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고성군 ‘장산숲’과 ‘허씨고가’

천부인권 2009. 9. 3. 15:46

 일요일 아침 고성군 옥천사의 문화재를 보려고 준비를 하다가 문득 약간의 장애는 있지만 항상 열정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가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운전을 할 줄 몰라 나들이할 기회가 많지 않은 친구라 전화를 했다. 혼자 훌쩍 가면 편하기는 하지만 즐거움을 함께 나눌 동행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고성군 배둔을 지나 마암면 방향으로 접어들어 가다보면 길 좌측에 아름다운 “장산숲”이 자리를 하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86호인 이 숲은 600년 전 ‘허기(許麒)’란 분이 마을의 풍수적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조성한 “비보숲”이란 안내판이 있다. 처음에는 길이가 1,000m에 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길이 100m, 너비 60m로 약 6,000m²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숲의 가운데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바탕으로 한 작은 섬을 조성해 놓아 숲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지금은 도로가 나고 농지가 되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숲의 앞쪽은 고성만과 연결된 갯벌이었을 것이고, 인공으로 만든 “장산숲”은 해풍을 막고 바닷물이 햇볕을 받아 번쩍이는 현상이 마을에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숲을 조성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 숲을 해설해 주시던 분이 기억이 난다. 

 

 

길 맞은편에는「정절공호은허선생유허비(貞節公湖隱許先生遺墟碑)」각과 열효각 및 비석군이 자리하고 있다. 호은허선생유허비를 받치고 있는 비희의 얼굴을 해학적으로 조각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탑두에는 쌍어를 새겨 허왕후의 후예임을 암시하고 있다. 
 

 <정절공호은허선생유허비각>

 <정절공호은허선생유허비>

 <정절공호은허선생유허비의 비희와 쌍어문양>

 <열효각>

 <비석군>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184번지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된 고성 장산리 허씨고가(固城 章山理 許氏古家)가 있는 곳이다. 고성관광(http://visit.goseong.go.kr)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을전경>

 <마을 담장>

 

<이 사당은 조선 고종 2년(1865)에 세워져 허씨 4대 선조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사당과 안사당, 그리고 가옥 한채와 2층 건물로 구분된 구조로, 조선말(1800년대)에서 일제시대에 걸쳐 나타난 한식전통가옥과 화식주택이 혼합된 대표적인 가옥으로써, 건축구조형식과 건축재료 및 평면 구성이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건물배치는 안채, 안사랑채, 바깥 사랑채, 솟을대문, 가묘, 광 등으로 구성되었으나, 정면 4칸 초가집의 안채는 퇴락하여 헐리고 초석과 기단이 남아 있다. 안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한식토기와의 우진각지붕으로 안채 전면에 나란히 배치되어, 안사랑채 뒷면의 안마당은 앞면과 사랑마당으로 구분되어 독립된 대청공간을 배치한 평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1912년에 지은 집이고 손님 접대나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2층 건물은 1912년에 지어 현재 집무실로 사용 중인데 가옥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안사당은 고종 22년(1885)에 지은 것으로 솟을대문 형식이며 대문 양쪽에 방이 있다. 예전에는 손님을 접대하였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ㄱ자형 평면의 바깥사랑채와 2층 구조의 광은 화식목조 건물로 화식 평기와의 우진각지붕으로 되어있다. 솟을대문 및 가묘는 한식목조 건물로 전형적인 전통가옥의 배치형식과 조형미를 보여 주고 있다.>

 <솟을대문>

 <대문에서 본 사랑채 풍경>

 <안채>

 <안 사랑채로 가는 길>

 <광>

 <정원에서 본 사랑채>

 <일본식 정원과 사랑채>

 <정원의 기와>

 

허씨 고가는 한옥이 역사의 흐름과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로써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어 오는 것들도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러한 변화는 내가 필요에 의해 진화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내 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변하게 하는 것은 자주적 역사의 진화이다. 이러한 것은 발전하는 것이며 떳떳하게 보여줄 유산이라고 믿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노산정(鷺山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