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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천부인권 2023. 4. 2. 16:51

2021.5.9.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원계정遠溪亭은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193-1(가촌길 37-25)에 위치하며 진양하씨晉陽河氏 하일河鎰이 부제학·대사헌·이조참판 등을 지낸 삼산三山 이병상李秉常(1676~1748)이 함양에 귀양와 있을 때 더불어 놀았던 이심대理尋臺 위에 200여년 뒤인 원계遠溪 하재섭河在涉이 영모재를 지었고, 그의 아들 하정식河定植이 6대조 하일河鎰을 추모하여 이 원계정遠溪亭을 세웠는데, 손자 하종철河宗澈이 1938년에 완성했다. 
원계정遠溪亭을 방문하게 된 것은 필자가 경남의 진주강씨 재루정齋樓亭를 찾아다닐 때 보다 더 이전에 이곳을 지나다 봐둔 정자라 그때 지나는 길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위천渭川의 강변 널찍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좌우에 높다란 담장을 한 모습이 특이했는데 예전에는 주변에 제법 많은 노송이 있었지만 2021년에는 두 그루만 남아 있었다. 원계정遠溪亭은 정면 두칸 측면 두칸의 팔작와가이며 상량문, 기문의 현판과 시판詩板이 걸려 있어 아래에는 이들을 기록해 둔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200m, 좌표는 35°31'50"N 127°41'49"E를 가리킨다.

 

2021.5.9.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2021.5.9.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외부의 원계정遠溪亭 현판

遠溪亭記
遠溪臨㵢溪上 望之隱然若城郭 盖諸山之小者 而萃成為一區者也 稍下平阜突怒趾 以巨石磐陀廣殆數十筵 其底嵌坳爲池 與溪水吞吐黝 然類有物伏焉者 理尋臺 臺之勝特著於郡誌在 昔河公諱鑑 常與在謫 李公三山秉常遊止 於此而至今二百餘 我不爲他姓所占 有雖渭河氏之長物可也 今年夏六月 公之七世孫定植 始治亭於其處 役未了乃來諗于余曰 吾先世衣履 瓜多在遠溪 故先君子省楸往來 必逗于此臺之上曰 先蹟之所存也 不容泯泯 命刻遠溪二字 於崖面擬以自號 盖爲不忘先也 吾所以爲亭 於今日者固出於爲祖先地而尤切 於思親也 子獨無意於名吾亭而記之乎 余曰古之尹公之亭以姓也 光祿之堂以官也 獨不以公之自號 而名之遠溪乎 君曰吾意也 未幾君又遘厲一夕忽焉以殀 其嗣子宗澈乃泣 而葺之覆之以陶瓦繚之 以橫檻旣落之申屬余 爲記憶其兩世矣 烏得以辭之第 念臺榭之作其始也 莫不欲傳諸久遠 而不過數世化 爲丘墟荊棘如事之 忽往忽來有不足恃者 常比比於世 豈非其人無可傳之實 耶不是亭則有不然者 前世芳躅獨全 於滄桑屢變之後 而兩世之苦心殫力 闡發其先徽有如 此其爲可傳也 無疑亭之名遠不亦宜乎 若其左右山川之勝 槩與夫平野 雲烟之杳靄 爲漁樵商旅之所往來 而可備遊人之眺望者 不暇究論云
歲己未臘月初吉河琪鉉記

