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아름다운 다구마을을 바라보는 제말장군 묘

천부인권 2014. 1. 26. 17:00

 

 

<2010/8/7 진동 다구리 제말장군 묘>

 

창원시 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산 66-1번지에 위치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6호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제말장군(諸沫將軍)의 묘이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집필한 임진왜란(壬辰倭亂) 전란사(戰亂史)를 적은 징비록(懲毖錄)에는 1567년 경상도 고성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의병을 모아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말장군의 묘는 다구마을 버스정류소 표지가 세워진 곳 바로 위에 안치되어 있는데 칠원제씨(漆原諸氏) 종중이 소유하고 있다.

 

 

 

 

제말장군 묘에서 다구마을을 바라보면 아담한 마을과는 달리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펼쳐진 논들과 다구마을을 지켜주듯 바다 입구를 막아주는 죽도(竹島)의 풍경이 한동안 시선을 빼앗는다.

 

 

 

 

묘 앞에 세워진 비에는 돌이끼가 세월을 말해주듯 왜란의 중심에서 온몸을 던져 죽음으로 지켰던 그 마음처럼 살아서는 돌이끼로 죽어서는 돌꽃이 되어 피어난 듯하다. 묘비명에는 "유명조선국선무공신 증자헌대부병조판서지의금부사 행성주목사 시충장제공지묘(有明朝鮮國宣武功臣 贈資憲大夫兵曹判書知義禁府事 行星州牧使 益忠壯諸公之墓)"라 새겼다.

 

 

 

 

 

고성 제씨(諸氏)의 시조(始祖)인 제말장군의 자()는 성여(成汝)이고, 호는 가계(柯溪)이다. 당시 무과(武科)에 급제를 했으나 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 김해. 의령(宜寧), 현풍(玄風), 문경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워낙 몸놀림이 빠르고 용맹하여 비장군(飛將軍)으로 불렸으며,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던 곽재우(郭再祐)장군과 함께 그 공적이 조정에 알려져 1593년 성주목사(星州牧使)에 임명되었으나 성주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1792(정조 16)에 병조판서로 올려지고, 충장공(忠壯公)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그와 같이 의병으로 활동했던 조카 제홍록은 제말장군과 함께 공을 세운 후 이순신장군(李蕣臣將軍) 휘하에서 있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사하였다.

 

 

 

 

이들 충의를 기리어 정조 16(1792)에 이조판서 서유린(徐有隣)이 명에 의하여 비문을 지어 촉석루 옆에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를 세우고, 쌍충각(雙忠閣)을 지었다.(쌍충사적비가 원래 있던 곳은 진주 문산의 길가 였는데 도로확장으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인 촉석루에 옮겨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