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진해우체국은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천부인권 2011. 1. 17. 09:15

 

 

 

일제가 한반도에 최초로 만든 계획도시 진해는 도시의 영역과 거리망이 중심에서 햇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이루어진 방사형 도시(放射形 都市)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창원시 합포구 진동면에 진해현이 있었으나 그곳의 지명을 지금의 진해구로 일제가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가져가 사용한 것이 현재의 지명으로 고착화 되었다.
진해구의 중심인 중원로터리에는 8개의 도로가 합쳐져 로터리를 이루고 있으며, 로터리를 마주한 8곳의 모서리마다 세계 각국의 특색을 지닌 건축물들이 세워졌으나 현재에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사적 제291호로 지정된 진해우체국만이 러시아 풍의 건물을 온전한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가 진해를 이처럼 방사형 도시로 만든 이유를 생각해 보면 방사형 자체가 일장기를 의미하고 일장기를 향하여 세계 각국의 건축물을 배치한 것은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가 머리를 숙이고 조아리는 형세를 만든 것으로 보여 진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한반도의 실질적 지배자임을 내세울 기념물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상징으로 진해구를 건설하여 자랑꺼리로 내어 놓았을 것이다.

 

 

 

 진해우체국 앞에 세워둔 안내판에는 사적 제291호를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다.


진해우체국(鎭海郵遞局)
사적 제291호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통신동 1번지


1912년 10월 25일에 세워진 러시아 풍의 근대건축물로, 같은 해 11월부터 진해우체국의 청사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세 갈래 외 교차로에 위치한 631평의 삼각형 대지에, 136.7평의 규모로 지어진 단층 목조건물이다.
동판(銅版)으로 덮은 지붕에는 반원형의 채광창을 내었고 네 벽에도 채광을 위한 여러 개의 창이 크게 만들어졌다.
지붕의 동판은 일제말기에 포탄재료로 징발되었던 것을 1984년에 복원하였다. 원래의 목조마루는 보수 때 시멘트모르타르로 개조되었다. 정문 현관의 양쪽에는 강한 배흘림의 둥근기둥이 세워졌고, 내부의 중앙에는 손님과 사무의 공간을 구분하는 대리석 카운터가 만들어져 있다.


설계자와 시공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러시아 풍의 건축양식은 당시 진해에 있던 러시아영사관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점과 지붕에 동판을 덮은 점 등은 근대화 시기의 일본에서 서양의 건축양식이 정착되어 가던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진해우체국 내부 모습, 현재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국주의(帝國主義,영어: Imperialism)는 특정국가가 다른 나라, 지역, 식민지 등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정책, 또는 그러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을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진해우체국은 세계의 열강들이 지구의 자원을 먼저 빼앗기 위해 세계로 무대를 진출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을 빼앗아 제국주의를 실현한 표본이 되는 곳에 세운 건축물이다.

아마도 왜놈들은 영원히 한반도가 일제의 속국으로 남아있으리라고 믿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은 러시아 풍의 진해우체국건물을 찬찬히 살펴 보면 화강석을 깍아만든 기초석들과 예술성을 감미하여 조각한 계단 등이 100여년이나 흐른 지금에도 흩트러짐이 없는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해우체국 내부는 앞으로 우표 등 우체국 박물관으로 사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