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창녕 관음사의 문화재자료 3가지 소개

천부인권 2010. 2. 12. 07:21

 

 

 

도천면 관음사(觀音寺)는 남지에서 영산으로 가는 길옆 언덕 같은 산에 있는 절로 낙동강에 인접하여 있다. 사람의 관심이 사물을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관음사로 가면서 절실히 느꼈다. 이곳을 2년 동안이나 지나치면서 단 한번도 이곳에 절이 있을 것이란 생각도 못했는데, 낙동강을 따라 인접한 곳의 문화재가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 나선 지금에야 책을 보고 찾아왔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는 것만큼 알게 되며, 알게 된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꼭 맞아 떨어진다. 


관음사는 문화재자료 제18호 도천 삼층석탑, 제21호 관음사 미륵존불상, 제22호 관음사 석등 등 3개나 문화재가 있다. 이곳의 안내판에 쓰여 있는 기록을 옮겨 보면


 

 

『도천 삼층석탑(都泉 三層石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8호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 562

 

이 탑은 원래 송진일리 탑골이라 불리던 보광사에 있던 탑으로 절이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어 탑만 서 있던 것을 1928년 지금의 관음사로 이전하였다. 기단부와 탑신 1장, 지붕돌 2개가 남아 있을 뿐 상륜부는 물론 나머지 부분은 남아 있지 않는 상태이다. 우리나라 탑의 기본형에 손색이 없는 탑으로 전체의 조형미를 느낄 수 있으며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탑재 일부로만 다시 세웠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삼층석탑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탑의 높이는 1.62cm이다.』


 

 

 

 

『관음사 미륵존불상(觀音寺 彌勒尊佛像)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호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 562

 

신라말~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불상이다. 자연암석의 한쪽을 다듬어 미륵의 몸과 광배를 선으로 새긴 마애불이다.
미륵의 머리에는 소라모양의 나발(螺髮)과 상투모양의 육계(肉髻)가 선명하다. 늘어진 귀에 긴 얼굴은 살집이 있어 온화하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두꺼운 세 줄의 삼도가 새겨졌다. 부처의 빛을 나타내는 광배에는 불꽃과 꽃잎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었고 양어깨에서 걸쳐 내린 법의는 얇게 표현되었다.
원래 도천면 덕곡 부근에 있었던 것을 일제시대에 영산-덕곡 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해진다. 불상중간에 옆으로 금이 가 있는 것은 6.25사변으로 관음사가 불탔을 때 터진 것이라 하며 밤에 빛을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관음사 석등(觀音寺石燈)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
경남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 562

 

석등은 부처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해 만든 석조물로서 광명등(光明燈) 이라고도 하며, 삼국시대 이래 법당 앞에 만들어 세웠다.
관음사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보광사의 옛 터에 있던 것을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1928년 5월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아래에서부터 작은 규모의 아래받침돌·길쭉한 8각의 가운데기둥·윗받침돌을 차례로 올린 후 불을 밝혀두는 사각의 화사석(火舍石)부분은 푸른색 화강암이며 옥개부(屋蓋部) 무늬가 섬세하고 아름답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네 개의 창을 두었고, 지붕돌은 윗면의 네모서리와 그 사이마다 돌출된 조각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근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솟아 있는데, 그 표면에 구름무늬와 같은 조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흰색의 가운데기둥을 제외한 각 부분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석등으로, 통일신라 후기나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


 

 

 

낙동강의 개발로 인해 아름다운 개비리 오솔길이 사라진다고 하여 오솔길을 시급히 방문해보자는 의견들이 많아 ‘낙동강 습지와 문화탐방’이란 주제아래 개비리길 비교 걷기를 할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선택하여 걷기를 바라면서 그 계획도 올려놓는다.

 

창녕군 노리 개비 앞에서 출발⇒걸어서 임해진 도착, 차량으로 이동⇒길곡의 함안보 구경, 차량이동⇒망우정⇒관음사 차량으로 이동⇒창아지에 도착 후 개비리길 걸어서 용산리 도착, (차량은 창아지에서 용산리로 이동)⇒남지교와 능가사 구경 후 집으로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