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책과 기록 239

면산유고 眠山遺稿 민노식 閔魯植

이 책의 크기는 가로 20.6cm, 세로 30.3cm이고, 1946年 목활자본木活字本으로 간행刊行된 민노식閔魯植의 면산유고眠山遺稿 1冊으로 권두卷頭에 이교우李敎宇의 서문序文이 있고, 권말卷末에 심상복沈相福의 발문跋文이 있다. 권卷1에는 여러수의 시詩가 수록되어 있고, 卷2에는 서書, 기記, 축문祝文, 상량문上梁文, 제문祭文, 발跋, 행장行狀, 묘표墓表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卷3에는 부록으로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이 수록되어 있다.

아희원람 - 창시(의복)

創始 衣服 黃帝臣胡曺爲之 古世絢髮潤首蔽皮衣薪 의복衣服 황제의 신하 호조胡曺가 만들었다. 옛날에는 머리카락을 묶어 머리를 장식했고, 잡초로 옷을 만들어 몸을 가렸다. 屋廬 古世穴居野處 有巢敎架橧 古皇氏始敎廬扉 옥려屋廬 옛날에는 동굴과 들판에서 살았다. 유소有巢씨가 나무 위에 집 만드는 것을 가르쳤고 고황씨古皇氏가 비로소 문이 달린 오두막 짓는 법을 가르쳤다. 宮室 黃帝作 瓦室桀始爲之 夏桀以前宮室皆茅 궁실宮室 황제가 만들었다. 기와집은 걸桀 임금이 처음 만들었다. 하나라 걸桀 임금 이전의 궁실은 모두 띠로 이은 집이었다. 耕耘 神農氏斵木爲耜 楺木爲耒 始敎種谷 경운耕耘 신농씨神農氏가 나무를 깎아 보습(쟁기날)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서 쟁기를 만들었으며, 씨를 뿌리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蠶桑 黃帝正妃西陵氏..

남화경 南華經-장자 莊子/소요유 逍遙遊 2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鄕, 德合一君, 而徵一國者, 其自視也, 亦若此矣. 而宋榮子猶然笑之. 且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境, 斯已矣. 彼其於世, 未數數然也. 雖然, 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 泠然善也, 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辨, 以游無窮者, 彼且惡乎待哉! 故曰 그러므로 대체로 지혜가 겨우 한 관직이나 담당할 만하고 행동이 그 고을 사람에게만 칭찬받을 정도이며, 덕은 그 나라 한 임금의 비위에나 맞는 정도라서, 한나라의 신하로 임명된 자가 스스로 뽐내는 것은 이 종달새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송영자宋榮子¹⁾는 오히려 이들을 비웃는다. 그는 온 세상이 그를 칭찬해도 으스대는 법이 없고, 온 세상이 그를 ..

남화경 南華經-장자 莊子/소요유 逍遙遊 1

適莽蒼者三飡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之二蟲又何知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奚以知其然也 가까운 들판으로 가는 자는 세 끼만 먹고 돌아와도 배가 여전하지만, 백리를 가는 사람은 전날 밤부터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리를 가는 자는 3개월 동안의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니, 이 두 동물이(매미와 메까치) 또 어찌 알겠는가! 작은 지식은 큰 지식에 미치지 못하고, 작은 햇수는 큰 햇수에 미치지 못하니, 어찌 그러한 것을 알겠는가?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此大年也 而彭祖乃今以久特聞 眾人匹之 不亦悲乎 아침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와 땅강아지는 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작은 햇수이다. 초나..

아송雅誦-백록동부白鹿洞賦

賦 白鹿洞賦 白鹿洞賦者 洞主晦翁之所作也 翁旣復作書院 洞中又賦其事 以示學者 其詞曰 承皇后之嘉惠 宅廬阜之南畺 閔原田之告病 惕農扈之非良 粵冬孟之旣望夙余駕乎山之塘 徑北原以東騖 陟李氏之崇岡[地名李家山] 揆厥號之所繇得頹址於榛荒 曰昔山人之隱處 至今永久而流芳[陳舜兪廬山記云 唐李渤字濬之與兄涉偕隱白鹿洞 後爲江州刺史 乃卽洞創臺榭 環以流水 雜植花木 爲一時之勝景也] 自昇元之有土 始變塾而爲庠 儼衣冠與絃誦 紛濟濟而洋洋[廬山記 又云南唐昇元中 因洞建學館 置田以給諸生 學者大集 乃以國子監九經李善道 爲洞主掌其敎授 江南野史亦云 當時謂之白鹿國庠] 在叔季而且然矧休明之景運 皇穆穆以當天 一軌文而來混 念敦篤於化原 乃搜剔乎 遺遯肦黃卷以置郵 廣靑衿之疑問 樂菁莪之長育 拔雋髦而登進[謹按國朝會要 太平興國二年 知江州周述 乞以九經 賜白鹿洞 詔從其請 仍驛送之 六年..

