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창원시 진동면 사동리 효숭재와 행원각

천부인권 2016. 10. 23. 06:00

2016.10.17. 사동리 효숭제와 행원각

 

창원시 진동면 사동리 242번지에 위치한 효숭제와 행원각은 옛 국도 2호선변인 진동면 과 진북면의 경계지점이며, 인곡천과 덕곡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인근 40m에 이국노의 효행을 기리는 영언각이 있다.

社洞里 行源閣(사동리 행원각)으로 더 많이 알려진 孝崇齊(효숭제)는 조선 선조 때의 참봉 鄭弼衡(정필형)의 효행을 기리는 비각과 재실이다. 정필형의 자는 舜可(순가), 호는 摹庵(모암) 본관은 진주이다. 그는 1510(중종 5) 鎭北面 富山里(진북면 부산리)에서 출생했는데 재주가 뛰어나고 효행이 지극하여 원근에 명성이 자자했다. 6세 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 자라면서 열심히 학문에 매진하는 한편 성장하여 결혼한 후에도 어머니 봉양하기를 40년 동안 하루같이 하였다. 자연히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이 자자하니, 나라에서 그의 효행을 듣고 명종 때 참봉벼슬을 내렸으나 한사코 사양했다. 모친이 ()하니 예를 다해 선친의 묘소에 합장하고, 부친의 상을 追服(추복 : 상을 당했을 때 사정이 있어 입지 못한 상복을 나중에 입는 것) 하는 한편 3년간 侍墓(시묘)하였다. 그가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밤마다 밖에는 호랑이가 와서 지켜주었고 그가 부모의 大祥(대상 : 장사 지낸지 2년만에 지내는 제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 역시 호랑이가 호위했다고 한다.

그의 효행에 이적이 일어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어머니께서 앓아눕게 되자 공은 하루빨리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하려고 정성을 다하여 약을 구하여 드렸으나 백약이 무효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죽순 나물이 먹고 싶다 하여 며칠로 죽전(竹田)에 가서 죽순을 구하려고 찾아 다녔다. 때가 동짓달이라 아무래도 죽순을 구할 길이 없어 힘없이 앉아 탄식을 하고 있는데 바로 발에서 난데없이 죽순이 솟아나는 것이 아닌가. 공은 뛸 듯이 기뻐하며 죽순을 꺾어가서 어머니께 나물을 해 드렸다. 10여일 후 어머니는 다시 잉어 고기를 청하였다. 공은 겨울임에도 잉어를 잡기 위하여 하루 종일 개천을 헤매는데 난데없이 얼음판 위에 잉어 한 마리가 굴러 나왔다고 한다. 이 거짓말 같은 실화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공의 지극한 효성에 천지신명이 감동하여 도와 준 것이라고 하였다.

 

 

 

효숭제는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 瓦家(와가)이며 재실로 사용하는 듯하고, 약간 뒤쪽에 건설된 행원각은 정면, 측면 한 칸으로 맞배지붕 기와집이며, 비각에는 行源閣(행원각)이라는 편액이 달려있고, 비각 내에는 孝子禮賓寺參奉鄭弼衡碑(효자례빈사참봉정필형비)’이라 적은 비가 세워져 있다.

 

참조

창원군지

티지털창원문화대전

 

 

 

2016.10.17 사동리  行源閣 ( 행원각 ) 모습

 

2016.10.17 사동리  행원각行源閣 내부의 비 모습

 

행원각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