원계정기
원계(遠溪)는 뇌계(㵢溪) 위에 있는데 바라보면 은연(隱然)히 성곽(城郭)과 같다. 대개 여러 산(山)의 작은 것들이 모여서 한 구역을 이루었다. 조금 내려가면 평평한 언덕에 성난 듯이 솟은 큰돌 반석(磐石)이 터가 되었는데 반석(磐石)이 넓어 자리 수 십장을 펼 수 있고 그 밑에 골짜기는 오목하게 옷이 되어 냇물과 더불어 머금고 토(吐)하면서 검푸른데 무엇이 엎드려 있는것 같은 이것이 이심대(理尋臺)이다. 대(臺)의 빼어남이 특별(特別)히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옛날 하공(河公) 휘(諱) 일(鑑)께서 항상 귀양와 있는 이공(李公) 삼산(三山) 병상(秉常)과 더불어 여기에서 노닌지가 지금 이백여년(二百餘年)에 타성(他姓)의 소유가 되지 않았으니 비록 하씨(河氏)의 장물(長物)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금년(今年) 여름 유월(六月)에 공(公)의 칠세손(七世孫) 정식(定植)이 비로소 그곳에 정자를 세우면서 준공(竣工)도 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나의 선대(先代) 묘소(墓所)가 원예(遠溪)에 많이 있는 고로 선군자(先君子)께서 성묘(省墓)차 오가실 때 반드시 이 대(臺)에 두루 배회(排柯)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선적(先蹟)이있는 곳이니 어찌 민민(珉浜)하겠는가? 명(命)하여 원계(遠溪) 두 글자를 비탈 석면에 각(刻)하고 인(因)하여 자호(自號)를 한 것은 선대(先代)를 잊지 않음이라 내 오늘날 정자(亭子)를 지은것은 진실로 조상을 위함인데 그 정은 더욱 어버이 생각이 간절(懇切) 함이니 그대 홀로 내 정자(亭子) 이름에 생각함이 없으며 기문(記文)을 짓지 않을 것인가?』라고 한다. 내 이르기를『옛날 윤공(尹公)의 정자(亭子)는 성(姓)으로써 하고 광록(光祿)의 당(堂)은 벼슬로써 하였는데 그대 홀로 공(公)의 자호(自號)로 원계(遠溪)라고 이름하지 않았는가?』라고 하니 군이 대답하기를 『나의 뜻이다.』라고 하고 얼마 아니 되어 군이 또 급한 병(病)으로 문득 요사(殀死)하였다. 그 아들 종철(宗澈)이 이에 울면서 그 정자(亭子)를 다시 시작하여 기와로 덮고 비낀 헌함(軒檻)으로 들렀으며 이미 낙성(落成)하고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달라고 간곡(懇曲)히 부탁한다. 슬프다 그 양세(兩世)여! 어찌 사양(辭讓)하리오? 생각건대 대수(臺樹)의 지음에 처음은 다 후세(後世)에 영구히 전(傳)하고자 하지만 불과 수세(數世)에 넘어가고 그 터에 가시만 무성함이 사람들이 속히 가고 속히 오는 것과 같아 족히 믿을 수 없는 것이 세상(世上)에 비일비재하게 많으니 어찌 그 사람이 가히 전(傳)할 실상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정자(亭子)는 그러하지 않다. 선대(先代) 꽃다운 자취가 창상(滄桑)을 여러 번 변(變)한 후(後)에도 온전함을 얻었으며 양대(兩代)의 고심탄력(苦心彈力)이 선대(先代)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이 이와 같으니 가히 전(傳)할 것은 의심(疑心)이 없는지라 정자(亭子)를 원자(遠字)로 이름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는가? 그 좌우(左右) 산천(山川)의 승경(勝景)과 그리고 평야(平野)의 구름 연기 아득한 아지랑이는 고기 잡고 나무하며 장사군 행인들이 왕래(往來)하여 가히 노니는 사람들의 조망(眺望)을 갖춘 것은 내 미처 다 논하지 않는다.
기미년 12월 초 길일에 하기현河琪鉉(1881~1968) 쓰다.

 

