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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명륜당에 걸린 어제태학은배시 御製太學恩杯詩

천부인권 2020. 6. 18. 13:47

2020.6.17. 성균관 명륜당 모습


조선의 국운과 함께 그 생명력은 잃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옛 기억의 저편을 아련히 전하는 명륜당明倫堂은 우리나라의 슬픈 사연인 듯 꿈과 미래를 내려놓고 건물만 지금에 전한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성균관 대학이 있기는 하지만 그 맥을 전했다 말하기 힘들다.
옛날 시골의 선비가 이곳에 들어가려면 지금의 서울대학보다 힘들었고 소위 난다긴다하는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했던 치열한 출세의 전쟁터였고 단지 입학을 했다는 것으로도 벼슬이 주어진 성균관의 위용은 찾을 길 없다.
빛바랜 명륜당의 편액 뒤 대들보에 걸려 있는 가장 크기가 큰 편액은 『어제태학은배시御製太學恩杯詩』 편액인데 몇 번의 방문에도 그 전문을 옮기고 해문을 전달할 생각 조차 못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하나씩 성균成均館 전체의 건물에 대해 아는것 만큼 기록하려고 한다.

 

명륜당明倫堂 편액과 대청 모습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어제시는 4언으로 주역(周易)괘를 통하여 은배를 내린 뜻을 적고 있다. 성균관대사성 이만수가 쓴 「총서」는 정조가 성균관 태학생의 시를 고시한 기록을 1776년부터 적고 있는데, 전대왕의 어떠한 고사를 따른 것인지를 밝혔다.
이는 정조 당대 태학생이 치른 시험의 양상을 알게 하는 좋은 자료이다. 이어 성균관사(成均館事) 홍양호(洪良浩)의 서, 이만수의 「은배명(銀杯銘)」, 태학유생을 대표하여 심응규(沈應奎)가 쓴 「태학생전문(太學生箋文)」이 실려 있다. 권말에 이만수의 발문이 붙어 있다.
『태학은배시집』의 권1에 장지헌(張志憲) 등 67명, 권2에 홍만영(洪萬榮) 등 57명, 권3에 홍인영(洪仁榮) 등 67명, 권4에 안광집(安光集) 등 58명, 총 249명의 태학생의 시가 실려 있다.
권5에는 검교제학(檢校提學) 정민시(鄭民始) 등 초계문신 33인의 시가 실려 있다. 여기에 실려 있는 시는 오언·칠언의 고·근체시이다. 부체(賦體)로 정조가 은배를 내린 의의를 적고 임금의 축수를 비는 것이 대부분이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도서에 있다.

 