아송 雅誦

1799년(정조 23)에 정조正祖가 주희의 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에서 시와 운문韻文 415수를 선별하여 편찬·간행한 시선집이다. 정조가 직접 『주자대전』에서 시를 선별하고 서문(序文)을 썼으며, 신하들에게 교정을 하고 주석(註釋)을 붙여 금속활자[壬辰字]로 간행하도록 했다. 1799년 9월 15일 주희의 탄일誕日에 맞추어 제1권의 간행을 시작하여 같은 달 25일에 총 8권을 완간하였다. 정조는 인간(印刊)된 『아송』을 각 관서官署와 주요 서원書院 및 편찬에 참여한 관료 등에게 반사하고, 또 번각본飜刻本을 제작하여 전국의 향교鄕校 등에 널리 배포하였다. 내가 소장한 책은 필사본으로 가로 155cm, 세로 235cm의 크기이고 권두에는 정조가 쓴 「어제아송서御製雅誦序」, 책의 취지와 체재를 밝힌 「아송의..

남화경 南華經-장자 莊子

≪남화진경 南華眞經≫ 또는 ≪장자남화경 莊子南華經≫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름은 ≪장자≫였으나 당나라 현종(玄宗)이 천보(天寶) 원년(742)에 존경하고 숭상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때 장주에게도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존호(尊號)가 붙여졌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경사편(經史篇) 도장류(道藏類)에 따르면 ‘남화’라는 명칭은 장자가 살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여러 가지 판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곽상주(郭象注) 33권이 정통본으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당나라 필사본과 북송 여혜경(呂惠卿)의 여관문진장자의본(呂觀文進莊子義本), 일본 경도(京都)의 다카야마사(高山寺)에서 발견된 필사본이 있으나 모두 완전하지 못하다. 내용은 내편..

왕발 王勃 시-장편 권지일 長篇 卷之一

臨高臺 王勃 瑶軒綺搆何崔嵬 鸞歌鳳吹清且哀 斜對甘泉路 蒼蒼茂陵樹 紫閣丹樓紛照耀 璧房錦殿相玲瓏 赤城映朝日 綠樹搖春風 臨高臺臺臺 迢遞絕浮埃 俯瞰長安道 萋萋御溝草 高臺四望同 佳氣鬱蔥蔥 東迷長樂觀 西指未央宮 旗亭百隧開新市 甲第千甍分戚里 朱輪翠蓋不勝春 疊榭層楹相對起 復有青樓大道中 繡戶文窗雕綺櫳 錦衾夜不襞 羅帷晝未空 歌屏朝揜翠 妝鏡晚窺紅 為君安寶髻 蛾眉罷花叢 塵間狹路黯將暮 雲間月色明如素 鴛鴦池上兩兩飛 鳳凰樓下雙雙度 物色正如此 佳期那不顧 銀鞍繡轂盛繁華 可憐今夜宿娼家 娼家少婦不須顰 東園桃李片時春 君看舊日高臺處 柏粱銅雀生黃塵 釆蓮曲 王勃 채련곡 왕발 釆蓮歸 綠水芙蓉衣 연밥따고 돌아 가는 길, 푸른 물은 연꽃으로 옷을 입었네 秋風起浪鳧雁飛 가을 바람에 물결이 일고 오리와 기러기도 날아 오르네 桂棹蘭橈下長浦 계수나무 노와 난..

어정규장전운 御定奎章全韻

어정규장전운 御定奎章全韻 1828년 혹은 1888년 발행 이 책은 木板本으로 1828년 혹은 1888년인 무자년戊子年에 발행되었다. 원래 우리나라에 전하는 운서韻書는 대부분 평·상거平·上去의 삼성三聲을 일면에 삼단三段으로 싣고 입성入聲은 별도로 뒤에 실었었는데 이 책은 平·上·去·入의 四聲 을 四段으로 싣고 한자漢字 밑에 자의字意를 한자漢字로 간단하게 실었으며, 자음字音은 한글로 표기하 고 또 다른 운자韻字와 통通하는 자字는 그 운모韻母를 표기하였다. 당시의 중국 한자음과 우리나라 한자음漢字音(규범적인 성격을 감안하여)의 연구자료가 된다. 我東韻書之彙以三韻, 別置入聲, 有非韻本四聲之義. 今以平上去入 比類諧音增爲四格 此奎章全韻之承 命詮次者也 編字 次第倣古韻書字母 爲次之法 以諺書反切 接序批定 而一字之諸韻 互..

아희원람 兒戱原覽

아희원람兒戱原覽은 조선시대 후기인 1800년대 초에 간행된 장혼張混(1759~1828)의 동몽童蒙 교육서 이자 천문과 지리·역사·인물 등을 용어 별로 설명해주는 일종의 생활백과사전이며, 단어 사전이다. 장혼張混은 장륜張淪이라고도 하며, 본관은 결성結成이고, 자는 원일元一이며, 호는 이이엄而已广·공공자空空子이다. 서울 출신 장우벽의 아들로 1790년 대제학 오재순吳載純의 추천으로 교서관校書館 사준司準이 되어 서적편찬에 종사하였다. 장혼은 지체장애인이기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인물이기도 하다. 아희원람兒戱原覽은 제1 형기形氣 24항목, 제2 창시創始 135항목, 제3 邦都 22항목, 제4 국속國俗 13항목, 제5 탄육誕育 26항목, 제6 자성姿性 64항목, 제7 재민才敏 24항목, 제8 수부壽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