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구산면 심리 진주정씨 영모재 永慕齋

천부인권 2020. 6. 9. 08:49

2019.9.11. 구산면 심리 진주정씨 영모재永慕齋 전경

구산면 심리 600-1(심리2길 11-14)는 진주정씨晉州鄭氏의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위치한 곳이다. 선조 구은공龜隱公 정연달鄭延達을 모시고 향사하는 영모재永慕齋는 구글 지도에는 「위도 35°04'08.4"N 경도 128°36'24.7"E」를 표시한다.

 

2019.9.11. 진주정씨 영모재永慕齋 대문
진주정씨 대문 첨성문瞻省門 편액
영모재永慕齋 전경
영모재永慕齋 편액
영모재 주련

영모재 주련(永慕齋 柱聯) [전문]
龜山深里自生皋 구산(龜山)의 심리(深里)에 절로 언덕이 생겼으니
夏海雄波未興淸 큰 바다의 거대한 파도 넘실거리나 덮쳐오지 않네.
戒子遠慮庭訓德 자손 경계한 깊은 염려는 집안의 가르침 덕분이니
敢忘不敬慕先靈 감히 잊고서 선조의 영령을 경모하지 않겠는가.
精禋苗裔俗於香 인정 있고 예의바른 후손들은 풍속이 향기롭고
華閥儒風世蔭氈 화려한 벌열 유교 풍속은 선대 음덕의 유물일세.
*未興淸 : 미상. 파도가 넘실거리며 덮쳐오지 않는다는 것인지 미상.
*俗於香 : 미상.

 

영모재기

永慕齋記
漆原之地 斗入海上 山叢水繞 而成一小縣者曰 龜山縣之南端有向北 而村者曰 深里里之中 新築一屋 突兀翔起於 芽茨櫛比之間者曰 永慕齋即所居鄭氏 爲其先龜隱公 諱延達 寓慕齋宿之所而作也 旣成鄭君載桓訪 余于合浦之寓請爲之記 而以龜隱公遺事 爲資案鄭氏 晋陽著族簮纓歷世不絶逮公之世居晋陽白也 峴同枋洞考靜谷公 以賢行稱于鄕黨 兄弟六人公其季也 俱有文行怡愉 湛樂公 以孝悌聞中遭家難避之南下遵海 而處是其址也 晩築精舍數間名之曰 龜山書室靜居養志敎 子孫詩書甞戒之曰 此地濱海多漁業 汝曹其無同不有儒家 耕讀事耶 愼無墜先緖後承至 今世守焉 而子姓繁衍 宛然成南邉 一知名門 戶是齊之作 盖經營屢代未遑 而今始告功鄭氏之誠 與力其集矣 鳴呼方公之來 寓玆土也 豈能無羈孤捿屑之感 而卒乃雲仍蔚興奠基聚居以至 斯齊之成 相與念祖烈講 敦睦花樹團欒 使人稱之曰 鄭氏之門其昌矣 公是儼然 爲一姓中剏之祖 此其無所因 而然哉亦惟曰 積善種德有足 以蔭其來裔者矣 而顧今世變罔極斁倫亂記日甚一日 而諸鄭氏乃能追遠永慕 以敦是役亦可謂無愧 爲公后而有警於裏世多矣 此余所不得 辭而爲之記云
丁酉八月 日 夏山 成純永 記

 

