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양화리 석조여래좌상에서 생각의 틀림을 본다.

천부인권 2011. 5. 20. 08:33

 

 

 

고성군 양화리 석조여래좌상과 법천사지부도군을 찾아서 양화리로 가보니 이 마을을 품고 있는 무량산(583m)의 산세를 보고 옛 선인들은 절를 세웠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무량산(無量山)은  고성군 북서쪽에 위치하면서 대가면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양화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산세를 하고 있는 낙남정맥의 구간이며, 고성군의 진산으로 은은한 모양을 지니고 있는 산이라 합니다.
양화리 입구에서 좌측 방향의 소로를 따라 600m 정도를 가다보면 가람이 개울을 따라 옆으로 쭉 널어선 형태의 배치를 하고 있는 무량사를 만납니다. 무량사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인 양화리 석조여래좌상(楊化里 石造如來坐像)이 있는 작고 조용한 절집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석조여래좌상은 불교가 이 땅에서도 많은 수난을 겪었음을 알게 됩니다. 머리의 육계는 깨어져 사라졌고, 코도 깨어져 없으며, 목도 부러진 것을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일까 유리상자 안에 모셔둔 불상은 노란 도포를 살며시 입혀두어 그 애절함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불상을 부수고 중을 업신여기던 시절은 사상의 전환기인 조선시대에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고려(高麗)를 이끌어 왔던 국가의 이념은 불교였습니다. 불교의 폐해가 백성들이 몸으로 느낄 만큼 심해지자 세상은 새로운 사상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문신·학자인 안향(1243~1306)이 고려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유학(儒學)의 정통(正統)이라 하여 손수 그 책을 베껴 쓰고, 또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화상(畵像)을 그려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한 것이 유학이고 새로운 사상이었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하여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면서 유학(儒學)을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도입하자, 공자를 섬기는 유학자들은 불교의 사상이 틀린 것으로 보고 불상을 파괴 했으며 불교의 사상을 업신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생각들을 온 몸이 부셔진 양화리 석조여래좌상의 모습에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양화리 석조여래좌상(楊化里 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양화1길 102-15

 

이 불상은 원래 고성읍 우산리의 우방사(牛房寺)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6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광배(光背) 부분은 지금도 우방사 옛 절터에 그대로 남아 있다. 불상의 머리, 코, 손, 하체 등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일부는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얼굴은 부드럽고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어깨는 넓어서 당당한 위풍을 드러내 준다. 양쪽 어깨에 걸친[通肩] 옷자락[法衣]은 얇게 표현되어 몸의 윤곽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올려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고[中品中生印],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채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였다. 하체는 무릎 폭이 넓지 않으나 상체와 잘 조화된 안정된 자세인데, 가부좌를 튼 두 발은 모두 노출되어 있다. 조각 수법이나 불상의 자세, 얼굴 모습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Seated stone yeorae statue in Yanghwa-ri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Property No.121
Gyeongsangnam-do Goseong-gun Daega-myeon Yanghwa-ri

 

This Buddhist statue, originally located at the site of the former Usan-ri of Goseong-eup, was moved to this location in 1964. The nimbus piece to the statue still renains at the former site of Ubangsa. So much of the statue has been lost such as the head, nose, hand, and lower torso that a portion of it has been repaired with cement.
The face is soft and has a graceful expression while the broad shoulders give it on both shoulders give it an solid imposing appearance. The clothing draped on both shoulders were rendered thinly expressing the contours of the body well. The right hand is raised as high as the shoulder with the thumb and middle finger touching, and the left hand rests over the knee with the palm turned upwards.
On the lower torso, the knees are only slightly spread giving it stability and balancing well with the upper torso, and the bare feet are exposed in the cross-legged position. Based on the carving techniques, the seated position, and the appearance of the face, the statue likely dates to Unified Silla period(668~935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