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부소산 백화정과 낙화암 扶餘山 百花亭 落花巖

천부인권 2023. 5. 12. 22:46

2023.5.9.부소산문

성주에서 긴 거리를 이동하여 백제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부소산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에 도착했다. 낙화암으로 가기 위해서 부소산문을 통해야 하는데 루樓의 전면 현판을 '扶蘇山門'이라 했고 안쪽에서 루樓를 바라보니 '사비문泗沘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2023.5.9.부소산문 扶蘇山門 편액
2023.5.9.사비문 泗沘門 편액
2023.5.9.백화정 百花亭

부소산 북쪽 절벽이 낙화암落花巖인데, 그 낙화암 위에 있는 정자가 백화정百花亭이다. 낙화암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멸망 당시 이곳에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곳인데, 이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백화정百花亭을 세웠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소동파蘇東坡가 혜주惠州에 귀양갔을 때 성 밖의 풍호豊湖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百花洲’라는 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6각형 평면에 6각의 겹처마 지붕이다. 백화정 편액은 부소산을 바라보는 ‘백화정百花亭’ 현판은 석정石丁 안종원安鐘元(1874~1951)의 글씨이고, 백마강을 바라보는 ‘백화정百花亭’ 현판은 우하又荷 민형식閔衡植(1857~1947)의 글씨이다. 백화정 안에는 백화정을 지을 당시 부여군수였던 홍한표가 지은 백화정기百花亭記가 걸려 있다. 아래에는 원문과 국역을 옮겨 둔다.

 

2023.5.9.백화정 百花亭
2023.5.9.백화정 百花亭 편액
2023.5.9.백화정기 百花亭記 편액

百花亭記
落花巖, 在扶餘郡扶蘇山北, 皐蘭寺南, 屹立千丈, 白馬江過其趾. 唐羅兵至王宮, 諸姬上巖墜于江. 都以古蹟勝¹⁾, 此其一也. 臺閣城塔, 舟車坌集²⁾, 朝夕於迎送. 余 玆三年, 悉具利病, 上告下議, 遂乃設館, 置司以句管³⁾之, 於是賓旅如歸, 官吏事事, 各得便宜. 適了諸公結詩社, 醵⁴⁾金建亭于巖上, 以爲風詠⁵⁾之所. 稜角六面, 木若干, 瓦若干, 石鐵若干, 樑曰百花, 蓋取濟氏之巖也. 詩社題名⁶⁾及條例⁷⁾, 別有書以圖書以壽于永, 公玆不架疊⁸⁾, 諸公以磁鍼之感謁, 余以一寫吟乎! 程子曰, “不可謂今影却收.” 爲來歎然, 則時年之花爲復, 當年之在,當年之花, 非復後秊之花, 大化⁹⁾所繼, 浩浩¹⁰⁾落落¹¹⁾, 巖與存亡消長往來, 亦客停泊, 有國造命, 其所常監戒也. 爲之賦我先祖石壁公¹²⁾詩之曰, “國破山河異昔時, 獨留江月幾盈虧, 落花巖畔花猶在, 風雨當年未盡吹.” 莊誦一篇, 嗚咽¹³⁾不成聲, 座中隱隱¹⁴⁾有鈿筑¹⁵⁾氣. 余將辭歸林泉¹⁶⁾, 掩扉¹⁷⁾斂跡¹⁸⁾, 以承家學, 得遂素志, 亦往諸公之賜也. 亡爲記.
唐城后人 洪漢杓

