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7 대암산 등산로 입구에서
진해고등학교 재창원산악회가 발족된 후 1회 산행은 2018년 12월에 있었고 3개월 뒤인 2019년 3월 17일에 2회 산행을 가졌다. 이번 산행은 1회 때 하산한 다음 지점에서 출발하여 숲속나드리길만 약 2km를 걸었고 예약된 식당까지 4km정도를 걷는 구간이다. 출발지는 대방나들목으로 잡았으나 모이는 장소는 안남중학교 정문 앞이고 시간은 10시이다.
시간이 다가오자 27회 회장기수 선배들이 많이 참석했고 타 기수들은 36회를 빼고는 다 1명이다. 그러나 봄기운이 만연한 3월의 활력처럼 선후배의 인사를 나누고 출발지를 거쳐 숲속나들이길과 만나는 대암산약수터까지 오르막길을 올랐다. 이곳의 토질은 거의 돌밭으로 이루어져 물을 만나기 쉽지 않는 곳이다.
대방나들목에 세운 숲속나들이길 안내판
2019.3.17 대암산 등산표식
첫번째 쉬어가는 등산로와 숲속나들이길이 만나는 '대암산약수터'
대암산약수터 안내표지 앞에는 “창원둘레길 스템프투어‘라는 도장 찍는 곳이 생겼는데 지날 때는 긴급의약품 통인 줄 알았다. 이곳에서 인증 단체사진을 남기고 숲속나드리길을 선후배가함께 걷기 시작했다.
대암산에서 만난 계곡에도 3월에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계곡을 지나는 곳에 임시 다리가 없어도 지나는 길은 거의 평면 수준을 이룬다.
숲속나드리길 스트로브잣나무 구역을 만나는 곳에 시 한편이 표식이 되어 세워졌는데 이형기 시인의 ‘낙화’이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스트로브잣나무 숲은 걷기에 바쁜 우리들 일행과 그렇게 멀어졌고 어느 듯 너덜강 구역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김달진 시인의 ‘자유’가 있다.
자유
김달진
자유!
너는 그리도 값진 것이드뇨?
너는 생명!
모든 것이 너를 얻어 살고,
너는 광명!
모든 것이 너를 얻고 빛나고,
너는 환희요, 미의 여신!
모든 것이 너에게서 즐겁소 아름답거나,
너는 모든 것의 본연의 모습.
그러나 너는 진정 實되어
거저 오지 않나니,
피를 주고
눈물을 주고,
목숨을 주고...
그러므로 무덤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
어둠 속에서 비춰오는 광명,
불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야!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너, 자유로다.
그리고 너덜강을 벗어나면서 되돌아보고 인증 사진을 남긴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모습이겠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될지?
△2109.3.17 대암산 자락의 현호색
대방동 뒷산에 왔을 무렵 편백나무로 식목을 새롭게 한 지역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봄꽃의 정수인 현호색(玄胡索)을 만났다.
양귀비목(Papaverales), 현호색과(Fumariaceae), 현호색속(Corydalis), 현호색의 학명은 Corydalis turtschaminovii이다.
현호색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사의 모자를 닮은 듯한 꽃모양이 특이하다. 전 세계에 30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현호색, 왜현호색, 빗살현호색, 댓잎형호색, 등의 덩이줄기를 갖는 종과 산괴불주머니, 염주괴불주머니, 자주괴불주머니 등의 곧은 뿌리를 갖는 종을 포함해 21종 1변종 5품종이 자생한다.
현호색의 꽃말은 '보물주머니, 비밀'인데 꽃잎의 기부에 꿀주머니인 거(距)가 있기 때문에 유래가 되었다. 여러해살이 풀인 현호색은 산과 들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키 20cm 정도 자란다. 뿌리에는 지름 1cm 정도 되는 덩이줄기가 달려있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며 깃털처럼 갈라진다. 꽃은 연한 홍자색이고 줄기와 가지 끝에 5~10송이씩 모여 달린다. 열매는 삭과이고 긴 타원형이며 6~7월에 여문다. 덩이줄기는 강력한 진통작용을 하는 푸마린(fumarine) 코리달린(corydaline)이 함유되어 있어 정혈제, 진통제, 진경제로 사용된다.
△2109.3.17 대암산 자락의 제비꽃
그리고 수줍게 고개를 내민 제비꽃을 만났다. 제비가 날아올 때쯤 핀다고 해서 이름을 얻은 제비꽃은 일명 오랑캐꽃이라고도 한다. 제비꽃이 피는 이시기는 먹을거리가 없는 잔인한 계절이다 보니 생명 연장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동원 되는 때이다. 딱 이 시기가 제비꽃이 피는 시기이다. 제비꽃이 피는 이때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 얼었던 눈이 녹아 길이 열린다. 길이 열리면서 북쪽의 오랑캐는 먹을 것을 찾아서 한반도로 내려와 약탈을 일삼았다. 보리흉년(보리숭년)의 절정기인 4월은 많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지만 육지에 사는 모든 동물들에게는 고통의 나날이고 살아남기 위해 동종(同種)도 잡아먹어야 하는 험악한 세상이다. 중국집 입구에 걸려있는 간판에 붉은 천을 두른 이유가 ‘우리 집은 인(人)고기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비꽃의 이름은 다양하게 불리는데, 근근채, 반지꽃, 병아리꽃, 씨름꽃, 오랑캐꽃, 외나물꽃, 자화지정, 장수꽃 등 이며, 꽃말은 성실, 교양, 품위 있는 가인, 나를 생각해 다오, 소박함, 순진무구한 사랑이다.
