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책과 기록 239

菊史遺稿 국사유고

국사유고는 창원구씨 구종길仇宗吉(1363-1436)의 글을 모아 후손 구영주具永珠가 1996년에 유고遺稿로 만든 책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4cm이며, 화재華齎 이우섭李雨燮이 서문序文을 썼고 책의 말미에는 제정도諸廷燾(1931~2012)의 발문跋文이 있다. 이 책은 한문을 번역하여 국한문 혼용의 해석을 함께 달아두었다. 창원구씨는 정조(正祖)가 무과에 급제한 구시창(仇始昌)이라는 인물의 성을 구(具)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1798년(정조 22)에 병조판서 이시수(李時秀)의 건의로 창원 구(仇)씨의 한자 표기가 모두 구(具)로 바뀌었다. 국사유고菊史遺稿는 1996년 그 후손 구영주가 발행 했고 인쇄는 문진인쇄소이며, 2023년 1월에 마산헌책서점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국사유고 ..

樂隱遺稿 낙은유고

樂隱遺稿 낙은유고 낙은유고는 안교달安敎達[1870~1953]이 생전에 기록한 글을 아들 안용호安龍鎬가 모아 유고遺稿로 만든 것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197cm, 세로 287cm이며, 기성箕城 황헌黃士+憲의 서문序文이 있고, 낙은樂隱의 사진이 있다. 목차에는 권지일卷之一에 178수의 시詩가 있다. 서書는 10수가 있으며 제문祭文은 6수가 실렸고, 서序 1편과 기문記文 1편 유사遺事 3편이 있다. 묘갈명墓碣銘 1수와 묘표墓表 1수, 잡저 2수가 있다. 이어서 권지이卷之二에는 12명의 증유贈遺 시詩가 있고, 김응환金應煥이 지은 행장行狀과 권일섭權一燮이 쓴 묘갈명墓碣銘, 김황金榥이 쓴 묘지명墓誌銘이 있으며, 안용호安龍鎬가 쓴 유사遺事가 있다. 책의 마지막에 안용호安龍鎬가 쓴 지識가 있다. 낙은유고는 단기 43..

칠원향교로 인력을 요청하는 통문 通文

이 통문은 퇴촌 순흥안씨 집에 보관되어 오던 문서로 1902년 창원향교의 이름으로 두곡영당의 중수를 위해 칠원향교에 인력을 보내 달라는 협조문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通文 右文爲奉告事 伏以文昌公海雲崔先生 道德文章 陞配聖廡 則不待鄙等之言而一千年 海東章甫 孰不崇奉而矜式哉 鄙郡卽先生嶽降¹⁾ 之鄕 而臺有孤雲月影臺之西北隅 建院而俎豆以享之 中年撤院之後 別立一祠于斗谷 姓孫洞奉眞影以妥矣 遺像年舊爍落寓慕無憑 齎嗟莫及 至於昨秋 影幀一本 敬模於河東之校宮 奉安舊祠 祠亦毁頹 經始重建而貿瓦 於昌寧等地水運 抵貴郡則慕賢尊奉之地 不可異同於本他邑也 以此稟告于貴郡 官司出丁 運致於鄙邑界 則鄙邑役丁當待于本郡界矣 以此諒之 勿失期會 千萬 幸幸甚甚 右文通于漆原鄕校 壬寅九月十八日 昌原鄕校 齋任 : 安斗馨 李炳鍊 金鍾淳 會員 : 金宗琪 安琦錫 金..

