창조創造하고 숭조崇祖의 정신情神은 후손後孫된 자者 불멸不滅의 심사心思이나 세웅世熊의 변천變遷에 따라 생리추구生利追求에 흡흡吸吸하여 동족同族으로서 친애親愛의 감感맞어 소원疎遠함은 실實로 한심寒心한 일이던바 이번 해외海外에 계시는 영국永國 정대正大 세동족世童族의 물심物心에다 대소가전원大小家全員이 정성精誠어린 노력勞力으로 조선祖先을 추모追慕하는 재실齋室을 세워 글자 그대로 추모재追慕齋라 이름 지었음은 오로지 집慹과 성誠을 다 바친 보람찬 결정結晶의 소산所産이라 이 고마운 사실事實을 후손後孫들은 있지 말고 합심合心할 것을 믿어 이를 기뻐하며 이글을 붙인다.
檀紀 四三一三年 十月 日 (서기 1980년 10월 일)
후손後孫 인주寅柱 지음
출처 및 참조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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