遠溪亭上樑文
伏以在澗考槃碩人之前躅未泯 斯于築室孝子之追慕彌新 地不忍荒 事若看待 恭惟我族祖諱鎰 幸遭肅英晟際 素負隱倫高名 選勝林泉殆遍杖履之跡 謫居宰相偶同車笠之盟 迺占理坮之峭岩 允爲遠溪之福地 神鞭鬼斧裂蒼厓於林根 雲影天光逗碧潭於嵌竇 倚歟當時嘉逐之所 嗟夫今日曠感之懷 廬溪濯縷濂翁之霽月長在 桐江垂釣子陵之清風莫攀 伊來爲數百年荒墟 尚未遑一二間肯搆 承宣公之克肖先志曾鏡石而標名 主事君之不墜厥聲始鋤笰而董役 豈料茅棟之未落 遽報王樓之先成 萬事長休如中流之失楫 雙哀善繼代良匠而斷輪 咸曰制度得宜大木爲杗而細木爲桶 芜念造物多戲吊者在閭而賀者在門 桑梓之故里相隣惟恭敬止 霜露之先阡密邇必怵惕焉 沿溯則皆明沙激湍 顧眄而盡重巒疊阜 試論近地之諸勝 孰若斯亭之允臧 春晚杏花之坮或涉於湫隘 歲寒松林之榭亦無此環觀 宜白氏之誇昨堂地與我所聊騰短謠 信韓子之記燕喜天遺其人以颺好事
兒郎偉抛樑東 一派㵢溪純玉虹 自有浴沂遺想在 四時何日不春風
兒郎偉抛樑西 洲渚田睦一樣齊 最是詩人難盡處 秋陰淨盡夕陽低
兒郎偉抛樑南 如櫛杉松潑翠嵐 寒食年年無限痛 一家芬苾又墳庵
兒郎偉抛樑北 窈窕鷹岑撑北極 鳳翥龍蟠氣毓英 五家世世生才德
兒郎偉抛樑上 旻天仁覆昭而曠 生祥下瑞諒非難 忍遣吾君閉厚壤
兒郎偉抛樑下 決決寒淙石底瀉 我欲援琴寫此聲 柢今誰是知者者
伏願上樑之後 烟雲改觀 花樹增賁 爰居爰處永籍盤石之安 可採可漁無忘斯邱之樂 守平泉之遺戒不替子弟之賢 庇河汾之弊廬益彰先人之美
庚申臘月下浣 河琪鉉 撰

