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광복 74주년에 찾은 창원읍민 만인운동비

천부인권 2019. 8. 15. 19:45



2019.8.15. 광복 74주년에 찾아 본 창원읍민 만인운동비


창원향교 망분향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창원읍민 만인운동비』가 위치한 「두럭어린이공원」이 있는 의창구 소답동 123-13번지에 갔다. 두럭어린이공원 한 모퉁이에 위치한 『창원읍민 만인운동비』와 안내표지판은 비를 맞으며 찾는 이 없는 공원에 그렇게 서있었다.
이 비는 1985년 1월 1일 3·1독립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창원시장(곽만섭)의 이름으로 세운 비이다.





창원읍민 만인운동비 안내판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는 가운데 창원지역 주민인 김태순과 박화열 등은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창원장날을 기해 당일 2시 20분경 시장 한 가운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치자 시장에 모인 6,000~7,000여 명의 사람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가 고조되어 가자 일본헌병·경찰이 진압에 나서 30여명이 검거 되었다. 이후 4월 2일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운동이 다시 일어나자 주재소 헌병과 마산헌병분견소 헌병들은 무력으로 진압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3·1독립기념비문
민족의 횃불은 마침내 활활 타올랐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터저 나온 우렁찬 만세의 함성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이곳 천주산 기슭 유서 깊은 창원읍에도 진동했다. 자유는 강산의 어둡 속에서 눈을 떴고 독립은 계례의 가슴속에 별처럼 빛났다. 때는 기미년 3월 23일과 4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장날에 모인 수천 명의 애국동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가혹한 옥고를 치루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싸웠다.
이제 조국은 님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광복을 맞은 지 어언 40여 성상 영광된 선진조국창조를 위한 힘찬 고동이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는 님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계례사랑의 높푸른 정신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온 시민의 뜻을 모아 여기 이비를 세운다.
1985년 10월 일
창원시장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