대들보에 걸린 어제태학은배시御製太學恩杯詩 편액

御製太學恩杯詩-幷序解
太學者賢士之所關。而士者國之元氣也。學以養士。士以共國。國以重學。學則三代一也。猗我列朝。聖繼神承。式至今衛道重敎。敦本出治之原。深仁厚澤。培植作成之效。太和敷於上。美俗溢於下。薰蒸透徹。融液周徧。席而賓。豆而燕。撞金而考石。總干而獻羽。揖讓絃誦之風。庶幾乎媲虞夏而邁漢宋矣。蓋先王之政。布在方策。爲萬世子孫之章程。苟使後之人。持循而神明之。擧一世冠章甫衣縫掖。皆能劬經而澡行。出而爲王朝之矜式。處而爲儒林之準繩。則其於爲國也。大猷時升。法不待簾陛而嚴。文不待綺繡而章。民不待歌舞而驩。兵不待蒐獮而行。禮樂不待百年而興。故曰堯舜與人同也。今之學。猶古之學也。今之士。猶古之士也。夫豈有古今之殊。然而尙論者。具言士之處己也。今不如古士之爲學也。今不如古。爲士於今之世。不亦難乎。惜乎其言之哆也。言之者。亦今之士也。雖挾書應擧。與諸生相馳逐。吾不知其取雋者爲誰也。安用訾謷爲哉。况予居君師之位。行君師之道。不能如羲農黃帝堯舜之聖。而徒責乎士也不古。則不其異於善則稱人。過則歸己者歟。予於機務之暇。課試太學生。躬考其券。手書其等。蓋亦寓待士以禮之意。而或賜及第。或付初試。或予以內府書籍楮毫。而歲一筮仕。用太學故事也。是歲之臘。又合試孟仲朔講及觀旂橋迎鑾諸生表賦。各取五人。較藝於講製文臣應試之日。而宣以餐。與之酒。仍出御廚銀杯以諭之曰。爾諸生。知杯心之鐫乎。我有嘉賓。鹿鳴之詩也。賓之在筵。亦云孔嘉。竟夕臨殿。不裘不寒。不以爲疲。竊有蘄於興動樂育之一助也。自昔我先王。遇太學生。亞於登瀛。賜賚便蕃。傳以爲盛事。卽乃祖乃父沐菁莪之恩。歌棫樸之詩。于以涵泳於壽考文明之中。以詒爾孫子耳。士之所以自重也。人之所以重之也。莫不係於朝家所以待之之如何。肆予婘婘乎斯。雖於功令文字。亦不敢或忽於誘掖奬拔之方。朝取一人焉。有緋袍而銀帶者矣。暮取一人焉。有墨綬而銅章者矣。予所業者。詩書也。造士譽髦。意豈亶然。是餐也。予授之美也。是酒也。公錫之盛也。且杯樣小而太俗。不足以備四簋而容一榼明水之尙。何必侈也。維德之將。敢多又乎。嘗記我世宗朝賜甆鍾于太學生。孝宗朝又有銀杯之賜。予今紹述。予且以爲幸。矧乎爾諸生之與有榮焉矣乎。歸而藏之學。俾游泮之士。咸得酌以嘗之。命國子長。銘詩道其事。與筵內閣諸臣曁講製文臣太學生。各賦一篇。於是諸生退而述芹宮舊章。奉箋稱謝。予旣親受。取諸生所賦覽已。又命知館事。弁其首。國子長跋其尾。付鑄字所印頒以語諸生者。書其卷。系之以箴。咨諸生。其勿以予言而自恕分寸躋攀。行百里。常若半九十里。雖欲自滿而自假得乎。不已者。業也。無窮者。德也。斯義也予得之易矣。畫之不足而定以爲爻。爻之不足而變以爲卦。卦之不足而繫以爲辭。辭之不足而衍以爲策。此箴之所以取義。而欲諸生之不已無窮也。諸生其敢不勉旃。詩曰。

道原于天。太始曰易。制器尙象。知藏翕闢。通神擬容。微言至賾。載心載圜。利用讌樂。繩以輿從。厥孚顒若。弓以路濟。式爲果育。有物有恒。風受日協。龜宅于馬。庶昭明德。積微則崇。土順維木。澤麗有斑。其文郁郁。山輔於背。磐善則俗。侯渫侯甃。聿受其福。

道之大原出於天。而宓羲氏仰觀乎天。始畫八卦。遂以爲文字義理之祖宗。闔戶爲坤。闢戶爲乾。一闔一闢。往來不窮。象而形之。謂之器。制而用之。謂之法。民咸用之。謂之神。推而行之。謂之通。見天下之至賾。而擬諸形容。故曰微言也。知往藏來。翕闢有時。同歸而殊塗。一致而百慮。通神明之德。類萬物之情。卽聖人之極工也。旣錫以銀杯。而勉以富有日新之業。寓之於器象。測之於卦爻。心者坎也。圜者乾也。坎爲水。乾爲天。水天合以爲需。而有飮食讌樂之象也。圜以象杯之形。心以象杯之衷。蓋所以利於爲用而待其需世也。繩巽也。輿坤也。在卦爲風地觀。而在下觀上而化之。故謂之從也。此謂上下相孚而後。始可以觀國而用賓也。坎體中實而有弓而受矢之象。艮體下虛而有路而分歧之象。以艮之下體。合坎之上體。則綜錯而爲坤。有乾坤相濟之義。又合以言之。則爲山下出泉之蒙。而蒙之象。果行而育德也。此謂多士之修其德行。而用副我蒙養之苦心也。及其蒙而養正。言則有物。行則有恒。君臣上下之際。油然如家人父子之親。而父父子子兄兄弟弟。能有以正其家而推之。以及於天下矣。蓋取諸巽之風離之日。而取其象於家人。以言其交受而相協也。明德之目。先乎大學而立者。卽易之晉也。龜書馬圖。爲其關鍵。以啓心學之淵源。而離龜坤馬。所以爲宅也。此謂多士講學明道。以晉用於朝廷也。積小以高。卽地中之生木。而朱子於許順之字說。嘗有敷析者。坤順而遇木。故曰土能順於木而爲升也。此謂多士修身進業以須時也。澤兌也。麗離也。斑豹也。澤與麗相資而蔚然炳然。有如隱霧之豹七日而變。至於其文郁郁如也。此謂多士切偲䂓警。以變其文體也。兼山之背。風山之磐。一爲程說之安於其止。一爲姬繫之善於其俗也。此謂多士不徇於慾。不牽於私。而至於兼善天下也。造我多士。藹然以興。若井泉之旣渫而又甃。則用汲用修。將與我國家。維億萬年。竝受其无疆之福也。井之爲卦。自九二至上六。爲需之體。而有需之象。故井爲水而需爲酒。井爲甃而需爲穴。統以觀其變而推其辭。則可以取象於杯。而有以遠則於汙尊抔飮之俗。故結之以井甃也。

