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북면 인곡 김해김씨 모운재 慕雲齋

천부인권 2020. 6. 14. 05:10

2020.6.12. 진북면 인곡 김해김씨 모운재慕雲齋 대문

 

진북면 인곡리 741(인곡1길 13)에는 김해김씨 창련공昌鍊公을 향사하기 위해 1976년 후손들이 모운재慕雲齋라는 이름으로 재실을 지은 곳이다. 구글지도는 「위도35°07'40.8"N 경도128°26'43.0"E」를 표시한다. 대문에는 독경문篤敬門이라 편액했고 본재本齋에는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가 모운재慕雲齋라 편액한 글씨를 남겼다. 기둥에는 주련이 붙었고 대청의 문 위에는 모운재기慕雲齋記 및 주손胄孫 호균互均이 쓴 원운原韻과 후손 홍구洪球와 종생鍾生이 남긴 차운次韻도 있다.

 

2020.6.12. 독경문篤敬門 편액
모운재慕雲齋
모운재慕雲齋 편액
주련柱聯

 

[해문-전문]
翼然軒楹于澗之東 날아갈 듯한 재실은 개울 동쪽에 있는데
敬慕聿修邊豆惟恭 경모하여 수리하고 제사를 공손히 지낸다네
誦詩讀禮課忠責孝 시경 외고 예기 읽으며 忠을 배우고 孝를 가르치네
追遠勿替虔守箕弓 먼 조상 추모하는 일 폐하지 않고 경건히 가업을 지킨다네

 

2020.6.12. 모운재기慕雲齋記

 

慕雲齋記
夫孝子之事親也生 而盡致養之道 而猶以爲未足也 歿而祭之廟祀之阡 以猶以爲未足也 逎肯構齋舍于 子孫梓里之榜 以欲追遠報本之無所 不用其極 此東彛之天 而亦賢孫無窮之思也 故嘉善大夫雲岩金公諱昌鍊 駕洛之裔 而版圖判書管之後也 自少才華夙就志尙不凡 有峻整之儀 高邁之表弱冠 登文科躡嘉善 階而時士類 睽貳朋黨 已痼擔然無雲衢之望 而自統營胥宇 於牛山鎭北之仁谷 爲潛彩終老計 而性於孝生 死葬祭誠力俱盡 御酬鄕秩然 有度爲一方矜式矣 公衣履之葬 在統營道山 而距今世代曠遠 尙齋宿寓慕之無所 爲後仍齎恨久矣 後孫洪球乃倡於族 而積歲拮据起四楹 於仁谷之坊 顔之以慕雲齋 而曰胄孫互均 及永植以族人秀甲 所述狀誌訪予 金官之秋月山房囑以記 實之文窃惟 士之所貴者出輿處之得乎 中要無汚我一身 而苟無有乎是 則雖貴爲卿相貴 有鼎鍾未免 爲後世之所 嘲笑何足道哉 以公蘊蓄之富 宜進塗之方闢 而時乎屯蹇 能見機肥遯於海山之絶 崖水竹間 歌咏堯舜 獨善无憫 爲一家明哲之保者 豈非後人之所 當模倣者耶 今裔孫之居玆土者 敦尙儒雅孝友 爲箕羶亦見 公懿範之錫也 惟金氏之處是齋 而齋省廷賓者 惓惓然念厥先德 銜訓勅躬益講明乎 倫常之道 敬慕之實 而推及於邊豆 禮數之節然後 始无忝斯也矣
丙辰冬全州李雨燮記

 

