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600년만의 귀향, 고려 수월관음도

천부인권 2009. 7. 31. 15:35

 세계 불교미술의 대작 고려수월관음도 불지종가 통도사에 오다
2009년 4월, 통도사성보박물관 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국 불교회화의 백미로 손꼽히는 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를 국내로 운송하여 전시하기로 확정하여(표구포함 전체높이 약 5.3미터) 고려 수월관음도 특별전을 열었다.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소장처인 일본 내에서도 쉽게 공개되지 않는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고려미술전시회(Goryeo Dynasty: Korea‘s Age of Enlightenment,918 to 1392)”에 출품되어 20일의 전시만 허용될 정도로 전시기간이 짧았으나, 소장처의 배려로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는 약 40일간 전시가 확정되었다. 1391년 가가미신사에 기증된 이래 600여 년만에 한국으로 귀향하는 고려 수월관음도 전시는 연구자와 국민들에게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불보종찰 통도사와 양산시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려 수월관음도>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고려불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명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재 세로 4미터 30센티, 가로 2미터 54센티의 거폭이지만 원형은 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놀라운 사실은 비단바탕 한 장에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비단 한 장에 그려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이와 같은 거폭의 비단이 존재하는 것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및 일본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례이다.
기록에 의하면 충선왕의 왕비였던 숙비(淑妃)가 8명의 궁정화가를 동원하여 1310년 5월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작품은 당시 왕실 최고 권력자의 발원으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화인들에 의해 공동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월관음은 고려불화에서 유행한 주제도로 40점에 달하는 작례가 현존하고 있다.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실려있는 설화에 근거하여, 진실한 구도의 뜻을 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28번째 보타락가산 방문시 관음보살과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배경의 죽림과 암굴, 청정한 계곡, 산호가 피어오르는 물가 등은 모두 성스러운 장소인 보타락가산을 나타낸다.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앉아있는 관음보살은 다른 수월관음도와는 반대로 화면의 왼쪽에 배치된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화면은 손상이 많지만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의 선재동자상에 이르는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반가하여 앉아 있는 관음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관음은 머리 부분에 보관을 쓰고, 그 중앙에 아미타여래 화불을 모셨는데, 이 특징은 관음보살의 징표이다. 상반신은 금색의 피부를 노출하고 있고 빨강과 초록, 파랑 색색의 구슬 및 금으로 된 장식을 가슴과 팔에 부착하고 있다. 옷을 보자면, 다양한 문양을 시문한 치마를 두르고, 이것을 복대와 끈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투명하게 보이는 얇은 베일을 머리에서부터 쓰고 있는데, 이것이 부드럽게 전신을 덮고 있다. 기암의 한쪽 끝에는 한 줄기 버드나무가지가 꽂혀 있는 정병이 놓여 있다. 선재동자는 실재 아동의 크기에 맞게 구성되었으며 관음을 바라보는 강건한 눈은 인상적이다.
현재 탈락되어 확인할 수 없으나 1812년 작성된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의 『측량일기(測量日記)』에 의하면 지대(至大)3년(1310)에 숙비가 발원하여 김우문(金祐文), 이계(李桂), 임순(林順) 등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1391년 승려 료우켄(良賢)이 지금의 가가미신사에 진상했다는 기진명(寄進銘)이 있어 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 상>

 <고려 수월관음도 하>

가가미신사(鏡神社) 내역
소재지 : 사가현(佐賀縣) 카츠라시(唐津市) 가가미(鏡) 1827번지
신사내역 : 가가미신사는 『고사기(古事記)』 및 『일본서기(日本書紀)』에, 5세기 한반도 신라에 원정을 감행했다고 전하는 전설의 주인공 신공황후(神功皇后)를 모시는 신사로, 원씨물어(源氏物語) 내용 중에서도 노래로 불러지고 있을 만큼, 예로부터 신앙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장소이다.
예로부터 항구도시로 유명한 일본 큐슈 서북쪽 사가현 카츠라시 가가미야마(鏡山) 아래에 위치한 신사로서 경궁(鏡宮), 송포궁(松浦宮), 경존묘(鏡尊廟) 등으로 불렸다. 현재 신사는 진구황후(神功皇后)를 모신 제 1궁과 740년 중앙정부에 대항하여 이 지역에서 난을 일으켰던 후지와라노 히로쓰구(藤原廣嗣)를 모신 제 2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730년 사전(社殿)을 마련하여 745년 창립되었다. 제 1궁은 남향을 하고 있고 제 2궁은 동향을 하고 있어 본궁 하나만을 남향으로 배치하는 일반적인 일본 신사와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후 신사는 초대 카츠라 번주인 테라자와(寺澤) 가문의 보호아래 융성하다가 1770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현재의 제 1궁은 1771년 카츠라 번주(藩主)인 미즈노 타다토(水野忠任)가 재건하여 1950년 해체 수리되었고, 제2궁은 1790년 미즈노 타다카네(水野忠鼎)가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장문화재로는 수월관음도 이외에 고려시대 사경과 히로쓰구의 보검 등이 전해지고 있다.<자료 통도사 성보박물관>

 <가가미신사 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