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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지역 독립만세의거와 팔의사묘 및 묘비

천부인권 2019. 9. 12. 07:46



2019.8.26. 팔의사 묘비 및 묘 전경


우리나라 4대 삼일독립운동의 하나로 꼽는 삼진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의 성역 장소인 진전면 양촌리 198번지를 가면 입구 좌측에 세운 「삼일독립만세 순국팔의사묘역(三一獨立萬歲 殉國八義士墓域)」비를 만나고, 묘역으로 오르는 정면에는 성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삼진독립의거기념비(三鎭獨立義擧記念碑)」비를 보게 된다. 곧장 묘역을 향하면 묘역의 아래에서 정면에서 「지사석당변상태선생기적비(志士石塘卞相泰先生紀蹟碑)」비를 만난다.
변상태 지사 기적비를 뒤로 하면 「삼진지방의 삼일독립운동 개요」비를 만나게 되는데 비의 뒷면은 삼진의 만세의거 당시 순국하신 분, 형을 받으신 분, 부상을 당하신 분들과 고현의 독립만세의거 때 형을 받으신 분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묘역이 위치한 계단을 오르면 꽤 넓은 공간의 좌우에 사자상과 망주석(望柱石)을 세웠고 정면에 제단과 「팔의사지묘(八義士之墓)」비를 대면한다. 비의 뒤쪽으로 8의사 묘지가 마련되어 있다. 팔의사묘비 앞에 잠시 묵념하고 비문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다.





팔의사지묘(八義士之墓) 비문 내용
1919년 3월 1일 중앙에서 울려퍼진 독립만세의 우렁찬 함성은 요원의 불꽃처럼 전국으로 퍼져 삼천리 방방곡곡에 메아리쳤다.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이를 막론하고 오직 조국독립을 위하여 구름처럼 일어나 시위 행열에 뛰어들어 침략자 일본군대의 총칼 앞에 아무 두려움 없이 앞을 다투어 몸을 내어던져 이 땅을 애국의 선혈로 물들였으니 아아! 뉘라서 우리 계례에게 용기가 없다고 하였던가! 여기 김수동, 변상복, 김호현, 김영환, 변갑선, 이기봉, 고묘주, 홍두익의 여덟 분이 잠들어 계신다. 이 분들은 기미년 4월 3일 만세의거 때 수천 명 시위군중에 앞장서서 일본 헌병과 부딪쳐 맨주먹으로 맞서 싸우다가 그들의 총탄에 의롭게 숨지니 지금 진북교 옆 창의탑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다. 그때 그분들이 흘리신 고귀한 피는 오늘날 우리들의 가슴속에 선연히 되살아나 고동치고 있다. 이는 우리들만의 자랑이어서는 아니 된다. 후세에 길이 전하여 이 의로움을 영원토록 기려야 하겠다. 이에 의창군민이 모두 한마을이 되어 여덟 분이 순국하신지 예순 두해를 맞이하여 그분들의 묘소를 한자리에 모셔 정화하고 장열히ㅣ 산화하신 그분들의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 이 비를 세운다. 뉘라서 자기의 목숨이 아깝지 않는 이 있으랴! 그러나 우리는 나라가 있고 내가 있다는 엄연한 진리를 이 여덟 분의 흘리신 피에서 배워야 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저마다 이분들의 무덤 앞에 경건히 옷깃을 여미고 머리 숙여 그들의 의로움과 조국의 참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지어다.
서기 1981년 4월 3일 팔의사 묘역정화사업추진위원회




의사남양홍공휘두익지묘(義士南陽洪公諱斗益之墓)


팔의사의 묘의 상석 앞에는 이처럼 묘지명을 정했다.



의사성주리공휘기봉지묘(義士星州李公諱基鳳之墓)



의사장흥고공휘묘주지묘(義士長興高公諱昴主之墓)



의사초계변공휘갑섭지묘(義士草溪卞公諱甲燮之墓)



의사안동김공휘수동지묘(義士安東金公諱守東之墓)



 의사초계변공휘상복지묘(義士草溪卞公諱相福之墓)



의사광산김공휘호현지묘(義士光山金公諱浩鉉之墓)



의사안동김공휘영환지묘(義士安東金公諱永煥之墓)



팔의사 묘비를 뒤에서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