원계정상량문
엎드려 산골 물가에 은거하여 즐기는 덕망 높은 군자의 발자취가 지워지지 아니하여 여기에다 정자를 지으니 효자의 추모가 더욱 새롭도다. 땅은 거칠게 됨을 참지 못하고 일의 기다림을 보였도다. 공손히 생각하노니 나의 족조 휘(諱) 일(鑑)께서는 다행히 숙종과 영조의 밝은 때의 본래 숨은 윤강(倫調)의 높은 이름을 저버리고 임천(林泉)을 골라 두루 발자취를 남기고 귀양 사는 재상과 서로 짝하여 수레와 삿갓을 같이 한다는 맹세를 하고 이에 대坮의 가파른 바위를 다듬어 점하니 진실로 원계의 복지로다. 신의 채찍과 귀신의 도끼로 창애의 나무뿌리를 쪼으니 구름 그림자와 하늘빛이 푸른 못의굴 속에 머물러 성한 당시의 아름답게 은퇴하는 곳이었도다. 슬프다 오늘 헛되이 지난 느낌에 시냇물에 갓끈을 씻고 주렴계(周濂溪)의 개인 달빛 기리 비치니 동강(桐江)에 낚시를 드리운 엄자능(嚴子陵)의 청풍을 잡지 못하여 수백년 이래의 황폐한 터를 아직도 한두칸 집을 짓지 못했더니 승선공(承宣公)의 어진 아들이 선조의 뜻을 돌에 새겨 이름을 표하였고 주사군(主事君)은 그 명성을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덤불을 매어 역사(役事)를 말으니 어찌 띠집이 낙성 못함을 헤아렸으랴 문득 왕루(王樓)의 먼저 이름을 아뢰도다. 만사가 긴 숲속 흐르는 물에 돗대를 잃은 것과 같고 두 가지의 슬픔은 양장(良匠)으로 잘 대를 이어 단륜(斷輪)하니 모두 가로되 제도를 특별히 베풀었도다. 생각컨대 조물은 희롱이 많거늘 큰 나무는 마루(宗)가 되고 가는 나무는 통(桶)을 만드니 조문하는 사람은 여(閱)에 있고 축하하는 자는 문에 있도다. 뽕나무와 가래나무 무성한 옛 마을에 오직 공경하니 서로 슬퍼하며 서리 내린 선조의 무덤 더욱 가까워 반드시 두려워서 마음이 편치 아니하도다. 물가를 거스르면 모두 밝은 모래와 여울이면 눈을 돌리면 모두가 겹겹의 뫼뿌리요. 첩첩한 두둑이라. 시험삼아 가까운 곳의 모든 승경을 논한다면 그 누가 정자의 참 모습 같으리요. 늦은 봄에 살구꽃 피는 대(坮)가 혹 좁고 낮은 데는 옷을 걷으니 세한 솔숲의 정자나무를 또한 들러볼 수 없도다. 백씨는 초당의 자랑을 베풀고 한비자(韓菲子)는 연희의 시문을 믿으니 땅과 나는 애오라지 짧은 노래를 올려서 하늘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을 끼치게 하도다.
어영차 들보를 동(東)에 올리니 한가닥 뇌계(㵢溪)에는 옥무지개 둘렀으니 스스로 목욕하던 기수(沂水)의 생각이 남아 있으니 사시절 어느 날이 봄바람 아니리오.
어영차 들보를 서(西)에 올리니 물가의 밭두둑이 한결같이 고르니 가장 이 시인의 다하기 어려운 곳 가을 그늘 맑았으니 저녁별이 나즉하네.
어영차 들보를 남(南)에 올리니 빗질하듯 송삼풍(松杉風)에 푸른 아지랑이 피어나니 해마다 한식날 한없는 아픔, 집의 향기로움 또한 무덤집 이라네。
어영차 들보를 북(北)에 올리니 얌전한 매봉이 북극을 버티어서 봉은 날고 용은 서려서 기가 빼어났으니 다섯집 대대로 재덕이 날지니라.
어영차 들보를 위(上)에 올리니 하늘이 인(仁)을 덮어 밝게 한지 오래이더니 생산하고 내리는 일 상서롭기에 진실로 어렵지 않으니 참아 오(吾君)을 보내어 두터운 토양을 닫게 하리라.
어영차 들보를 아래(下)에 올리니 차가운 샘물소리 돌밑에서 솟으니 나는 비파를 당겨 이 소리를 쓰고 싶네 다만 제 그 누가 이 소리를 아는지.
엎드려 원하건대 상량한 뒤에는 구름 연기 고쳐보고 꽃과 나무 더욱 꾸며 이에 거처하면서 길이 반석의 편안함을 빌미하여 나물 캐고 고기 잡아 잊을 수 없는 언덕의 낙이구나. 평천에 끼친 경계가 자제들의 어짐과 바뀌지 않는다면 흐르는 강가 한 집을 도와서 더욱 선인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할지니라。
경신(庚申)년 12월 하순에 하기현(河琪) 찬하다.

 

원계정중건기遠溪亭重建記

遠溪亭原韻 원계정원운
兩世菟裘地 이대二代에 전傳해 오며 살던 이 땅에
相傳有此臺 서로 전해 내려오던 이 대臺가 있도다.
邨容輪野近 마을 손님 들에서 가까이 오고
溪腹椋隄回 냇물은 제방을 노략질하며 돌았도다.
淚染墳前樹 눈물은 흘러서 무덤 앞 나무에 물들었고
名留石上苔 이름은 돌 위의 이끼에 머물렀도다. 
先君無限意 아버님께서의 한限없는 뜻은
惟淂一亭來 오직 생각하노니 한 정자 이루기를.
고자(孤子) 종철(宗澈) 삼가 초함(謹稿)

 

我祖盤桓地 우리의 조선(祖先)께서 노니신 곳에
松高石作臺 소나무 높았기에 돌 위 대를 지었네.
四圍群嶂合 사방四方의 주위에는 여러 뫼가 합치고
百折遠溪回 백번 꺾인 먼 시내 돌고 돌았네.
雨려瀧岡樹 비는 롱강瀧岡의 나무에 뿌리고
봄은 잿머리의 이끼에 깊었도다.
아버님의 마치지 못하신 뜻을
이어서 수산修算하고 장래를 열었도다.
차자(次子) 종기(宗棋)

【주(註)】
롱강(瀧岡) : 구양수歐陽修 아버지의 묘소墓所로 江西省 永豊縣 南쪽에 있는 땅.