 


태학은배시서(太學恩杯詩序) 시해(詩解)를 곁들이다
태학(太學)이란 어진 선비들이 있는 곳이고, 선비는 나라의 원기(元氣)이다. 학문으로 선비를 양성하고, 그 선비와 국가를 함께하고, 국가에서는 학문을 중히 여기는 것인데, 그 학문은 삼대(三代)가 다 같았다. 우리 열성조에서도 성자신손(聖子神孫)이 이어오면서 지금까지 도(道)를 지키고 교육을 중요시하여 좋은 치적이 나올 수 있는 근원을 튼튼히 하고, 깊은 사랑과 후한 은택으로 무엇인가 해낼 수 있는 소지를 배양해 왔다. 그리하여 위에는 훈훈한 화기가 감돌고 아래는 아름다운 풍속이 조성되었으며, 백성을 순화시키는 정신이 스며들어 그 영향이 전국 곳곳에 두루 퍼졌다. 현자를 손님으로 예우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치도 베풀면서 문치(文治)를 숭상하는가 하면 무예도 빼놓지 않고 익혀 읍양(揖讓)ㆍ현송(絃誦)의 기풍이 거의 우(虞)ㆍ하(夏)와 맞먹고 한(漢)ㆍ송(宋)을 앞지를 정도인 것이다.
선왕(先王)이 하신 일들이 여러 책에 실려 있어 만세를 두고 자손들의 규범이 되고 있으므로, 뒷사람들이 참으로 그것을 따르고 신명시하여 장보(章甫)를 쓰고 봉액(縫掖)을 입은 모든 선비들이 다 학문에 힘쓰고 품행을 깨끗이 하여 세상에 나오면 왕조(王朝)의 존경 대상이 되고, 들어앉아서는 유림(儒林)의 표적과 기준이 된다면 국가적으로는 그것이 큰 디딤돌이 되어 굳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법은 엄해질 것이요, 비단결같이 꾸미지 않아도 문장은 유려할 것이며, 노래와 춤이 아니고도 백성들은 즐길 것이고, 사냥 연습이 아니고도 병력은 강해질 것이며, 꼭 1백 년이 안 되어도 예악(禮樂)은 흥성할 것이다. 그래서 요순(堯舜)도 일반 사람과 같다고 한 것이고, 학문도 지금 것이나 옛것이나 같다는 것이고, 선비도 옛 선비나 지금 선비나 같다고 한 것이니, 거기에 무슨 고금의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말하는 자들은 다, 선비들 처신하는 것이 지금이 예만 못하고, 학문도 지금 선비들은 예만 못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 선비 노릇 하기가 그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많은 이들이 지껄이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껄이는 자 역시 지금의 선비가 아닌가. 비록 책을 끼고 제생(諸生)과 함께 힘을 겨루면서 과거(科擧) 시험에 응한다 해도 그중에서 누가 우수한 성적을 받을지 모르는 일인데, 어찌 서로 헐뜯기만 한단 말인가. 더구나 군사(君師)의 지위에 있는 나로서 임금과 스승 노릇은 복희, 신농, 황제, 요, 순처럼 못하면서 선비들만 예스럽지 못하다고 책한다면, 그야말로 착한 것은 남에게로 돌리고 잘못은 자기 탓으로 치는 것과는 딴판이 아니겠는가.
내가 기무(機務)를 보는 여가에 태학생(太學生)들에게 정기 시험을 보이면서 내가 직접 그 시권(試券)을 고시하고 등수도 내가 직접 매기는 것은 선비를 예로 대우하자는 뜻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혹은 급제(及第) 혹은 초시(初試)를 주고, 또 혹은 내부(內府)의 서적이나 종이, 붓 등도 주면서 한 해에 한 번씩 벼슬에 응하도록 한 것도 옛날 태학에서 하던 대로 해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해 섣달이면 또 맹(孟)ㆍ중(仲) 두 달의 삭강(朔講)이나 관기교(觀旂橋) 영란(迎鑾) 등에 대한 제생의 표(表)나 부(賦)를 통합 평가하여 각각 5명씩 선발한 다음 강제 문신(講製文臣)들이 응시하는 날 함께 재주를 겨루게 하고 있다. 그들에게 먹을 것과 술을 내리며 이어 어주(御廚)의 은 술잔을 내어 주며 유시하기를,

