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생각하다

해석 또는 번역이란 것에 대해

천부인권 2017. 11. 15. 06:03

 

우리가 새로운 지식이나 옛 선현들의 말씀을 구할 때 그 말의 뜻을 해석하거나 번역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각자가 이해하게 되면서 지식의 축적을 이룬다. 해석(解釋)을 사전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행동, 글 따위의 의미를 이해하거나 판단함.”으로 적었다. 그리고 번역(飜譯)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거나 바꿈”을 의미한다. 어떤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김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번역한 글을 읽는 이에게 의미의 전달과 공감을 얻는 것이다. 번역 글을 읽는 자에게 의미의 전달도 명확하고 공감을 얻은 번역을 했다면 잘 번역한 글이라 평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된 글을 가지고 다시 처음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같은 언어로 번역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겨울 길」을 아래 두 사람의 번역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함대훈
사진 출처 :             


 백석
사진 출처 :
다음-인물백과
겨 을 길 (함대훈)  
                   
흔들리는 밤안개속을                          
달빛이 새여 나온다.                          
슬픈 들가에                                  
달빛은 애처럽게 빛난다.   

                   
單調로운 겨을길을                             
트로이카가 살과같이 달린다.                  
외마듸 방울소리가                            
疲勞에지친듯 들린다.  

                       
車夫의 길게빼는 소리엔                      
어딘지 親熟한게있다                          
遊蕩한것도같고                               
마음속에 哀愁같기도하다  

                    
불도 검고적은집도없고!                       
人家없는 遠僻地엔 눈만이있다!               
그저만나는것 里程標뿐,                                                                    
각급증 슬픔… 來日은 니-나여!                
내일은 그립은 네게 도라가서                 
暖爐옆에서 모-든걸잊고                       
너를보고 보고 또 보련다. 

                   
時計의 指針은 소리를 내이고                 
正確히 自己周圍를 돌고 있다                  
귀찬은 사람들을 멀리떠나서                   
한밤중에 단두사람 같이있을량이면

             
아…슬프다 니-나여! 내가는길은 각급도하구나  
車夫는 조을다가 이제ㄴ숨좇아없네             
單調로운방울소리                             
朦朧한달그림자                               
(491-492)        
겨울 길 (백석)


굽실거리는 안개 속을
달이 샌다
슬픈 들판에
처량한 달빛 흐른다.



쓸쓸한 겨울 길을
살 같이 달리는 뜨로이까,
언제나 외 가락 방울 소리
그 딸랑 소리도 내 역겨워.



말 몰잇군의 기나리 속에
정다운 소리 들려 온다
격한 정의 뒤설렘 같이
가슴에 사모치는 서글픔 같이


등불도, 컴컴한 초막도 없이
다만 외진 땅, 그리고 눈…
알락달락한 길 표말이
우뚝 우뚝 앞에 나선다.



쓸쓸타, 서글퍼… 래일은, 니-나,
래일은 사랑하는 그대게로 가
난롯가에 모든 것 다 잊고 앉아
한 없이 그대만 그대만 바라볼련다



시계 바눌은 똑딱거리며
어김없는 제 길을 뱅뱅 돌아 가,
그제는 시끄러운 사람들 멀리
깊은 밤을 너와 나 같이 지나자.



서글프다 니-나여, 쓸쓸한 이 길
말 몰잇군 조으노라 말이 없구나,
언제나 외 가락 말 방울 소리
달에는 안개만 어리였다.
(선집: 280)  

 

두 사람의 번역을 보면 각자 다른 시를 보는 듯하다. 함대훈의 번역은 러시아 언어를 우리 글로 옮기는데 충실한 반면, 백석의 번역은 우리의 정서에 호소하듯이 번역을 하였다. 만약 백석의 번역을 러시아 언어로 다시 번역한다면 아마도 푸시킨의 처음 글처럼 번역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백석의 번역에 환호한다.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解配)되던 해인 1818년(순조 18)에 완성한 목민심서(牧民心書)는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교감이 되는 책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구입한 목민심서를 보다가 목민심서 이전육조(牧民心書 吏典六條)의 내용 중 용인(用人)편에 나오는 『苟不得人 備位而已 不可委之以庶政(구부득인 비위이이 불가위지이서정)』이란 글귀를 “진실로 적격자를 얻지 못하면 자리만 채울 따름이니 그에게 정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해석한 글을 올리니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어 해석과 번역에 대한 의견을 쓴다. 인터넷으로 이 문구를 찾으면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지만 가장 무난한 해석으로 보이는 것은 아래 “漢詩 속으로”라는 카페에서 계일이라는 필명으로 해석한 분의 해석이다.

 

漢詩 속으로-戒溢(계일) 『苟不得人 備位而已 不可委之以庶政』
「진실로 적격자를 얻지 못하면 자리만 채울 따름이니 여러 가지 정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읽고 있는 목민심서는 북마당에서 출간한 목민심서로 최태응이란 분이 해석한 책이다. 이 책에는 『苟不得人 備位而已 不可委 之以庶政』 「진실로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적당히 채용하여 자리만 채울 뿐 그에게 정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해석 했다. 목민심서를 접하는 사람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적으로 해석을 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해석을 가지고 다시 한문으로 옮긴다면 목민심서 한문 내용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석을 높게 산다.

 

딴지를 걸었던 석 모씨의 『苟不得人 備位而已 不可委之以庶政』 번역은 「단지 인물를 얻지 못했다면 자리을 준비할 뿐이고, 여러 권력를 써도록 빈자리인 그곳에서 위임하는 것은 불가하다.」라 해석했는데 첫줄은 참신하다 할 만 하지만 뒤쪽 해석에서 뭔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무 말 잔치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 해석을 다시 한문으로 번역하면 원안대로 문장이 되지 않는다.

 

좋은 해석과 문장에 충실한 해석과의 차이는 읽는 자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같은 시를 번역한 두 사람의 시나, 목민심서를 해석한 세 사람의 해석을 보면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이해와 느낌은 각자 다르겠지만 적어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야 한다. 해석이란 문장 자체의 의미전달도 중요하지만 읽는 자의 이해가 빨리 되도록 해석 되어야 좋은 해석이라 할 것이다.

 

논어 향당 제12장 중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우리는 “廐焚(구분)이어늘 子退朝曰(자퇴조왈) 傷人乎(상인호)아하시고 不問馬(불문마)하시다.”라 읽으며, 「마굿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께서 조정 일을 마친 후 오셔서 "사람이 상했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들어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不 問馬』으로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굿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께서 조정 일을 마친 후 오셔서 "다친 사람은 없느냐?" 하신 후 “말은 어떠하냐?”」고 해석 한다. 공자의 사상을 이해 한다면 후자의 해석이 마음속에 와 닫는다.

 

이처럼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읽는 사람의 공감을 얻어야 좋은 해석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