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북면 인곡 인동장씨 서계정 西溪亭

천부인권 2020. 6. 15. 05:23

2020.6.12. 진북면 인곡 인동장씨 서계정西溪亭

 

진북면 인곡리 648(의림로 263)에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서계西溪 옥추공玉樞公을 향사하기 위해 1972년 후손들이 서계정西溪亭라는 이름으로 재실을 지은 곳이다. 구글지도는 「위도35°07'48.2"N 경도128°26'46.0"E」를 표시한다.
의림사義林寺를 가면 인곡리를 지나게 되는데 인곡리 길가 좌측에 서계정西溪亭이 위치한다. 대문 편액은 대청문待請門이고 본재의 편액은 서계정西溪亭이며 모원당慕遠堂과 망추헌望楸軒이 방의 이름이다. 4개의 기둥에는 주련 시를 달았고 대청의 문 위에는 기문과 운문 차운의 편액이 걸려 있다.

 

2020.6.12. 서계정 대문
대청문待淸門 편액
진북면 인곡 인동장씨 서계정 西溪亭
서계정西溪亭 편액

 

서계정西溪亭 주련

一區澗阿遺躅依然
古床琴書貽謨敢忘
晴月交輝想仰襟懷
敦倫譚經丕述前光

 

서계정西溪亭 제감題感

 

 

西溪亭記
夫祖先之有德美 而述以繼之仁也 有事蹟而補 以彰之孝也 仁爲萬善之長 而孝爲百行之源 故君子於此盡心焉 鎭海之仁谷坊 有西溪張公諱玉樞 以名祖肖裔承英襲芳素 以純厚之自 加精一之工澹 然無求媚於世 與伯仲西隱西庵友愛尤至 聯床講學怡然有椿津家法 公嘗所構西溪亭者 見燒於日虎之亂 遺文床書亦不免焉 於是諸後孫不勝 慨然起四楹於舊址 謁余記之余曾聞 公自先世有寒岡旅軒兩先生 淵源之好 且與堂艅南志九氏 有傾盖之雅 一躡仙區 則何吝於荒辭之述哉 鳴呼 今海內大亂綱常禮義之視 如土苴復二短喪遺親之說 驅人類於走翔之域 而張氏毅然不與之混 而述先懿於家庭傳心蹟於後昆兢兢乎 祖先情神心法之惟泯泯焉 則亦可欽仁孝之風 而信乎秉彛之 有終古不墜者矣 願日夕起居於斯者 以公當日天倫之叙 講道之勤 爲津軌其齋明也 薦香也酬族也應賓也 咸是亭焉力 以行之勤 以獎之則述德彰蹟孰大於是 而一區孤亭雖謂張氏 不食之碩果也 踵余門而請之者 圭相志憲也
壬子陽月 完山 李雨燮記

 

서계정기 西溪亭記
조선의 미덕을 계술하는 것은 인仁이요 사적을 보수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孝라 인仁은 만선에 제일이 되고 효는 백행에 근원이 되는 고로 군자들이 인과 효에 진심용력을 하는 것이다. 진해 인공에 서계장공의 이름은 옥추玉樞로 훌륭한 조상을 둔 후손으로 뛰어난 점을 이어받고 계승하여 순후한 자질로 정일精一¹⁾한 공부를 가하여 담연히 세상영화를 구하고저 아니하고 백중씨 서은 서암과 우애가 극진하고 강학과 가법을 바로 세웠다. 공이 일찍이 세운 서계정西溪亭이 경인년 난때 소진되었는지라 후예들이 개연함을 참지 못하여 옛터에 삼칸집을 새로 짓고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공이 선세로부터 한강寒岡과 여헌旅軒 양선생과 연원이 있고 또 당손 여남지구씨艅南志九氏같은 아사雅事²⁾가 있으니 선구仙區³⁾에 발을 옮긴 오늘날 굳이 황사荒辭⁴⁾로 덧붙일 필요가 있겠나 오호라 오늘날 나라가 혼란하여 강상과 예의를 쓰레기같이 여기고 상의 기간을 짧게 하고 유친하자는 설로 인류를 금수지역으로 이르게 하거늘 장씨는 의연히 혼란에 빠지지 않고 선의를 계술하고 사적을 유지하여 조선들의 정신을 일깨우니 인효의 풍화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원컨대 밤낮으로 이곳에서 기거하는 이는 공이 당시에 서술하던 천륜과 근면하던 강도로 법을 삼아 제명하고 천향하고 수족하고 응빈하는 것을 모두 이 재실에서 하여 힘써 행하고 부지런히 장려한즉 술덕하고 창적하는 것이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있겠나. 일구고정이 비록 장씨의 먹지 못하는 석과碩果⁵⁾라 하더라도 불가함이 없을 것이다. 나에게 와 글을 청한 이는 규상圭相과 지헌志憲이라.
임자(1972)년 여름에 완산 이우섭 쓰다.

 

【주석】
정일精一¹⁾ : ①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다 ② 순수하다 ③ 전일(專一)하다 ④ 섞임이 없다
아사雅事²⁾ : 아름답고 고상한 일
선구仙區³⁾ : 신선이 사는 지역
황사荒辭⁴⁾ : 황당무계한 말
석과碩果⁵⁾ :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말

 

 

서계정西溪亭 운韻

 

서계정西溪亭 차운次韻
망추헌望楸軒
모원당 慕遠堂

출처 및 참조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