아희원람 - 창시 創始2 (면류관)

冕 黃帝作 冠上有覆前後有旒 夏冕曰收 殷冕曰冔 면류관[冕]: 면류관은 황제가 만들었다. 왕관 위에 덮개가 있고앞뒤에는 주옥을 꿴 술이 달려 있다. 하나라 때의 면류관을 수(收)라하고, 은나라 때의 면류관을 후(冔)라 한다. 袞衣黄帝作 繪龍山華蟲火宗彛五章 天子之龍 一升一降 上公但降龍 龍首卷然故名 곤룡포[袞衣]: 곤룡포는 황제가 만들었다. 용과 산과 꿩과 불, 종이 등 다섯 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천자는 용이 한 마리는 오르고 한 마리는 내려오고, 상공은 내려오는 용만 있다. 용의 머리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 곤의라고 이름 지었다. 緇布冠 太古冠也 其制僅可撮髺 치포관(緇布冠): 치포관은 태고 때부터 사용되던 관인데, 치포관으로 인해 비로소 상투를 틀 수 있게 되었다. 笠子 制自古之臺笠 갓[笠子]: 삿갓 양식..

남호 강처사 묘갈명 정사년 1917 南湖姜處士墓碣銘 丁巳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 선생은 학문을 독실하게 하고 정밀하게 사색해서 노사(蘆沙) 기씨(奇氏)의 진전을 얻었는데, 그의 훌륭한 제자가 있었으니, 남호(南湖) 처사 강공(姜公) 휘 영지(永祉) 자 낙중(洛中)이다. 강씨(姜氏)는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의 알려진 성씨이다. 이조에 와서 휘 석덕(碩德)이 있으니,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이고, 시호는 대민(戴敏)이다. 이 분이 휘 희맹(希孟)을 낳았으니, 좌찬성(左贊成)이고,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이 분이 귀손(龜孫)을 낳았으니, 우의정(右議政)이고,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그 뒤로 명덕(名德)이 계속 이어졌다. 고조 휘 주동(柱東)은 증(贈) 호조 참판(戶曹參判)이며, 증조 휘 태환(泰煥)은 수작(壽爵)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양 강공 묘갈명 晉陽姜公墓碣銘-암서집 제29권

내 선친이 돌아가시고 장사를 지낼 때 고을 이웃의 지구들 중 만사(挽詞)와 뇌문(誄文)을 보내 곡(哭)을 한 사람이 거의 200명이나 되었다. 불초(不肖)는 얼마 뒤 슬픔이 진정되고 차례로 기록해 보니, 같은 마을의 어른 통정(通政) 강공(姜公)이 지은 것이 압권이었다. 공의 집안은 대대로 본디 문학(文學)을 전하였고, 또 젊어서는 재주를 가지고 공령문(功令文)을 익혀서 일찍이 한 차례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장처는 기국과 능력에 있어서, 무릇 고을에 큰일이 있게 되면 공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고, 고을 수령도 여러 차례 불러서 자기를 돕도록 하였다. 성품도 또한 질박하고 솔직하고 간소하고 강직하여 절대로 남을 따르거나 아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때때로 ..

청명 이수 淸明 二首

朝來新火起新烟 湖色春光淨客船 아ᄎᆞᄆᆡ 새 브레 새 ᄂᆡ 니러나ᄂᆞ니 ᄀᆞᄅᆞᇝ 빗과 보ᇝ빗괘 나그내 ᄇᆡ예 조햇도다 아침 되자 새 불붙여 연기 피워 올리니, 배들이 봄빛 짙은 강 가르며 오가는데. 繡羽衝花他自得 紅顔騎竹我無緣 어르누근 지치 고ᄌᆞᆯ 다딜어 뎌거시 自得ᄒᆞ니 블근 ᄂᆞᄎᆡ 대ᄆᆞᆯ 토ᄆᆞᆫ 내 말ᄆᆡ 업도다 새들은 꽃을 물고 하늘을 맘껏 날고 있고, 죽마 탄 아이들 속에 나 홀로 연고 없네 胡童結束還難有 楚女腰支亦可憐 되 아ᄒᆡᄃᆞᆯᄒᆡ ᄆᆡ무ᅀᅥ슈믄 도로혀 뎌러니 이슈미 어려우니 楚ㅅ 겨지븨 허리와 四支ᄂᆞᆫ ᄯᅩ 可히 ᄃᆞᇫ오도다 옷 잘 챙겨 입은 아이 눈에 잘 띄지 않고, 가는 허리 여인들이 안쓰러워 보이는데 不見定王城舊處 長懷賈傅井依然 定王ᄋᆡ 城 샛던 녯 ᄯᅡᄒᆞᆯ 보디 몯ᄒᆞ..