영모재기 永慕齋記[해문-박태성]
칠원漆原 땅 중에 바닷가 월경지가 있는데 산들이 우뚝하고 물이 둘러 있어 하나의 작은 고을을 이루었는데 구산龜山이라고 한다. 구산현의 남쪽 끝에 북쪽을 향한 마을이 있는데 심리深里라고 한다. 심리마을에 새로 한 집을 지었는데 초가집이 즐비한 곳에 홀로 우뚝하니 영모재永慕齋이다. 이곳은 정씨들이 사는 곳으로 그 선조인 구은공龜隱公 휘諱 연달延達을 사모하는 마음을 기대며 재숙齋宿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이미 재실을 지은 후 정재환鄭載桓군이 합포合浦에 있는 나의 집을 방문하여 그 기문을 청하였다. 구은공龜隱公의 유사遺事를 토대로 정씨의 내력을 살펴보았다. 정씨는 진양晋陽의 큰 족벌로 큰 벼슬아치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공의 대에 이르러 진양晉陽의 수령이 되었다. 그 아버지 정곡공靜谷公은 어진 행실로 고을에 칭송이 높았다. 형제가 6명인데 공은 막내다. 모두 문장과 행실로 이름이 있었다. 심락공湛樂公은 효행과 공경으로 이름이 났는데 난리를 피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바닷가에 이르렀는데 이곳에 그 터를 잡은 것이다. 만년에 정사 몇 칸을 짓고 그 이름을 구산서실龜山書室이라 하였다. 조용히 기거하며 뜻을 기르고 자손들에게 시와 글을 가르쳤다. 일찍이 자손들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이 곳은 바닷가로 어업을 일삼는 곳이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그들과 같이 하면서 유교 집안의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함이 없어야 되겠는가.’하였다. 그 선대의 남긴 유업을 떨어뜨리지 않고 후대의 자존에게 이어서 지금까지 그것을 지켰다. 자손들이 번성하여 완연히 남방 바닷가의 알려진 이름난 가문이 되었다. 이 재실을 짓는 데 여러 대를 지나도 경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그 공사를 마친 것은 정씨들의 정성과 힘을 모은 것이다. 아아! 공이 이땅에 와서 자리잡은 것이여 어찌 나그네의 외로움과 쓸쓸히 분주한 감응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끝내 자손들이 번성하여 이곳에 모여 살면서 이 재실을 짓게 되었다. 자손들이 선조를 앙모하고 자손들의 화목을 강론하여 단란하게 살아가니 사람들이 이들을 칭송하여 ‘정씨들의 가문이 창성하리라.’ 하였다. 공은 엄연히 정씨가문의 중시조中始祖이다. 그 연고가 없이 그렇게 되겠는가. 오직 이르되 선善을 쌓고 덕德을 심어면 족히 그 음덕이 후손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이 급변하여 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데 정씨들이 능히 먼 조상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공역을 이루었으니 또한 공의 후손으로써 부끄럽지 않다고 할 것이며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운 경계가 될 것이다. 내가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이렇게 기문을 쓰게 되었다.
정유丁酉 8월일 하산夏山 성순영成純永 짓다.

 

영모재상량문永慕齋上樑文 편액

 

경제영모재운

敬題永慕齋韻
新築斯堂感慕生 새로 지은 이 당에 사모하는 마음 생기니
共將誠力揭楣名 다 함께 정성과 힘을 다해 문미에 이름 높이 걸었네.
壙阡家近頻回望 묘지가 집에서 가까워 자주 돌아와 바라보고
俎豆時陳倍愴情 제기를 때에 맞춰 차리니 슬픈 정 갑절이 되네.
洞口風來松檜語 마을 입구에 바람 불어 소나무 전나무가 말 전하고
簷頭雲齋水山明 재실 처마 머리는 구름처럼 공경하니 산수가 밝구나.
述先裕後從何得 선조의 계술로 후손이 넉넉하니 쫓아서 얻고
敎子書經不替聲 자식을 경서로 가르치니 소리를 아니 바꿀 수 있겠나.
十世孫 源星 謹稿 10세손 원성(源星) 삼가 짓다.

 

근차판상운

謹次板上韻
久闕先齊愧後生 오랫동안 선대 재실이 없어 후생보기 부끄러워했으나
今纔新築標楣名 이제 겨우 새로 지어 문미(門楣)에 이름 표했네.
抛樑各盡微誠力 상량문에 각각으로 작은 정성 기록했고
揭額猶添永慕情 현판을 걸고 보니 영원히 그리운 정 더하도다.
南顧靑嶝林壑美 남쪽을 보니 산등성이 숲과 골짜기 아름답고
東望白嶼屿沙明 동쪽 흰 섬 바라보니 작은 섬의 모래가 빛난다.
願言諸族相敦睦 집안 모든 일가에게 소원을 말하자면 서로 돈독하고 화목하여
長使吾家不墜聲 우리 집안 길이 가문의 명성 떨어드리지 말지어다.
後孫 載桓 謹稿 후손 재환(載桓)이 삼가 초안하다.

 

謹次板上韻
營建斯齊追慕生 이제 조상을 추모할 수 있는 제사(齊祠)를 지었으니
愧而猶晩揭楣名 부끄러워 오히려 늦게 문미에 이름 높이 걸었네.
吾祖當年筮卜地
兒孫今日箕裘情
藍江漠漠簾前濶
龜峀蒼蒼檻外明
敢憐未了生平志
但願餘晜繼古聲
後孫 永聖 謹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