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밀양 퇴로리 삼은정에 가보니

천부인권 2011. 5. 23. 17:00

 

 

위양지를 나와 좌측으로 가면 부북면 퇴로리로 가게 됩니다. 퇴로리 입구인 작은 고개를 돌면 길 우측에 커다란 소나무 군락을 보게 되는데, 여기가 ‘퇴로리 당산목과 당집(부북면 퇴로리 399-3)’이 있는 곳입니다. 신성한 곳임을 상징하는 왼쪽으로 꼰 금줄인 새끼줄이 쳐져있고 어떤 때에는 당집 앞에 술잔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1994년 8월 16일에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의 가지 하나는 길을 따라 길게 늘어져있어 신령스럽게 느껴지며, 지정당시 나무의 수령이 120년 이란 세월이 말해주듯 나무의 높이는 12m, 둘레는 2.8m로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의 좁은 도로를 따라 계속 도로 끝까지 가면 기화이초가 온통 감싸고 있는 범상치 않은 삼은정(三隱亭)이라는 오래된 허름한 고택을 만나게 됩니다. 이 정자는 1904년에 여주(驪州) 이씨의 후손인 은둔처사 용제(庸齋) 이명구(李命九, 1852~1925)가 지은 정자로 삼은(三隱)'은 물고기, 나무, 술을 의미하는데, 이 세 가지를 즐긴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 합니다.
또한 삼은정은 용제 이명구가 세속과 멀리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전하며, 6대에 걸친 약 200년 동안 만석꾼 집안을 유지하다 보니 전국의 갓쟁이들이 수 없이 놀다간 곳이라 전합니다. 아마도 밤낮으로 밀양의 기생들이 들락거리며 풍악소리와 시조소리가 끝없이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삼은정은 생활공간인 퇴로리 고택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지어 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이 집을 관리하시는 분은 스님처럼 수행하며 삶을 사신다고 하면서 자신을 ‘호택(77세)’이라고 소개를 하십니다. 이분에게 이 집의 나무들을 물어보니 상당한 실력을 갖춘 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죽은 듯이 잎을 피우지 않고 있지만 선비가 공부를 할 때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신목이라 불리는 회화나무가 서있어 이 집을 지은 분의 신분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차에 내려서 집 입구를 바라보니 배롱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옛 이야기가 궁금하면 들어오라는 듯 마치 손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집 입구부터 도열을 하듯 서있는 은행나무, 전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주목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이곳을 방문하는 옛 갓쟁이들을 맞이하는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듯합니다.


 

 

삼은정(三隱亭)에서 분별이 될 만큼 눈에 확연하게 띄는 것들은 첫 번째가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다는 연못일 것입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연못형태를 가진 단정한 사각형 연못의 중앙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동산이 있고 이 동산에는 작지만 또 다른 우주를 담고 있어 축소된 분재들이 자라는 곳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연못과 삼은정 사이에 자리한 세계 5대 미목으로 알려져 있는 식물인 금송은 일본에서 건너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울창한 숲 속에서도 단연히 돋보이는 금송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크기의 금송으로 이를 심은 주인의 성품이 외국문물과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좋은 예 입니다.


 

 

 

세 번째는 삼은정 뜨락에 우뚝 솟은 ‘대왕송’의 거대한 모습일 것입니다. 대왕송은 미국의 대서양 연안이 원산지로 잎이 소나무보다 3배나 길어 대왕송(大王松)으로 불리고 있으며, 삼은정의 대왕송은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을 하다 보니 잎이 많이 짧아진 듯이 보입니다.

 


네 번째는 통시가 있는 외곽문에서 삼은정 사이에 있는 샘이 흐르는 곳에 있는 구부정한 향나무입니다. 향나무의 뿌리가 토해낸 듯한 샘에는 조금씩 물이 흘러 나와 작은 연못을 적시고 다시 큰 연못으로 물이 흘러가도록 되어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외곽으로 나가는 문 옆 담장에 서있는 회양목 입니다. 회양목[淮陽木, Korean box tree]은 석회암지대가 발달된 북한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회양목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보통은 울타리나 경계식재로 많이 사용하는 나무라 이처럼 완전한 교목의 형태로 자란 것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한방에서는 진해·진통·거풍 등에 약재로 이용한다. 회양목은 목질이 단단하고 균일하여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조선시대에 회양목은 목판활자를 만드는데 이용되었으며, 호패, 표찰을 만드는데도 이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담장 밖 뜰에 있는 적송(赤松)입니다. 보통의 적송은 밑동은 검은 색을 띄고 표피가 두터우며, 중간정도부터 표피가 붉지만 삼은정(三隱亭)의 적송 2그루는 밑동에서부터 붉은 표피를 가진 희귀한 소나무 입니다. 적송은 모양에 따라 춘양목(春陽木), 미인송(美人松), 금강송(金剛松), 육송(陸松),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옛날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딸아이가 결혼을 할 때 잘라서 가구를 만들어 주었고, 아들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소나무를 심는 사연은 자신이 죽으면 소나무를 베어 관을 만들어 장사(葬事)를 지내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삼은정(三隱亭)은 희귀한 나무 뿐 아니라 무환자나무, 백송, 비자나무, 팽나무, 산딸나무, 화백, 명자나무, 동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나무 백화점 같은 소중한 유산입니다. 아마도 삼은정을 지은 용제(庸齋) 이명구(李命九)선생은 조선시대의 나무박사로 통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삼은정 일대의 나무들을 조사하여 이름표라도 붙여 놓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