전 한식일일야 前寒食一日也

佳辰强飮食猶寒 隱几蕭條帶鶡冠 됴ᄒᆞᆫ ᄢᅴ 고ᄃᆞᆯ파 마시며 머구니 오히려 ᄎᆞ니 几ᄅᆞᆯ 비겨 蕭條히 鶡冠ᄋᆞᆯ 셋노라 좋은 절기라 애써 술을 마시나 음식이 오히려 차니, 안석에 기대어 쓸쓸히 갈관을 쓰고 있노라. 春水船如天上坐 老年花似霧中看 보ᇝ 므렛 ᄇᆡᄂᆞᆫ 하ᄂᆞᆯ 우희 안잣ᄂᆞᆫ ᄃᆞᆺᄒᆞ니 늘근 나햇 고ᄌᆞᆫ ᄀᆞᄅᆞᆺ 소개 보ᄂᆞᆫ ᄃᆞᆺᄒᆞ도다 봄물에 떠 있는 배는 하늘에 앉은 듯하니, 노년에 보이는 꽃들은 안갯속으로 보는 듯하도다. 娟娟戲蝶過閑幔 片片輕鷗下急湍 고온 노ᄂᆞᆫ 나ᄇᆡᄂᆞᆫ 겨ᄅᆞᄅᆞ왼 帳ᄋᆞ로 디나가고 片片히 가ᄇᆡ야온 ᄀᆞᆯ며기ᄂᆞᆫ ᄲᆞᄅᆞᆫ 여흐레 ^ ᄂᆞ리ᄂᆞ다 곱디고은 노니는 나비는 한가로이 휘장을 지나가고, 조각조각 가벼운 백구는 급한 여울에 내려오네. 雲白山..

밭가는 아낙의 노래 - 대숙륜

女耕田行-戴叔倫 밭가는 아낙의 노래 - 대숙륜 乳燕入巢箏成竹 갓 깨어난 제비 새끼 둥지에 들고 죽순이 대나무가 되는 이즈음 誰家二女種新穀 어느 집의 두 딸이 새로이 곡식을 심네 無人無牛不及犁 사람도 없고 소도 없어 쟁기는 엄두도 못 내고 持刀斫地翻作泥 칼을 가지고 땅을 갈며 진흙땅을 갈아엎네 自言家貧母年老 스스로 말하길 집이 가난하고 어머니는 연로하시며 長兄從軍未聚嫂 큰오빠는 결혼도 못하고 군에 끌려갔답니다. 去年突疫牛囤空 작년에 짐승 역병이 돌아 외양간이 텅 비니 截絹買刀都市中 옷감을 팔아 도시에 나가 칼을 샀답니다. 頭巾掩面畏人識 남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以刀代牛誰與同 칼을 잡고 소 할 일을 대신한다지만 누가 함께 하겠습니까. 姊妹相携心正苦 자매들이 손을 맞잡고 마음 고생 하는..

신안선생유집 新安先生遺集 序二

이 책의 크기는 가로 210cm, 세로 33.7cm이고, 뒤표지 안쪽에 ‘세을축중추면천개판歲乙丑仲秋沔川開板’이라 기록한 것으로 볼 때 1925년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서 출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에는 “시詩 진유부眞儒賦 신안선생유집서이新安先生遺集序二”라 적혀있고 안쪽에 목차를 기록했다. 이 책에는 시詩와 진유부眞儒賦만 실려 있어 저자가 누구인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新安先生遺集』의 주인공은 강현姜顯(1513~1553)으로 진주강씨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 1세인 강원로姜元老의 후손이다. 8세조인 증가선대부이조참판을 지낸 강국흥姜國興이 증조부이며, 할아버지는 강행姜行이고, 아버지는 소요당逍遙堂 강문회姜文會이다. 족보에 의하면 강현姜顯의 자字는 현지顯之이고 호號는 신안新安이다. 「成化乙巳十二月十八日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