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평암리 백암 함안조씨 비곡재 琵谷齋

천부인권 2020. 4. 21. 08:00



2020.4.9. 진전면 평암리 백암마을 함안조씨 비곡재琵谷齋


진전면 평암리 1767(백암길 144-35)에는 함안조씨咸安趙氏 첨지중추부사공僉知中樞府事公을 추모하는 재실인 비곡재琵谷齋가 있다.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122m를 표시하고 「위도 35°09'06"N 경도 128°22'39"E」를 가리킨다.
비곡재琵谷齋는 평암리平岩里 백암白岩마을의 제일 위쪽에 홀로 자리하고 있으며 산 가장자리의 바위틈에 산벗나무가 꽃을 피워 한 폭의 그림 속으로 걷는 듯 느껴진다.




2020.4.9. 진전면 평암리 백암마을 함안조씨 비곡재琵谷齋 모습



2020.4.9. 진전면 평암리 백암마을 함안조씨 비곡재琵谷齋 대문



2020.4.9. 진전면 평암리 백암마을 함안조씨 비곡재琵谷齋 대문



함안조씨 비곡재 琵谷齋



비곡재 琵谷齋 편액



비곡재琵谷齋 주련
克㓤自佃㵧○悃○
居孝以禋禦土忠抽
烝民上帝辟朝庭徾
曆有物綏階裔靖之




琵谷齋上樑文
粤自爰審厥形曁窼先





琵谷齋記
咸州之鎭山曰艅航西馳 一脈蜿蜓數十里 作琵瑟谷 山明水麗 左擁右抱 而中有四尺崇者乃我族先祖 僉知中樞府事公之堂 斧之封也 公之葬于 斯已三百餘載 而尙無齋宿之所 一日公之諸孫相與合 議醵金聚材木 始於丁未秋凍 而至翌年春 功告訖紹構 凡三間之燠室凉軒 制度周密 栽花種竹 風致爽然 扁之曰 琵谷之因 其自地名抽懷 而本名號琵谷齋也 請余以記之余歛衽起敬曰 善矣哉 掌翕於先誼攻事敷貰與之 鏞柱君族孫德來相詞 以禮之的乎 亦眷(言+布)厥功 諸公之爲汭深綍力也 追遠報本 人道之恒 天性之彛也 詩曰惟桑與梓 必恭敬止 況祖先體魄 永安之所 而豈不敬恭 而追遠乎哉 祭於墓而自發霜露 悽愴之感 會於稀稟齋修 而自生花樹 愖樂之情 其所感於懷者 同是祖也 所生於情者 同是孫也 惟願諸公 敦行孝悌勉修 其諄無違矣 詩禮言忠信行篤敬上而承 祖先之遺 範下而貽 子孫之課業 永世不朁 則在天先靈 必將悅豫 而洋洋陟降於 斯焴齋之上下矣 勉之勉之是役也 侍從勤勞者鏞柱君云
戊申陽復月哉生魄傍裔孫鏞述謹記


비곡재기 琵谷齋記
함안의 진산鎭山은 여항산艅航山인데 그 한 줄기가 서쪽으로 꾸불꾸불 수십리數十里를 달리다가 비슬琵瑟 골짝이 되었는데 경치景致가 아름답고 좌우로 포옹抱擁한 가운데 있는 높다란 무덤은 나의 족族 선조先祖인 첨지중추부사공僉知中樞府事公의 봉분封墳이다. 공公을 장사將事한지 이미 200여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제계齊戒하고 유숙留宿할 장소場所가 없어서 하루는 공의 여러 후손後孫들이 서로 합의合議하여 금화金貨를 거두고 재목材木을 모아 정미丁未(1967)년 늦가을에 공사工事를 시작하여 익년翌年 봄에 공사를 마치니 무릇 3칸인데 방房은 따뜻하고 헌함軒檻¹⁾은 시원하며 제도制度가 주밀周密²⁾하여 꽃과 대나무를 심으니 경치景致가 시원하다. 비곡琵谷이라고 편액扁額한 것은 비곡琵谷으로 인하여 그 지명地名의 이름을 따라 비곡재琵谷齋라고 불렀다.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請하여 나는 옷깃을 여미고 공경恭敬하는 마음을 일으켜 가로대 「훌륭하도다. 선세先世로부터 친親히 지내온데 대하여 손을 모아 예禮를 올리고 재기齋記를 지어 용주군鏞柱君과 족손族孫 덕래군德來君에게 주어서 예禮로서 서로 주고받았으니 참으로 그 공功을 살펴보면 여러분들의 생각이 깊고 힘을 합한 것이라 하겠다.」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고 근본根本에 보답報答하는 것은 인도人道의 떳떳함이요 타고난 인륜人倫이다. 시경詩經에서 「조상祖上이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恭敬한다.」 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조상의 체백體魄³⁾이 묻힌 곳에 있어서 어찌 공경恭敬하고 추모追慕하지 않겠는가.
묘소墓所에 제사祭祀지내는 것은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슬픈 느낌이 스스로 생기고 재사齋舍에 모여 음식飮食을 나누어 먹으면 스스로 화수花樹⁴⁾의 즐거운 정情이 솟아나니 그 마음속으로 느끼는 바는 같은 조상祖上이기 때문이며 정情이 우러나는 바는 같은 자손子孫이기 때문이다.
오직 바라건대 여러분은 효제孝悌를 두터이 행行하고 힘써 그 가르침을 닦아서 어김이 없을지어다. 시례詩禮의 말은 충성忠誠되고 믿음이 있으면 행실行實은 돈독敦篤하고 공경恭敬히 하여 위로는 조선祖先이 끼친 법도法度를 이으며 아래로는 자손子孫에게 과업課業을 주어 영원토록 변變하지 않으면 하늘에 있는 조상의 영령英靈이 반드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양양洋洋히 이 빛나는 재사齋舍의 상하上下에 오르내릴 것이다.
힘쓰고 힘쓸지어다. 이 역사役事에 처음부터 끝까지 부지런히 힘쓴 사람은 용주군鏞柱君이다.
무신戊申(1968)년 11월 16일 방손傍孫 용술鏞述이 삼가 기록하다.


【주석】
헌함軒檻¹⁾ :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
주밀周密²⁾ : 주도면밀하다. 세밀하다.
체백體魄³⁾ : 죽은 지 오래된 송장 
화수花樹⁴⁾ :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이 좌습유(左拾遺)에 제수되어 장안(長安)에 갔을 때, 원외랑(員外郞)으로 있는 어느 위씨(韋氏) 집안의 친족들이 꽃나무 밑에서 매번 술자리를 벌이고 단란한 모임을 갖는 것을 보고 〈위원외가화수가韋員外家花樹歌〉를 지어 찬양한 데서 왔다. 친족 간의 모임을 ‘화수회花樹會’라고 부른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言+布) : 간할 포


출처 및 참조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