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탄금대』는 2008년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으며 해발 108m의 야트막한 대문산大門山에 위치하며 달천達川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탄금대彈琴臺는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며 임진왜란 때팔도도순변사八道都巡邊使 신립申砬(1546~1592)이 이곳에서 배수의 진을 친 곳이다.
우륵于勒은 가야국이 어려워지자 제자 이문泥文과 함께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는 조국을 배신한 가락(음악)의 천재이다. 그와 함께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라는 멍청한 장군 하나 때문에 이곳 탄금대는 패망敗亡의 땅이 되었다. 탄금대는 조선군 8천의 병사가 왜구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 싸웠으나 모두 전사하게 되었는데 조령을 택하지 않고 이곳에 배수진을 친 것은 이미 결과가 예견되는 전투지임을 보게 된다.
이곳 대문산大門山의 정상부에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이 있고. 탄금정彈琴亭 인근에는 고대 토성의 흔적이 있으며, 신립申砬이 활을 12번이나 식혔다는 12대 바위를 볼 수 있다. 12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풍경은 과거의 암울한 역사와 상관없이 일품이다.
탄금정을 가기 직전 ‘탄금대기彈琴臺記’를 기록한 비碑가 있는데 비문의 요약을 한 비갈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 비석은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183cm, 폭은 66cm, 두께는 34cm인 화강석으로 1854년에 세웠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이다. 또한 땅이 기름지고 교통의 중신지 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부터 세 나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세력을 다투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신라의 특수 행정구역이었던 오소경 중 하나인 중원소경이 설치되는 등 이처럼 충주는 예부터 중용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충주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으로 뛰어난 음악가 우륵, 대문장가 강수[昔强首], 명필 김생 등이 배출되어 이 고장의 문화 예술을 꽃피웠으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 탄금대 전투 때 활약했던 신립, 병자호란 때 활약했던 임경업 등이 배출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이 같은 과겅,; 영예로움을 이어 받아 문화의 원천이 되고 인재가 모이는 고장이 되려면 지역 주민들의 끊인없는 노력과 올바른 전통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석의 글은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쓴 것이다.」
탄금정彈琴亭에는 예전에 제법 많은 시문을 적은 편액이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탄금정彈琴亭’ 현판만 걸려 있다.
탄금정彈琴亭 아래 12대로 내려오다 보면 ‘신립장군순국지지申砬將軍殉國之址’라는 비갈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와 같다. 「宣祖二十五年(一五九二年) 四月 二十八日 八道都巡邊使 申砬將軍이 從事官 金汝沕과 더불어 鳥銃砲火의 數十萬 倭賊을 槍劍弓矢의 八千軍士로 맞아 싸우다가 戰勢不利하자 金公과 함께 敵陣에 突入하여 數十賊을 擊殺한 뒤 彈琴臺 이곳 열두대에서 享年 四十七를 一期로 哀惜하게 爲國殉節하시다.」
‘12대 바위’라는 곳을 보면 금강과 남한강이라는 위치만 다를 뿐 부여 부소산의 낙화암을 연상케 하는데 이 두 곳의 공통점은 패전하여 강물에 많은 사람이 투신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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