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용의 전설이 문화재로 남은 가야진 나루터와 용산, 용소의 풍경

천부인권 2011. 6. 9. 15:49

 

 


가야진에는 용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기록이 나온다. 세종 3년 4월 13일조에 보면 ‘룡이 경상도 가야진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가야진 룡신에 대한 이야기가 원동면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가야진에서 낙동강을 건너면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피안(彼岸)에 용산이 있고, 용산 밑을 흐르는 물에 낙동강에서 가장 깊다고 하는 용소(龍沼)가 있어, 깊이가 27M 가량이나 되고 물줄기가 상하로 통하여 소용돌이가 심하여 주민들은 그곳에 용이 살고 있다고 믿어 왔다. 사람들이 용신제를 지낼 때 제상에는 반드시 메 3그릇과 탕 3그릇, 잔 3개를 놓아야하는데, 그것은 용소에 황룡 한 마리와 청룡 두 마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룡은 인룡이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양산고을을 옥당고을이라 칭할 때 양산고을 사또가 경상감사에게 서신을 전하기 위하여 한 전령(조 씨)을 경상감사가 있는 대구로 보냈다. 전령이 가는 도중에 절세가인의 여성이 미행하고 있음을 알고 마음이 끌렸다. 해질 무렵 용당에 도착하였다. 전령은 용소 앞 가야진사 제당이 있는 용당장()터 어느 주막에 숙소를 정하니 그 미인도 옆방에 숙소를 정했다. 전령은 자기를 따라온 미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보니 삼경, 사경을 다보내고 동이 터오자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방문을 열어 보니 마당 한 가운데에 큰 구렁이(靑龍)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너무나 놀라 어찌할 줄 모르다가 정신을 차려 구렁이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구렁이가 “나는 황산강(낙동강) 요소에 사는 황룡의 본처 되는 룡(청룡)의 화신이다. 당신의 뒤를 비행하는 이유는 당신에게 간곡한 청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남편 되는 황룡이 첩룡을 좋아하여 나를 버리고 내일 첩 되는 룡을 데리고 상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내가 내일 정오경에 남편 황룡과 첩룡을 용소에서 싸움을 붙일 것이니 당신이 내일 아침에 일찍 용당장에 가서 첫눈에 보이는 물건을 구입하여 배를 타고 용소로 와서 남편 룡과 첩룡이 싸움을 할 때 첩 룡인 청룡을 죽여주소. 만일 이 약속을 지켜주면 당신에게 복이 있을 것이고 이행하지 않으면 당신의 신변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요.”라고 말한 후 구렁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전령은 아침 일찍 장터에 가서 첫눈에 보이는 큰 장대 낫을 사서 정오경에 배를 타고 용소로 가니 강물이 끓어오르면서 청룡과 황룡이 강 물위로 솟구쳐 올라 싸움을 하므로 첩(청룡)을 죽인다는 것이 엉뚱하게 남편인 황룡을 베어버리고 말았다.
이에 본처 룡은 전령에게 나타나 “당신은 나의 남편을 죽였으니 나와 함께 용궁으로 가야한다.”고 하면서 전령이 가지고 갔던 장대낫과 입었던 벙거지 등을 가야진 제당 앞 강변에 버려두고 전령을 대리고 수중으로 들어갔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재앙이 자주 일어나 마을 사람들은 사당에 제사를 올리면서 살아있는 돼지를 용소에 던지고 ‘침하돈’을 세 번 반복하여 외쳐 재앙을 막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경상감사가 이곳에 와서 나라에서 내린 향축(香祝)으로 기우제를 지내고 국태민안을 기원하였으며 감사 행차 후에는 농민들이 농악놀이를 즐겼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