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선운사 동백나무(천연기념물 제184호)

천부인권 2009. 4. 20. 13:48

 

  <선운산가 비>

 

 

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에 있는 선운산가(禪雲山歌)는 정역(征役)에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望夫)의 애절(哀切)한 사연(事緣)이 백제가요(百濟歌謠)로서 그 유지(遺址)가 남아있으면서도 가사(歌詞)가 전해지지 않아 아쉬움이 여간 아니었는데, 주봉관(朱奉官)씨의 뜨거운 애향심으로 천오백년(千五百年)의 한(恨)을 풀게 되었기에 여기에 그 사적(事績)을 적는다.

1981년 5월 10일  고창문화원(高敞文化阮)

 

이비의 뒤편에는  미당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다.

 

 나라위한 싸움에 나간 지아비

돌아올 때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매

그님 그린 지어미 이산에 올라

가슴에 서린 시름 동백꽃같이 피어

노래하여 구름에 맞닿고 있었나니

그대 누구신지 너무나 은근하여

성도 이름도 알려지진 안했지만

넋이여 먼 백제 그때 그러시던 그대로

영원히 여기 숨어 그 노래 불러

이 겨레의 맑은 사랑에 늘 보테옵소서

미당 서정주 지음

 

 

  <뚝뚝 떨어지는 선운사 동백꽃 아래 예쁜 처자들이 있길래 찍어 봤습니다.>

 

 

선운사 동백꽃에는


선운사를 방문할 때에는 싯구 한 소절 새겨보고 간다면 아름다운 경관과 시공을 뛰어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향기가 어우러져 애틋한 추억을 두고 올 것이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고창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가 세워진 후에 만들어 진 것으로 나무의 평균적인 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이다. 절 뒷쪽 비스듬한 산아래에 30m 넓이로 가느다란 띠모양을 하고 있다.


고창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아름다운 사찰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사찰림으로서의 문화적 가치 및 오래된 동백나무숲으로서의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선운사 동백꽃은 천연기념물 제184호입니다.>

 

 

선운사 골 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쉬어 남았습니다.


단군기원 사천삼백칠년

미당 서정주 지어씀

 

 

 

 

이시의 탄생 배경은 미당선생이 27세 되던 해 선운사에 놀러 왔다가 막걸리 집 주모와 거나하게 술을 한잔 나누고 하룻밤 풋사랑을 하였답니다. 아침에 주막을 나서면서 주모와 동백꽃이 피거든 다시 놀러 올 것을 약속을 하였는데, 6.25사변 등 세상이 어지러워 이 약속을 잊고 지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어쩌다 선운사에 들러 보니 그 약속이 생각이나 주막을 찾으니 주막은 사라지고 그 여인의 행방도 묘연했다고 합니다.

미당선생의 생각은 그 여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싯구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 뜻은 아직 동백꽃이 필 시기는 아니지만  작년에 핀 동백꽃이 아직까지 가지 끝에 매달려 시든 체 붙어서 떨어지지 않은 모습이 그 옛날 추억이 있는 주막집 여인이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애틋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거것도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고 표현하는 이런 미적 감각이 詩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게 장어의 힘이라고 해부러~~!>

 

 

처음에 이런 나무 조각품들을 보고 손님을 들어오게 하기위해 참 별짓도 다한다 싶었는데, 가만히 보니 이 일대가 장어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계들이 즐비하였고, 복분자를 재배하는 곳이 많아 장어의 효능과 복분자의 효능을 과장하여 선전하다 보니 이런 풍경을 만들었다고 보여 집니다.

 

  <아따~! 거시기 하당께!>

 

풍천은 지역명이 아니고 가을 찬바람이 불 때 바다에 살던 장어가 민물로 올라오는 계절을 말하는 것이고 고창의 선운사 인근에 장어집이 밀집되어 풍천장어라는 상호를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