백화정기
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이자 고란사 남쪽에 천길 높이로 우뚝 솟았는데, 백마강이 그 발밑으로 지난다. 나당 연합군이 왕궁에 이르자, 여러궁녀들이 이 바위에 올라 강으로 떨어졌다. 모두 명승고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낙화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자온대, 대재각, 부소산성, 백제탑 등에 객을 태운 배와 수레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침 저녁으로 맞이하고 보내야 했다. 내가 여기에 부임한 지 3년인데 그 이익과 병폐를 모두 갖추어 상부에 보고하고 아랫사람과 상의하여서 드디어는 숙소를 만들었다. 담당자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니, 나그네들이 돌아가고 관리들은 일마다 편리하게 되었다. 마침 여러분들이 시모임[詩社]을 만들고는 돈을 거둬 낙화암 위에 정자를 짓고 시를 외고 읊을 장소로 삼았다. 6각형 모양에 나무 약간, 기와 약간, 돌과 쇠도 약간 써서 정자를 짓고는 들보에 ‘백화(百花)’라 했으니, 백제 시대의 바위에서 따온 것이다. 시모임의 명칭과 규약은 다른 책에 별도로 써서 영원히 전달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거듭하지 않겠다. 여러분들이 나침반으로 좌향을 본 것에 감격하여 읊으니 여기서는 나 또한 한 수 읊으리! 정자께서 “지금 그림자는 거둘 수 없다.”고 하였으니, 당시에 있었던 것은 당시의 꽃이지 다시 뒤에 핀 꽃이 아니다. 큰 덕화가 이어져 넓고 커서 바위는 존재하고 망하고 사그라지고 성장하고 오고 가며 더불어 하였으니 나그네도 머물고 있으니 나라를 만들려는 이에게는 늘 살피고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의 선조인 석벽공(石壁公, 홍춘경)의 시에서 “나라가 깨지니 산하도 예와 다른데, 낙화암에는 꽃이 아직도 남아 있네. 홀로 강에 머문 달은 몇 번이나 차고 이지러졌나. 당시의 비바람은 아직도 다 불지 않았나.”라한 이 한 편의 시를 엄숙하게 읊조리려니 눈물 나서 말을 다하지 못하였고 좌중은 은은히 울리는 보배로운 비파소리와 같은 분위기였다. 내가 관직을 사직하고 산속으로 가서 사립문 닫아걸고 종적을 감추고는 가학을 이으려는 평소의 뜻을 이루려는 것도 여러분들의 은택(恩澤)이다. 외람되이 적어 본다.
당성후인 홍한표洪漢杓

【주석】
蹟勝¹⁾(적승) : 이름난 고적.
坌集²⁾(분집) : 모여듦.
句管³⁾(구관) : 맡아서 다스림.
醵⁴⁾(갹) : 추렴하다.
風詠⁵⁾(풍영) : 시를 외고 읊음
題名⁶⁾(제명) : 한문의 한 문체. 명승, 사원 등을 올라가 구경하고 찾아간 날짜와 같이 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다.
條例⁷⁾(조례) : 회사나 조합의 정관.
架疊⁸⁾(가첩) : 거듭하여 겹침.
大化⁹⁾(대화) : 넓고 큰 교화, 덕화(德化).
浩浩¹⁰⁾(호호) : 넓고 큰 모양, 물이 엄청나게 많이 흐르는 모양, 길이 길게 계속 되는 모양, 번쩍이며 빛나는 모양.
落落¹¹⁾(낙락) : 축 늘어져 있는 모양, 여기저기 떨어져 있음, 뜻하는 바가 크고 뛰어남
石壁公¹²⁾(석벽공) : 홍춘경(洪春卿)의 호이다. 1497년(연산군 3)∼1548년(명종 3).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중(明
仲), 호는 석벽(石壁).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에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글씨에 뛰어나 김생체(金生體)에 능하였다.
嗚咽¹³⁾(오열) : 목이 메 욺.
隱隱¹⁴⁾(은은) : 걱정하는 모양.
鈿筑¹⁵⁾(전축) : 鈿은 비녀, 또는 보배로운 장식. 筑은 거문고 비슷한 악기.
林泉¹⁶⁾(임천) : 숲과 샘. 곧 수목이 울창하고 샘이 흐르는 산중.
掩扉¹⁷⁾(엄비): 사립문을 닫아 걸음.
斂跡¹⁸⁾(염적) : 종적을 감춤.

 

2023.5.9.백화정 아래
2023.5.9.낙화암
올려 본 백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