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산 17

전단산 우곡사 이야기

전단산우곡사(栴檀山牛谷寺) 공덕비(功德碑)의 이야기를 티스토리블로그에 기록한 것이 다음블로그에서 tistoryblog로 옮겨지면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2022년 10월 15일 15시경 카카오톡 서브의 화재로 인해 한때 사용할 수 없으면서 사라진 것인지는 몰라도 ‘역사와 야생화’란 블로그 기록에서 사라져 버렸다. 또한 다른 기록도 없다. 이제 믿을 만한 것이 점점 없어진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전단산우곡사栴檀山牛谷寺의 공덕비는 전단산栴檀山의 한자 이름에 대한 기록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다시 찾아가 사진을 남기고 그 내용들을 남겨둔다. 전단산은 정병산精兵山의 옛 지명이고 지금까지 옛 기록들 외에 근래에 세운 금석문金石文으로 남아 있는 한자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옛 기록 중 많은 기록이 한자로는 ..

은꿩의다리

정병산 우곡사 지역으로 부생식물을 보러 갔다가 요즘 우리 지역에서 흔하게 보이는 은꿩의다리를 촬영했다. 촞점 맞추기가 쉽지 않아 그만 두려다가 지금까지 기록한 적이 없었음을 알고 촬영을 했다. 생각처럼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증거자료는 사용이 가능해 기록한다. 속씨식물문(Magnoliophyta), 목련강(Magnoliopsida), 미나리아재비목(Ranunculales),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미나리아재비속(Ranunculus), 은꿩의다리는 학명이 Thalictrum actaefolium var. brevistylum Nakai이다. 중부이남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30~60c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기하며 밑부분의 것은 엽병이 기나 위로 갈수록 점차 짧아지고 2~3회 3출엽..

뽕나무버섯붙이[뽕나무버섯부치]

우곡사 등산로에 발생한 "나도수정초"를 찾던 중 참나무의 죽은 그루터기에서 발생한 뽕나무버섯붙이를 발견했다. 여러곳에 발생했지만 노균들이 많아 식용 가능한 것은 몇 개체 없었다. 적은 양이지만 일단 싱싱한 것은 채취하여 먹어보기로 하고 몇개만 채취해 봤다. 2014년 9월에 "창원 UN도로의 뽕나무버섯붙이"라는 제목하에 남겨 둔 것이 있어 링크를 한다. 담자균문(Basidiomycota), 담자균아문(Agaricomycotina), 주름버섯강(Agaricomycetes), 주름버섯목(Agaricales), 뽕나무버섯과(Physalacriaceae), 뽕나무버섯속(Armillariella), 뽕나무버섯붙이[뽕나무버섯부치]의 학명은 Armillaria tabescens (Scop.) Emel (= Desar..

식물/야생버섯 2022.09.15

나도수정초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고 구상난풀인 줄 알고 위치를 물었더니 정병산 우곡사牛谷寺 방향의 등산길이라 설명을 해줘서 사진으로만 봐왔던 식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못 찾으면 버섯 탐사나 하리라 마음먹고 등산길을 오르며 다양하게 발생한 버섯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해발 228m, 위치 35°14'49"N 128°43'04"E에 도달했을 때 등산로 1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발생한 오늘의 목표 식물인 ‘숲속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도수정초”를 만났다. 처음에는 수정난풀(水晶蘭)인 줄 알고 검색을 하던 중 암술의 머리색이 청자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도수정초”로 수정을 했다. 피자식물문(Angiospermae), 쌍떡잎식물강(Dicotyledoneae)..

봉림동 정병산 해맞이와 창원종합사격장 입구의 떡국 나눔 풍경

2016년 병신년 새벽부터 봉림산과 정병산에는 해맞이 객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정병산(精兵山 566m)에는 매년 해돋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통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은 차량으로 갈 수 있거나 300m이하의 나지막한 야산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단산이라..

창원 봉림동의 지명탄생과 태백산의 근거

봉림동 역사의 시작 봉림동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봉림산鳳林山 자락을 따라 펼쳐져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땅이다. 532년 밀양의 이궁대에서 가야의 10대 구형왕이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하자 가락국을 사랑한 많은 무리들이 이곳 퇴로촌退老村에 들어와 정병산精兵山에서 병사를 조련하고 말을 키우며 가락국 회복을 위해 힘을 키웠던 땅이다. 그래서 퇴로촌을 진촌進村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퇴촌동退村洞이 그곳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러날 退’라는 글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즉 '나아갈 진進' 앞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인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퇴계 이황선생이 자신의 호에 사용한 이유도 같은 의미이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

창원 정병산 역사 왜곡은 이제 그만

창원시가 역사 인식이 재대로 되어있지 못해 이렇게 저렇게 뒤죽박죽 혼돈(混沌)이 되고 심지어는 옛부터 불러 오던 산 이름조차 왜곡하여 없애려 하는데도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배한성 시장 당시 정병산(精兵山) 이름을 봉림산으로 변경 하려고 중앙부처에 올렸으나 정병산이 맞다는 중앙부처의 해석으로 그 때부터 봉림산으로 둔갑해 가던 것을 창원시가 정병산으로 다시 확정하여 변경하는 일을 하였다. 정병산 역사 왜곡의 시작은 가포에 있던 마산대학이 1981년부터 정병산 아래 상촌마을과 용동마을, 퇴촌동을 아우르는 23만평 규모의 지역에 창원대학교로 개칭하여 이전하면서부터였다. 1983년 정병산 아래 인문학관과 사회학관 등이 완성되자 창원대학교로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했고 창원대학교의 교수 몇 명이 창원대학교 뒷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