“제생은 술잔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을 아는가? 아유가빈(我有嘉賓)은 녹명편(鹿鳴篇)의 시이다. 빈객과 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밤새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갖옷 없이도 추위를 느끼지 않으며 또 피곤도 느끼지 않는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재를 육성하는 데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인 것이다.
예부터 우리 선대왕들께서는 태학생(太學生) 대우를 등영주(登瀛洲)에 버금가게 하시면서 사뢰(賜賚)도 빈번히 하여 매우 자랑스러운 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대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청아(菁莪)의 은혜에 흠뻑 젖고, 역복(棫樸)의 시를 노래하며 수고(壽考)와 문명(文明) 속에서 무자맥질을 하고, 그 경사스러움을 아들 손자인 그대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선비로서 자신을 아끼는 것과 남들이 아껴 주는 것 모두가 국가에서 그들에 대한 대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그 점을 유의하여 비록 그것이 과거 시험에 관한 것일지라도 추켜 주고 장려하는 방도를 소홀히 하지 않아 아침에 한 사람 뽑으면 붉은색 도포에 은대(銀帶)를 띠는 자가 있고, 저녁에 한 사람 발탁하면 검정 인끈에 동장(銅章)을 차는 자도 있었다.
우리의 과업은 시서(詩書)이다. 선비를 만들고 뛰어난 인물을 장려하는 것이 왜 괜히 하는 일이겠는가. 그 음식은 내가 내린 것이며, 그 술은 나라에서 준 것이다. 그 술잔은 모양이 작고 보잘것없어 사궤(四簋) 축에는 못 들어갈지라도 정화수 한 잔 들어갈 용량이면 됐지 꼭 좋아서 뭘 하며, 술은 덕으로 마시는 것인데 많은 용량이 또 뭐가 필요할 것인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우리 세종조(世宗朝)에서는 태학생들에게 사기 술잔을 하사하셨고, 효종조(孝宗朝)에서는 또 은 술잔을 내리셨다. 내가 지금 그 일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을 나로서는 다행으로 생각한다. 거기에다 더구나 제생까지도 그 영광을 함께함에랴. 돌아가서 태학에 간직해 두고 반궁(泮宮)에서 노는 선비들이면 누구나 거기에 술을 담아 맛볼 수 있게 하라.”하고, 국자장(國子長)에게 그 내용을 담은 시를 쓰게 하였다. 이어 연신(筵臣)과 내각(內閣)의 신하들 및 강제(講製)에 임하는 문신(文臣)들, 태학생들까지 모두 각기 시 한 편씩을 쓰게 하였다. 이에 제생이 물러가서 근궁(芹宮 문묘(文廟))의 노래를 지어 전(箋)을 올려 감사의 뜻을 표해 왔기에 내가 직접 받아 제생의 작품을 하나하나 다 보았다. 그리고 나서 지관사(知館事)는 서문을 쓰고, 국자장은 발문을 써서 인쇄에 부쳐 반포하도록 하고는 내가 제생에게 말했던 것을 책머리에 또 얹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어 잠(箴)을 붙였다.
아, 제생아. 그대들은 나의 이 말로 하여 느슨하게 생각하지들 말고 한 치 한 푼이라도 오르고 또 올라 마치 1백 리 길을 가는 사람이 항상 90리를 절반쯤으로 생각하듯이 하라. 그리하면 비록 자만하고 싶어도 자만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계속해야 할 것이 학업이고 무궁무진한 것이 덕이다. 그 이치를 나는 《주역(周易)》을 보고 깨달았다. 한 획(畫)으로는 부족하여 효(爻)를 만들고, 효로도 부족해서 괘(卦)를 만들고, 괘 가지고도 부족해서 사(辭)를 붙이고, 사로도 부족하여 책(策)으로 꾸며 놓았듯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뜻을 취하여 제생도 그렇게 계속 노력하고 무궁한 발전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제생이여, 감히 노력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이어 다음과 같이 시(詩)를 쓴다.

