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북면 금산리 전주이씨 서강재 西岡齋

천부인권 2019. 12. 27. 00:00



2019.12.21. 진북면 금산리 서강재(西岡齋) 전경


이목리(梨木里)의 전주이씨 재실의 사진을 대충 찍고 다음 마을인 금산리(錦山里)를 지나다 도로 좌측에 있는 합포구 진북면 금산리 118-1번지에 있는 서강재(西岡齋)를 봤다. 현대식 콘크리트 벽돌집인 전주이씨 서강재(西岡齋)를 들어서니 주인 내외가 나왔다. 재실을 구경하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더니 이목리(梨木里)의 전주이씨 재실들을 다 보고 오는지 물어서 대문이 잠겨 원천서원(源川書院)은 보지 못했다하니 열쇠를 가지고 있다며 방문을 할 것인지 물어와 다시 원천서원으로 되돌아가서 원천서원의 내부를 보게 됐다.
이곳 서강재(西岡齋)는 내부에 기문(記文)만 있고 다른 편액들이 없어 아래에 기문을 옮겨 둔다.




서강재(西岡齋) 편액




西岡齋實記
西岡齋在於舊鎭海縣治 東西北十里許 秀而機山之西之案 而在於狗乳峙 下麓錦山里田壹壹八番地築 而寓慕表願爲云爾 西岡公我太祖大王弟二男 孝寧大君諱補傳至於十五代孫也 曾祖諱漢橒梅田公 祖諱震泰廣州公 考諱世甲副護軍號尺山公 妣純興安氏重后女 公之伯兄梨村公 贈童蒙敎官 公序居二塋域 則機山之西脈下麓 富山里山三番地 金尺洞內燈良座之原 而公之諱國城字健直號曰西岡也 配淸州韓氏德秀女 墓域咸安郡餘杭面平岩 現馬山市鎭田面平岩里 乙美川靑龍嶝丁座之原 而扁揚所居之室曰西岡 盖取諸機山之西之義也 航之鎭兮山明水長 西而鷲峰昇天 南而夜半山陰護 案則人皇峰有爲群臨豈不美哉 山川之固有西岡之室 以爲保全百世其祥也 公之沒而今爲二百年 惟有霜露之節 塋城之間 歲一薦祭禮當報本 則今世變 以諸宗相與曰奉先之道 齋築追慕可善矣 一以貫之爲稱 爲計然而宗財貧窶 以爲分際子孫數減免 幼童弱冠負於小額 老壯負於巨額 又英善者 有誠金然未 及宗土賣却僅僅築也 齋經始於甲戌秋 訖乙亥秋 不肖宗族旣幹其役其嗣葺 而永圖無窮者 以俟後人 賢勞焉
西紀一九九五年 乙亥 秋
五代孫 秀烈 謹識


서강재실기(西岡齋實記)
서강재(西岡齋)가 있는 곳은 옛 진해현의 북쪽이요 현 진동 서북 10리쯤이다. 빼어난 베틀산(機山;445m)의 서쪽이요 앞에는 구유(狗乳)등성이 아래 자락 금산리(錦山里) 전(田) 118번지에 지어져 추모함을 나타내고 있다. 서강공(西岡公)은 우리 태조왕의 둘째아들 효령대군 휘 보(補)의 15대손이다. 증조의 휘는 한운(漢橒)인데 매전공(梅田公)이요 조(祖)의 휘는 진태(震泰)인데 광주공(廣州公)이요 고조(高祖)의 휘는 세갑(世甲)으로 부호군(副護軍)이며 호는 척산공(尺山公)이다. 공의 비(妣)는 순흥안씨 중후(重后)의 따님이다. 공(公)의 백형은 이촌공(梨村公)인데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이요 묘는 고비(考妣)의 두 묘역에 차례로 있으니 즉 베틀산의 서쪽 맥 밑자락 부산리(富山里) 산3번지이다. 금척동(金尺洞) 내등간좌의 언덕이다. 공의 휘는 국성(國城) 자는 건직(健直) 호는 서강(西岡)이다. 배우자는 청주한씨 덕수(德秀)의 여식(女息)이다. 묘역은 함안군 여항면 평암(平岩)인데 현재 마산시 진전면 평암리 을미천(乙美川) 청룡등 정좌(丁座) 언덕인데 평소에 살고 있던 집에 서강(西岡)이라 현판을 걸은 것은 대개 모두가 베틀산 서쪽의 의(義)이다. 진산 여항산은 화려하고 골짝 물은 길었고 서쪽에 취봉(鷲峰)이 하늘에 솟았고 남쪽엔 야반산(夜半山)의 그늘이 호위하고 앞에는 인황산(人皇峰)이 군림하였으니 어찌 아름답다 아니하랴. 산천(山川)이 서강의 실(室)을 보전하고 있으니 백세토록 상스럽네. 공께서 세상 떠 난지 지금 200년이 되었다. 오직 상로절(霜露節)에 묘역간에서 해마다 한번 제례를 올림은 마땅히 근본을 갚음인즉 지금 세상은 변하여 모든 종중들이 서로 같이 하는 말이 선조를 받드는 방법은 재실을 지어 추모함이 옳은 일이다라고 일관되게 일컫고 있어 계획하기를 종중재산이 가난하고 초췌하여 자손수에 감면의 한도를 하고 젊은 사람에게는 적은 액수를 부담시켰고 노장(老壯)은 거액을 부담시켰고 또 영선자(英善者)는 성금을 내어도 모자라 종토(宗土)를 매각하여 근근(僅僅)히 지었다. 재실 공사를 처음 시작함은 갑술년 가을이요 준공함은 을해년 가을이었다. 나와 종족들이 그 일을 주관하였고 그 재실을 수리 보수를 계승하기를 길이 도모하여 무궁하기를 후인들의 현노(賢勞)를 기다리 노라.
1995년 을해 가을
5대손 수열(秀烈) 삼가 지음.





출처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