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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봉곡동 인천이씨 남계정사 南溪精舍

천부인권 2018. 4. 4. 04:23



2018.3.31. 봉곡동 인천이씨 南溪精舍


창원시 의창구 서곡길 143에는 현대식 2층 기와집이 건축되어 있는데 1층은 사람이 사는 집이고 2층은 1994년 4월 17일 낙성식을 한 남계회관(南溪會館)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인천이씨의 남계정사(南溪精舍)이다. 내부에는 안릉후인(安陵後人) 이병희(李秉熙)가 쓴 남계정사기(南溪精舍記)가 걸려 있다.





인천이씨(仁川李氏)의 유래(由來)
가야국(伽倻國)을 세운 김수로왕(金首露王)과 인도 아야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결혼을 해서 1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 거등왕(居登王)은 왕위 계승을 위해 김씨(金氏) 성을 따랐고 둘째, 셋째는 왕비(王妃)의 성을 따라 김해허씨(金海許氏)가 되었다. 그리고 7명의 왕자들은 장유화상(長游和尙)을 따라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하여 승(僧)이 되었다.
그 후손 중 허기(許奇)공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15년에 왕명으로 당나라 사신을 가게 되었다. 당나라에 도착해보니 안록산의 난으로 현종(玄宗)은 쓰촨성(成都)으로 피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종이 피신하는 것을 본 허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호송하여 성도(成都)까지 무사히 모시자 대신들이 칭송을 하였다. 다음 해 안록산이 죽자 당나라는 안정을 찾았고 현종은 다시 복궁하였다. 이때 신라 사신(使臣) 허기(許奇)의 공을 치하하며 황실의 성씨인 이(李)씨 성을 사성(賜姓)했다. 신라에서는 다시 경덕왕이 이 사실을 치하하며 소성백(邵城伯)에 봉하였다.
이후 그의 10세손 이허겸(李許謙)이 고려 현종조에 상서좌복야·상주국·소성현개국후(尙書左僕射·上柱國·邵城顯開國侯)에 봉해졌다. 아울러 선대(先代)의 작위도 이어 받아 소성후(邵城侯)를 봉하여 그 지역을 관향(貫鄕)으로 이씨(李氏)를 이어가니 지금 인천이씨(仁川李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소성(邵城)에서 인천(仁川)으로 되는 지명 변천과 인천이씨 가문은 일맥상통하는데 고려 문종(文宗)의 왕비 소성이씨 인예태후(仁睿太后)가 10명의 아들[순종(順宗), 선종(宣宗), 숙종(肅宗),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 등]과 두 명의 공주를 낳아다. 숙종(肅宗) 10년(1105) 외가 소성현(邵城顯)을 경사(慶事)의 근원지(根源地)라 하여 경원군(慶源郡)이라 높여 이때부터 경원이씨(慶源李氏)로 불렀다.
인종(仁宗)은 어머니 경원이씨 문경태후(文敬太后)의 친정이라 하여 인주(仁州)라 불렀다. 이후 인주이씨(仁州李氏)라 불렀다.
그 후 조선 태종(太宗) 13년(1413)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인천(仁川)으로 지명이 바뀜에 따라 인천이씨(仁川李氏)로 불러 본관도 소성,경원,인주,경원,인천으로 바뀌었다. 인천이씨의 시조 이허겸의 묘는 인천시 연수동 원인재(源仁齋)역 부근에 있으며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 되었다.





남계회관(南溪會館) 편액



안릉후인(安陵後人) 이병희(李秉熙)가 쓴 남계정사기(南溪精舍記)


南溪精舍記
夫於事에 有顯晦之数하고 於理에 有不泯之하니 前由於一時之幸不幸이요 後由於人心天理之不容己者이라 可顯之理則雖有晦於一時然而나 公議則不泯於永世者니 必有悠久而彌彰이라 爲後昆之追慕祖先은 無間於遠近이나 始遷肇基之祖를 思慕之는 尤深者니 以其一家垂統之가 在是也라 舊檜山鄕之鳳谷에 有南溪精舍하니 是則往昔에 自咸州로 遷肇于玆하고 今至爲子孫者가 益繁不億에 尙不斬嘉謀하니 公則仁川李公諱暻處士南溪公寓慕之所也라 謹按公家하니 上祖는 高麗尙書左僕射邵城伯諱許謙이요 以後高麗朝鮮兩朝에 達官簪纓이 遍滿이라 諱啓耘都事公은 當燕山乱政에 棄官南下하여 居於咸州坪舘里하니 公之六代祖요 曾祖曰諱元佐號琴溪니 以孝贈漢城右尹이요 祖諱宣은 宣務郎이며 號晩樂齋요 考諱弘由巳는 號聽琴軒이다.
公은 天姿端正하고 才藝穎敏하며 以能自鮮文義而弱冠에 通六經百家而不事擧業하고 專心性理하니 蔚然有望於南鄕이라 公嘗往來檜山에 甚愛安民山水라 外舅敬軒安公이 以資田宅하니 來居是里에 驛屯이 習俗이 貿貿故로 設塾立規하여 敎授之未而幾年에 鄕坊久人이 家絃戶誦하여 文化가 大行이라 是以로 舅公君子而所欿之泉을 尙今稱曰君子泉하며 事載檜山誌라.
噫라 古人立志에 有岐貳하니 或以擧業仕進하고 或有以爲己篤學而成佳에 及人敎化者하니 於其優生之는 豈可易言哉리요 然而나 事載鄕誌者盖鮮矣라 嗚乎라 今世異昔에 旣有齋亭而難支頹落者多矣라 公之生世가 距今幾百禩之至於壬申에 支下李門宗會가 鳩首議定而委工於門老香根日根甫하여 刱起精舍하니 直是有祖先垂統에 纘緖於後也而於理不泯者요 寓慕尤甚之로 不外于聿修厥德之하니 况誼居鄕望族者가 豈不以松茂柏悅之리오 槪観精舍하니 擇基爽塏處하고 不以濫斥新制而不用瓦木이라 無腐漏之憂하며 上下가 各廣於舊制四間之니 上則爲精舍에 靜潔而閉寂이라 履霜之日에 或遇雨雪則致祭于斯하며 有事則聚合于斯하며 時或會坐講論於斯하면 足以尊祖睦族之道라 下則守者居之에 裕餘하고 門間亦三間也니 其制가 備矣라 庚辰臘月之日에 公冑炳榮이 使坪根洙元甫하여 介吾友金柱瓘兄으로 來余寓而請文할새 不堪當이나 終不辞하고 如右爲記之라
庚辰92000年)小寒節
安陵後人 李秉熙 謹記






利見臺-烏川 李文和
羅代君王孝子臺 신라 때에 임금이 쌓으신 효자대
如今登眺己封苔 이제 올라와보니 이끼만 우북이 끼여 있구나.
霓旌羽盖腸堪斷 오색 깃발 누런 일산 추억하니 창자가 끊기는 듯 했는데
峻宇雕穡址自頹 드높은 궁전 화사한 담장 터마져 허물어 졌도다.
雲漢分明看北斗 은하수 분명하여 북두칠성 보이고
煙濤髣髴望蓬萊 아지랑이와 물결 아득하여 봉래산 바라보이는 듯하네.
可憐波上白鷗鳥 귀엽구나 물결위에 떠도는 저 갈매기
潮去潮來依舊廻 오고가는 조수물은 여전히 되돌아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