道原于天 도의 뿌리는 하늘이요
太始曰易 맨 처음 시작은 역이었다
制器尙象 기를 만들고 상을 표출하여
知藏翕闢 가고 오고 닫히며 열리는 이치를 밝혔다
通神擬容 통하고 신하며 깊은 이치를 형상화하였으니
微言至賾 그 은미한 말 깊은 뜻이 어떠하랴
載心載圜 그 심과 그 환이
利用讌樂 음식이요 잔치라네
繩以輿從 승과 여가 결합되어야
厥孚顒若 서로 미쁘고 엄정해지네
弓以路濟 궁과 노가 어울리면
式爲果育 과감해지고 덕을 기르리
有物有恒 사물이 있으면 항상된 법칙이 있어
風受日協 바람이 햇빛을 받아 집안이 화합하고
龜宅于馬 귀와 마를 기준으로
庶昭明德 명덕을 밝힐 수 있다네
積微則崇 작은 것도 쌓이면 높아지는 법
土順維木 땅이 나무를 자라게 하네
澤麗有斑 택과 여는 문채를 이루어
其文郁郁 그 무늬가 너무 아름답다네
山輔於背 산처럼 제자리를 잘 지키면서
磐善則俗 반석처럼 풍속을 선도한다네
侯渫侯甃 우물을 쳐내고 벽돌담을 쌓으면
聿受其福 두고두고 그 혜택 받으리라

