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낙동강의 통곡

천부인권 2010. 7. 19. 10:34

 

 

비오는 낙동강을 가보자는 제안으로 수산대교에서 임해진 나루터가 있는 부곡면 청암리까지 가보았습니다. 처음 당도한 수산대교에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모레를 퍼 나르는 덤프터럭이 흙탕물을 팅기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낙동강의 둑을 보수한 흙이 빗물에 씻기어 인근 지역은 진흙으로 뒤덮었습니다.

 

 

 

 이 공사로 인한 흙탕물은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 중국의 황화강처럼 누런 흙탕물로 변해 바다로 향합니다.

 

 

 

 

 

 

 

 (구)수산교로 옮겨 보니 역시 낙동강 하도의 모레를 퍼 올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오니토가 아닌지 의심이 가는 검은 흙이 보입니다. 만약 오니토라면 이미 낙동강을 오염시켜 하류에 있는 정수장에 문제를 일으켜 수돗물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수만년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한 낙동강이 4대강 공사판으로 하루도 맑은 물이 흐르지 못하고 흙탕물로 흘러간다면 이 공사 중에 많은 생태계가 파괴되어 다시는 회생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단지 지금의 우리들만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먼 미래세대도 이용해야 하는 삶의 터전이라면 확실한 조사도 없이 진행하는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대강 공사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길 줄도 모르고 이 공사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 없는 상태라면 지금의 공사는 중단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우리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인공이 아닌 자연을 물려주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짧은 우리들의 생각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나면 미래세대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하여 우리세대에 내 조국 아름다운 맑은 천지를 망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낙동강이 숨겨 놓은 비경’ 곡강정으로 가 보았습니다. 흙탕물에 뿌리 채 뽑힌 풀들이 줄지어 떠내려 오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낙동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본포나루터와 학포리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낙동강 전망대 위에 올라보니 아이들과 몇 년에 걸쳐 놀러 왔던 모래톱은 이미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고 흑두루미 머물다 가던 그곳은 이미 파괴가 되어 이곳에서 흑두루미 볼일은 없지 싶습니다. 이것이 4대강 사업입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 흑두루미의 군무를 볼 수 있을까요? 만약에 한강에서 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서울까지 가는 시간과 경비는 누가 보상해 주는지 묻고 싶습니다. 언제나 그들이 올 때면 볼 수 있었지만 모래톱이 파괴된 지금은 엄청난 경비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앞으로 국가가 보상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학포리를 지나는 낙동강 17공구에도 경관을 해치는 판넬이 설치되었습니다. 무엇이 불안하여 아니면 어떤 위법사항을 가리기 위하여 설치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그만 두는 것이 옳지 싶습니다.


 

 

 

비를 맞으며 서있는 포크레인의 모습이 파괴된 도시에 서있는 괴물처럼 보입니다. 이제부터 낙동강에는 사람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이용해서는 안되며 동식물도 사람이 지정하는 것 외에는 살아서는 안되는 공간이 되어 갑니다. 물론 새들이 낙동강에 앉았다가는 것도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돈 많고 권력을 가진 자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뿐인 이 사업은 국민투표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억수로 내리는 빗속에서 정분난 개가 알려준 개비리길의 고마움을 기리고자 옛 선조들이 개에게 세워준 비석이 있어 잠시 사진으로 남겨 둡니다.


 

 

 

그리고 상사바위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총각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낙동강의 무한한 문화도 이야기 하지만 이제는 점점 퇴색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상사바위를 내려다보는 맞은편은 창원의 마지막 나룻터 주물연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본의 사신을 이곳에서 맞이하여 창원부사가 연회를 베풀고 한양으로 가는 뱃길로 배웅하는 곳이라 한양으로 빨리 가고 싶은 부사들은 일본사신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과한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주물연지 모래톱에서 춤도 추었을 것이고 낙동강에 뛰어들어 물장구도 치며 놀았을 곳이지만 이제는 모래톱을 파괴하여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낙동강을 파괴하여 농지를 개량한다는 명분으로 흙을 쌓아 두는 곳이 청암리 들판이라고 합니다. 비가 온 후라 들판으로 가는 길을 만든 곳은 무너졌고 들판에는 흙더미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이렇게 하여 다시 농사를 짓는 옥토로 만든다고 하는데, 글쎄 입니다.


 

 

 

청암삼거리에 있던 마을은 사라지고 오로지 ‘소우정(消憂亭)’만 남았습니다. ‘근심을 없애는 정자’라는 뜻의 소우정(消憂亭)은 벽진이씨 이도일(李道一 :1581~1667)선생의 8대손 이승덕이 낙향하여 만년에 지어 소일했던 곳이라 전합니다. 어쩌면 낙동강의 파괴로 근심할 일만 남았음을 미리알고 이곳에 소우정을 세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