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북면 하천리 김형대 영세불망비

천부인권 2009. 5. 21. 21:57

 


지붕의 모습이 한옥을 본딴것이 아니다.

 

창원 하천리 김형대영세불망비(昌原 下川里 金炯大永世不忘碑)

문화재 미지정

창원시 북면 하천리 산9-5 「위도 35°22′15.5″N 경도 128°37′18.5″E」


이 비석은 하천리에서 외산리로 넘어가는 도로변의 남쪽사면에 위치하며 바로 앞쪽으로 낙동강이 위치한다. 김형대(金炯大)는 김녕김씨 백촌의 후손으로 자가 덕중(德中)이고, 호는 만취(晩醉)이다. 1909년 그 를 기리기 위해 하천리 341-1번지에 삼사재(三斯齋) 건설하여 향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식을 모범적으로 잘 가르쳤으며, 친척들에게 의리를 지켜 화목하게 지냈고, 벼슬은 의관(議官)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효자로도 유명한데 어버이의 병환에 약을 맛보고 대변을 맛보면서 극진하게 간호하였다고 한다.

비석의 보호각은 가첨석과 팔각의 기둥을 갖추고 있다. 비석의 정면에는 ‘전의관정이품김형대영세불망비(前議官正二品金炯大永世不忘碑)’라고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측면의 융희 2년으로 보아 1909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창원문화원(2002),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p.51]


 


입구의 지붕돌도 한옥으로 보기엔 무언가 어색하다.



[해문]-박태성
金炯大永世不忘碑(김형대영세불망비)
賢哲心天 川德淵淵 어질고 밝은 마음 하늘이 내린 것이니 하천에 베푼 덕은 연연이 이어지도다.
宣業靑氈 帝友丹田 의관으로서의 선업은 대를 이은 유산이며 임금의 벗으로 단전을 이루었네
綜睦不偏 憐窮又延 온화한 덕은 치우치지 않았고 가난한 자 불쌍히 여겨 두루 살폈왔네
焉何報然 千口石遷 사람마다 어찌 그 덕에 보답할까 말하니 그 사람들의 말이 돌에 새겨지게 되었네


출처 및 참조

창원시문화유적분포지도(2005년)-창원대학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