도(道)의 큰 덩치는 원래 하늘이다. 복희씨(伏羲氏)가 하늘을 관찰하고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그었는데, 그것이 드디어 문자(文字)와 의리(義理)의 조종(祖宗)이 되었던 것이다. 문을 닫으면 곤(坤)이 되고, 문을 열면 건(乾)이 되어 한 번 닫히고 한 번 열리는 것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를 본떠 각 형상을 이루는 것을 기(器)라고 하고, 만들어서 그대로 쓰는 것을 법(法)이라고 하며, 백성들이 다 그것을 이용하기에 신(神)이라고 하고, 이를 미루어 모든 곳에 적용하기에 통(通)이라고 했다. 그리고 천하에서 제일 깊은 이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형상화했기 때문에 미언(微言)이라고 한 것이다.
과거를 알고 미래를 기대하며,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면서 길은 달라도 귀결점은 같고,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하여 백 번 생각한다. 그리하여 신명(神明)의 덕을 통하고 만물(萬物)을 유형대로 그 실제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성인(聖人)의 최고 사업이자 목표인 것이다. 그리하여 은 술잔을 내려 권면하여 많은 학업을 쌓고 나날이 발전하라는 뜻을 기(器)와 상(象)에 부치고 괘(卦)와 효(爻)로 풀이해 보기로 한 것이다.
심(心)은 감(坎)을 말하고, 환(圜)은 건(乾)을 말한다. 감은 물이요 건은 하늘인데, 수천(水天)이 합하면 수괘[需]가 되므로 그 기상이 음식과 잔치가 되며, 또 환은 그 술잔의 모양을 상징하고, 심은 그 술잔의 속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으로 그 뜻은 그 기물을 잘 이용하면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라는 것이다. 승(繩)은 손(巽)이고, 여(輿)는 곤(坤)인데, 그것을 괘(卦)로 표시하면 풍지관(風地觀)이 되므로 아래에 있으면서 위를 잘 보아 그대로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從)이라고 했는데, 그 뜻은 위아래의 신의가 서로 두터워야만 비로소 국가에 등용되어 예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감(坎)의 생김새는 속이 차서 활에 화살을 메우는 형상이고, 간(艮)의 생김새는 하체가 비어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 꼴이며, 간의 하체와 감의 상체를 합치면 곤(坤)으로 변하는데 건곤(乾坤)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뜻이 있다. 또 그것을 통합해 보면 산 밑에서 샘물이 솟는 몽괘[蒙]가 되는데, 몽괘는 행동을 과감히 하고 덕을 기르는 것을 상징하므로 그 뜻은 모든 학사들이 덕행(德行)을 잘 닦아 몽양(蒙養)을 위해 애쓰는 나의 심정에 부응하도록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정직한 인물이 되면 말과 행실이 법도가 있게 되고, 군신(君臣) 상하(上下)의 사이가 마치 한집안의 부자(父子)간처럼 간격이 없을 것이며, 아울러 아버지, 아들, 형, 아우가 제각기 자기 구실을 다하여 모든 가정이 올바로 나아가고 그 여파가 온 천하에 두루 미칠 것이다.
손(巽)은 바람이고 이(離)는 태양인데, 그것을 합치면 가인괘[家人]가 되므로 그 형상을 취하여 서로 주고받고 협력하라는 뜻이다. 명덕(明德)에 관해서는 《대학(大學)》보다 먼저 그 뜻이 정립되어 있는 곳이 바로 《주역(周易)》의 진괘[晉]인데, 낙귀(洛龜)의 서(書)와 하마(河馬)의 도(圖)가 관건이 되어 심학(心學)의 연원(淵源)을 이루고 있으므로, 거북은 이(離)이고 말은 곤(坤)으로서 그것이 택(宅)이 된 것이다. 이는 모든 학사들이 학문을 강론하고 도(道)를 밝힘으로써 조정에 진출하라는 뜻이다. 작은 것이 쌓여 높아지는 것이 바로 땅속에서 나무가 돋아나는 것으로, 주자(朱子)가 일찍이 허순지(許順之) 자설(字說)을 쓰면서 그 말을 이용한 적이 있거니와, 온순한 곤(坤)으로서 나무를 만났기 때문에 흙이 나무의 뜻을 받아 주어 그렇게 커 오르게 만든 것이니, 이는 모든 학사들이 자기 수양과 학업에 열중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택(澤)은 태(兌)이고 여(麗)는 이(離)이며 무늬는 표범을 말한 것이다. 택과 여가 서로 힘을 합치면 안개 속에 숨어 있는 표범처럼 무늬가 아롱아롱 빛나고, 그로부터 7일이 지나면 더욱 변하여 무늬가 찬란하게 빛을 낸다. 이는 모든 학사들이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계하면서 그 문체(文體)를 변혁시키라는 뜻이다. 겸산(兼山 간괘(艮卦))의 배(背)와 풍산(風山 점괘(漸卦))의 반(磐)은, 하나는 정자(程子)가 자기 위치를 잘 지키라는 뜻으로 풀이했고, 하나는 《주역》에서 풍속을 선도하라는 뜻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모든 학사들이 욕심에 얽매이지 말고 사심에 이끌리지도 말고 온 천하와 함께 선한 길로 가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학사들이 무럭무럭 일어나 그 기상이 마치 우물을 다 쳐내고 벽돌로 가장자리를 쌓아 펑펑 솟는 물을 긷고 쓰고 하는 것처럼 되어, 앞으로 우리 국가와 함께 억만년을 두고 끝없는 복을 다 함께 누려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井)이라는 괘가 구이(九二)에서 상륙(上六)까지 수(需)의 체가 되고 수의 기상이 있으므로, 정은 물이고 수는 술이며, 정은 벽돌이고 수는 물이 솟는 구멍이다. 그것을 통틀어서 그 변형되는 것과 그 내용을 세밀히 관찰해 보면 술잔과 흡사한 점이 있고, 나아가서는 그 옛날 웅덩이에서 손으로 움켜 마시던 풍속과도 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우물과 벽돌로 끝맺음을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