 

次韻 차운
兩世承先地 이대二代에 걸쳐서 선조先祖 뜻을 이었기에 
層巖起一臺 층층바위 위에다 한 대를 이루었네.
泉石千年靜 산수山水의 경치는 천년千年이나 고요했고 
林巒九曲回 숲과 뫼는 아홉구비 돌고 돌았네.
翠色交庭草 푸른 빛은 뜰풀과 마주치면서
斑紋暎璧苔 아롱된 문채는 벽에 이끼 비쳤도다. 
試看亭下水 시험삼아 정자 밑의 물을 보면은 
活活有源來 콸콸 쏟아져 흐르는 근원 있나니, 
죽파(竹坡) 권덕용(權德容)

 

三世相傳地 三代가 이어져서 서로 전해온 곳에
空岩舊作臺 비었던 바위엔 옛부터 지은 대라.
靑山繞後立 푸른 산은 뒤쪽에 둘러졌으며
流水直前回 흐르는 물 바로 앞에 돌로 돌도다.
繼述新成棟 이어서 새로운 동우棟宇를 이루고
永遺煥洗苔 길이 씻긴 이끼를 빛나게 물렸도다
名區有顯晦 명승지에 나타나고 감춰짐 있기에
神秘至今來 신비스레 이제까지 이어 왔도다.
김녕(金寧) 김세권(金世權) 삼가 초고하다(謹稿)

 

원계정遠溪亭 내부 현판

次遠溪亭原韻 차원계정원운
修德有餘址 덕을 닦고 남음이 있는 이 땅에
完如此石臺 완연하게 이 돌의 대와 같도다.
烟嵐朝復暮 연기와 아지랑이 아침이며 저녁이고
山水遊而回 산과 물은 흘러서 돌고 돌았네.
迎客謀家酒 손님 맞이하는 데는 집에 술이 꿰하고
呼兒掃遙苔 아이들 부르면서 길가 이끼 쓸도다.
天工勤會事 하늘이 공교로이 모시는 일 익히니
無限福源來 한限없이 복된 근원 절로 온다네.
상산(商山) 김영채(金永采)

孝子肯堂址 효자가 이어받은 옛날터에는
因天石非臺 천연석天然石을 인연했으니 대가 아니더라
墓楸追遠感 무덤가에 노나무는 선조先祖를 생각케 하고 
溪水有源回 냇물은 근원에 있어 둘러 있도다.
努力工文藻 노력하는 공부工夫는 문사文詞를 힘쓰고
迎賓掃砌苔 손님 맞아 섬뜰에 이끼를 쓸도다.
韡韡五棣樹 상냥한 다섯의 형제兄弟들이여
餘慶筮將來 남은 경사 점占을 치니 장차 오리라.
상산(商山) 김기요(金基堯)

盤礡臨川石 넓고 넓어 냇가의 돌에 다달아
新成百尺坮 새로이 백척百尺이나 대坮를 이루었도다. 
入境人多感 경내에 들게 되니 느낌이 많아지고 
有源水活回 근원이 있기에 물은 쏘는 듯 돌도다.
窈窕千林壑 깊고 깊은 천림千林의 뫼뿌리요
鮮明兩岸苔 곱고 밝은 양쪽 기슭에 이끼였도다.
卜築承先志 조선祖先의 뜻을 이어 집을 지으니
移履世傳來 짚신을 옮기면서 세세世世로 전傳해 오도다.
해주(海州) 정윤교(鄭雲敎)

人作隨天作 사람의 짓는 것은 천작天作 따라 지어서
凡然石上坮 범연히 돌 위의 대坮에 오르네.
溪月從先得 냇물에 비친 달을 먼저 보았고
泡火往復回 포화泡火는 오가면서돌고 돌았네.
精光留墓栢 정기로운 빛은 무덤의 잣나무에 머물고
陳跡沒巖苔 베푼 자취는 바위의 이끼에 잠겼다.
閣終惟在始 정각亭閣을 마침은 오직 시작始作에 있으니
何慮遠仍來 어찌 먼 곳의 후손後孫들 올 것을 생각하리.
완산(完山)이철규(李喆規)