모운재기 慕雲齋記
대저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 살아서 봉양의 도道를 지극히 해도 만족치 않음이요. 세상 떠남에 사당제사祠堂祭祀와 산소에 제祭를 지냄도 오히려 만족하지 않느니라. 이에 재실을 지어 자손들 고향마을 옆에서 추원보본追遠報本¹⁾을 하고자 그 지극하게 쓰이지 않음이 없느니라. 이 상도常道²⁾를 굳게 지키는 하늘에 또한 현손賢孫들은 무궁한 생각이니라. 그런고로 가선대부嘉善大夫³⁾ 운암김공의 이름은 창련昌鍊으로 가락의 후예로 빛나는 재주가 있어 학업을 일찍 성취하고 뜻이 고상함이 보통이 아니고 엄숙하고 단정한 거동은 뛰어난 품의의 표정이드라. 약관弱冠⁴⁾에 문과에 올라 가선嘉善의 품계에 올랐고 때는 사류士類들이 두 붕당으로 갈리어 이미 고질화된 것을 부담케 되어 하늘을 바라볼 수 없어 통영統營으로부터 옮겨 살기를 우산牛山 진북鎭北 인곡仁谷이다. 그곳에서 침거하면서 노년을 마치고자 하였다.
천성이 효자로 태어나 죽음과 장례의 성력誠力을 다 갖추고 친족을 다스리고 향인鄕人을 대접함이 질서정연하고 법도가 있어 일방의 본보기가 되었다. 공公의 묘는 통영 도산道山에 있고 지금으로부터 세대는 아득히 머나 오히려 재계하고 묵으며 추모할 장소가 없어 후손들은 한이 쌓임이 오래 되었다. 후손 홍구洪球는 이에 친족들을 설득하여 여러해 동안 힘쓰 일하여 삼칸집을 인곡仁谷마을에 세우고 편액을 모운재慕雲齋라 하였다. 종손 호균互均과 영식永植은 족인 수갑秀甲이가 기술된 장狀과 지誌를 가지고 내가 사는 김해 추월산방秋月山房을 찾아와 기문을 부탁하였다. 실實로 문文은 곰곰이 생각건대 선비로써 귀한 바는 나가서 벼슬을 하는 일과 물러나 집에 있을 시時를 득함이요 중요한 것은 나의 일신이 구차하게 살지언정 썩지 않음이니 비록 경상卿相⁵⁾을 귀貴하게 여기고 공적의 기록에 빠짐을 면하지 못함이 있으면 후세에 비웃게 되니 어찌 선비의 도에 족하랴. 공은 저축된 부富로써 의롭게 나아가 도탄의 어려움을 열었고 때는 혼란한데 능히 기회를 보아 해산海山의 깊숙한 언덕의 무성한 대밭 사이에 은거하며 요순堯舜⁶⁾의 풍속을 읊조리며 홀로 착하게 번민 없는 한 집안을 밝게 보호한 것은 어찌 후인들이 마땅히 본받을 바가 아니랴. 지금 후손들이 사는 이 곳은 유교의 우아한 효도와 우애를 두터이 숭상하고 가업과 문물도 역시 공의 아름다운 모범이 내려 주어진 것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오직 김씨들의 거처인 이 재실은 재계성찰하고 손님을 초대하는 것에 진심을 다하고 선조의 덕을 받들 것을 생각하고 훈계를 가르치고 인륜 오행의 도가 밝아지면 경건히 사모하는 실체이니 제사 지내는 예禮의 몇 마디 말을 미루어 생각한 연후에 비로소 이에 욕됨이 없느니라.
병진년(1976) 겨울 전주 이우섭 짓다.

 

【주석】
추원보본追遠報本¹⁾ :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갚음
상도常道²⁾ :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 존재이자 진리
가선대부嘉善大夫³⁾ : 조선 시대, 종이품 문무관의 품계
약관弱冠⁴⁾ : 스무 살이 된 남자를 일컫는 말.
경상卿相⁵⁾ : 재상의 벼슬에 오름
요순堯舜⁶⁾ : 고대 중국의 요임금과 순임금

 

주손 호균이 남긴 원운 시

原韻[해문-文山]
巋然棟宇玉峯陽 높고 우뚝한 재실을 옥봉의 양지바른 곳에 세우니
肯構敢言世德光 유업을 이었다 감히 말하며 대대로 쌓은 덕이 빛나구나.
滿壁圖書光墨翠 벽장에 도서 가득하여 검푸르게 빛나니
徺軒松栢歲寒蒼 요행히 집의 송백은 추운 겨울에도 푸르구나.
念修恒勉彛倫重 조상을 생각함에 항상 힘쓰며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 무거우나
孝睦方期後裔昌 효도하고 화목함을 본받아 기약하니 후예들은 창성할 지라.
敬慕相傳終勿替 존경하고 사모하여 섬김을 대대로 이어 전하고 끝내 시들게 하지 않으니
春秋蘋薦禮何忘 봄·가을에 올리는 조촐한 예를 어찌 잊겠는가.
胄孫 互均 파派의 맏이 호균互均 짓다.

 

후손 홍구가 남긴 차운 시
후손 종생의 차운 시

출처 및 참조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