너무나 작은 웅덩이에서 발견한 도롱뇽 알
어느 듯 숲속나들이길 산행의 마무리 부분쯤에 다다랐을 때 물이 고여 있는 작은 구멍에 도롱뇽이 알을 낳아 두었다. 언제 이 물이 말라 버릴지도 모를 곳이라 여기까지 찾아와 알을 낳은 도롱뇽이 자연의 이치를 따라 행한 지혜인지 아니면 무모한 도전인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
옛날부터 농부들은 도롱뇽이 낳은 알을 어떻게 놓아두느냐를 보고 한 해 장마와 가뭄을 예측하는 측도로 삼았다. 도롱뇽은 장마가 예상될 경우에는 알을 돌에 붙여 낳고, 가뭄이 드는 경우에는 알을 그냥 물속에 낳기 때문에, 알이 놓여 진 상태를 보고 이를 농사에 이용했다.
도롱뇽은 야행성 양서류로 우리나라와 중국에 분포하며 크기는 약 7~12cm이고, 잡식성이며 멸종할 가능성이 높은 동물이다. 주로 산림지대의 계곡, 하천, 습지 등지의 돌, 낙엽, 고목 아래에서 발견된다.
척추동물(vertebrate), 양서강(Amphibian), 도롱뇽목(Urodela), 도롱뇽과(Hynobiidae), 도롱뇽속(Hynobius), 도롱뇽의 학명은 Hynobius leechii Boulenger 이다.
2109.3.17 술속나들이길 종착지인 불모산UN도로와 만나는 이정표가 보인다.
불모산UN도로 약수터에 마련된 평상에서 숲속나들이길 산행을 마무리하며 가져간 음료를 함께 나눈다.
불모산UN도로변에 위치한 『창원 불모산동 농바위』앞에서 농바위의 내용을 설명하는 안희상(29회) "농바위에 새긴 장문의 한자 기록물은 이곳 산에 묘지를 쓴 사람들의 이름과 묘지가 있는 위치를 기록한 것이다."
불모산UN도로변에 경사면에는 산자고(山慈姑)가 꽃을 피워 봄마중을 하고 있다.
삼정자동 마애불
이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삼정자동 장군바위』로 널리 알려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이다. 커다란 자연암반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불상은 받침대 위에 양발을 교차하여 좌선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머리쪽과 몸체에 따라 광배를 갖추고 있으나 장식은 없다. 머리에는 살투가 남아 있고 얼굴은 심하게 훼손되어 전체 모습을 알기 어려우나 남아 있는 왼쪽으로 짐작컨대 풍만하고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은 부처가 악마를 누르고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을 형상화한 항마촉진인(降魔觸地印)이다. 이 손모양은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은 형태의 가부좌를 튼 불상에서만 볼 수 있다. 어깨는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고 U자 모양이 세 겹으로 겹쳐서 흘러내린 옷자락이 마모가 심한 상태로 받침까지 펼쳐 있다. 파도문양을 새긴 받침대는 8각형의 형태를 띠고 가운데 받침대는 3개의 기둥을 표현함으로써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삼정자동 마애불의 높이는 140㎝이고, 너비는 100㎝이다.
이 장군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이 삼정자동 장군바위전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 인근의 토박이 어르신들은 모두 이 전설을 알고 계신다. 옛날부터 이 마애불상을 장군바위라고 부르지만 이 고을 사람들은 “아들바위”라고 부른다.
왜구들의 노략질은 오래된 일이며 한반도의 해안 특히 진해와 마산은 항상 전쟁터 같은 곳으로 바다를 건너온 왜구들로 인해 피해가 항상 있었다. 이 고을 어느 가난한 농가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지만 누구도 돌봐주지 않아 아기를 순산한 산모는 아기의 탯줄을 잘을 것을 구하지 못해 억새 잎으로 잘랐다고 한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10살이 되자 어머니를 졸라 콩 한 되와 좁쌀 한 되를 얻어 가지고 “어머니 저는 이제 나라를 구하러 길을 떠납니다. 제가 떠난 뒤에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저가 태어날 때 억새 잎으로 탯줄을 끊은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당부를 하고는 홀연히 집을 떠나 이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조선 땅 창원 고을에 대장군이 될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왜구들은 “장군바위”를 알게 되었고 바위를 파괴하려고 하였지만 바위는 어떤 방법으로도 파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중 이 아이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급기야 그 어머니에게 아이가 태어날 때 탯줄을 무엇으로 끊었는지를 파고 물었다. 어머니는 온갖 핑게를 대며 바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왜구들의 온갖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실토를 하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왜구의 장수들은 단숨에 장군바위로 달려가 억새 잎으로 아들바위를 내려쳤다. 그러자 바위는 순식간에 두 쪽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바위 속 세상에는 콩과 좁쌀을 가져간 아이는 대장군의 모습을 거의 갖추었고 콩과 좁쌀은 장수와 병졸이 되어 곧 출전을 하려든 순간이었다. 이를 본 왜장은 칼을 휘둘러 대장군의 목을 베었다. 대장군이 죽자 콩과 좁쌀로 된 장수와 병졸들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 피가 바위에 물들어 인근의 바위는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삼정자동과 불모산 일대의 돌에는 철분이 많아 산화되면서 붉은 색의 물이 흐른다.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지금도 간간히 여인들이 치성을 드리며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장군바위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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