 

次遠溪亭原韻 차원계정원운
平巖亭築地 평평한 바위의 정자 지은 곳에는
名攄理尋坮 이름이 펼쳐진 한길 되는 대로다.
峰削芙蓉立 봉우리는 부용을 깎아 세운 듯하고
波奇渟滀回 물은 기이하게 괴어 돌도다.
沙鴋眠夜月 모래 물의 해오리는 밤 달에 잠들고
雲鶴啄松苔 구름 속의 학들은 소나무 이끼 쫓도다.
百世丘壟下 백세의 선영 아래
承先繼後來 선대先代를 이어와서 후대를 이으니라.
족종(族從) 택천(澤天) 초고하다(稿)

次韻 차운
間架浮空與遠溪 시렁 사이에 뜬 공간은 원계정과 함께하니
溪心盤石石尋坮 시내 바닥 반석에는 여러 길의 대로다. 
太公磯月千年照 강태공의 물가 달은 천년을 비추었고 
學士林風十里回 학사루 숲 바람은 십리를 돌았도다.
事業繼承弓有柳 사업을 계승하니 활을 매는 버들있고
輪蹄絡繹徑無苔 수레바퀴 왕래 빈번하니 길에 이끼 없도다.
軒頭渭水今猶古 허남머리 위천 물은 지금도 예와 같으니 
芊待文王再獵來 문왕을 기다리며 다시 천엽 오도다.
족인(族人) 종호(宗鎬) 삼가 짓다(謹步)

 

秦城西畔有佳境 진성의 서쪽 물가의 아름다운 경치 있으니 
老石如盤上築臺 오래된 돌 반같이 그 위에 대를 지었네. 
檻外波聲明月在 허남밖에 물소리 밝은 달이 비췄고
簾前山色白雲回 주렴 앞의 산색은 흰 구름이 돌아가네.
構堂繼業看誠力 정자 지어 세업을 이었음은 성력을 보임이고 
遠客登程掃碧苔 먼 손님 오시는 길에 푸른 이끼 쓸었도다. 
東望長林遙滴翠 동으로 긴 숲을 바라건대 멀리 푸르렀거늘 
儒仙何事不重來 유선은 무슨 일로 다시 오지 아니하뇨.
초은(樵隱) 박동식(朴東植) 초고(稿)

 

次韻
周遭遠溪洞 두루두루 원계의 마을에서 만나니
盤礡理尋坮 넓고 넓어서 한 길의 대를 다루었네.
先址情盆切 조선祖先의 터에는 정이 더욱 간절하니 
舊跡首重回 옛 자취에 제일 먼저 거듭 돌았네. 
水理還旌洑 물의 이치 드리켜 돌면서 나타나고 
松陰自掃苔 솔 그늘은 스스로 이끼를 쓸었도다. 
亭成人不在 정자는 이뤘으나 사람은 부재不在하니 
倚柱望魂來 기둥에 의지하여 넋이 몸을 바라노라. 
재종조(再從祖) 오순(五淳)

 

次遠溪亭韻 
滔滔渭水滸 넓게도 흘러가는 위천渭川 물가에
兩世一高臺 양대兩代의 높은 대가 우뚝하도다.
山寂雲猶住 산山은 고요하니 구름도 오히려 머물고
軒空溪自回 허남은 비었으나 냇물이 절로 돌았도다.
鬱懷多宿草 답답한 회포는 옛날 끝에 잠겨있고
往跡印蒼苔 흘러간 발자취는 푸른 이끼에 찍혀 있네.
繼述誠如此 이어서 닦은 정성 이와 같으니
令人感賀來 사람으로 하여금 하례하며 오게되리.
이남식(李南植) 삼가 짓다(謹稿)

 

원계동遠溪洞 각자
2021.5.9.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출처 및 참고
함양누정지-함양문화원/대보사(2001.10)
춘계문집-하인효, 하일선/한림인쇄사(2012.3)

 

2021.5.9.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2021.5.9.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