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동읍 단계리 보호수-은행나무

천부인권 2014. 12. 19. 18:00

 

 

 

<2005/5/3 우곡사 은행나무>

 

동읍 단계리 은행나무는 동읍 단계리 7번지에 위치하는데 정병산 우곡사(精兵山 牛谷寺)가 그곳이다. 정병산 우곡사(精兵山 牛谷寺)는 신라시대인 837(흥덕왕 7) 무염국사(無染國師 800-888)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1799(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전단산(栴檀山)에 있는 절이라고 나와 있어 그때까지는 우곡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말기의 부호인 구만호(具萬戶)에 의해 옛 절터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전단산은 정병산의 옛 이름이다.

 

 

 

 

우곡사에는 두 가지 무염국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하는데 그 하나가 창원시 보호수로 20051229일에 관리번호 12-5-1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에 관한 설화이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은행나무는 벼락을 맞아 원 줄기 자체가 170cm 정도의 높이만 남고 줄기의 심재부분인 내부의 목재도 썩어 버렸지만 줄기의 껍질 부분에 새순이 돋아 죽지 않고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겨우 생명만 유지 하는 듯 보이는 이 은행나무는 창건 당시 무염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로 예전에는 둘레가 네 아름이나 되고 높이가 30m를 넘는 노거수(老巨樹)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등산을 가거나 약수를 받아가는 사람들이 저절로 머리를 숙여 기도를 하고 가는 나무이다. 우곡사 절 앞에 있는 노거수라서 그런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였다고 보여 지는 불구들과 작은 불상들이 은행나무에 걸려 있거나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0/3/21 우곡사 은행나무>

 

창원시 보호수 상세내력과 이곳 안내표지석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의 나이는 500, 높이 11m, 가슴높이 둘레 700cm로 기록되어 있다. 이 보호수의 속이 빈 내부를 보면 불에 탄 흔적이 보이는데 벼락을 맞아 속이 불에 타버린 것으로 보여 진다.

 

 

 

 

무염국사가 이곳에 절은 세운 것은 왜구들의 노략질을 피하고, 이 땅에 터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소망인 평화스러운 세상을 염원하고자 한 뜻이었다. 풍수적으로 우곡사는 소의 젖 부분에 속하여 약수가 마르지 않고 많이 흘러나와 병든 사람들이 이 약수를 먹으면 무병장수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一心無碍(일심무애)

筏師旣捨矣(벌사기사의) 대선(大船)을 이미 버렸는데

舟子何繫焉(주자하계언) 어찌 소주(小舟)에 매여 있으리요.

 

 

 


小山 金琦浩(소산 김기호;1822~1902, 창원 사파정 마을 김녕가문에서 태어남.) 선생은 禹谷寺((우곡사;신라 흥덕왕 7(837)년 무염국사(800~888)가 창건했다고 전함.))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宿禹谷寺(숙우곡사)’라는 시를 남겨 소개를 한다.

 

宿禹谷寺 우곡사의 하룻밤

 

大覺人間夢 인간 세상 헛된 꿈 깨어나보니

寒山一磬聲 한산의 풍경소리 장엄하구나.

問爾庵中釋 묻노라 저 암자의 중아

能知夜氣淸 야기의 맑은 이치를 아시는가.

 

*한산의 풍경소리란 당나라 시인 長繼(장계)가 읊은 楓橋夜泊(풍교야박)에서 차운한 것이다.

*夜氣(야기)란 밤중에 자라는 청명하고 순수한 생기.

 

 

 

 

 

 

<2010/3/21 우곡사 전경>

 

 

<2005/5/3 우곡사 해우소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