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책과 기록

사가시 四家詩 한객건연집 韓客巾衍集

천부인권 2020. 11. 7. 19:21

사가시 四家詩-한연건연집 韓客巾衍集-표지

조선 후기 북학파의 신진학자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 등 4명의 시를 초록한 시집. 
1776년(영조 52) 유득공의 작은아버지 유련(柳璉)이 연행(燕行) 길에 가지고 가서 홍대용(洪大容)을 통하여 이미 문통이 있었던 이조원(李調元)·반정균(潘庭筠)의 서문을 얹어 1777년 중국에서 간행하였다. 

개인시집이 아니고 네 사람의 작품집이었기 때문에 뒤에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에 1917년 및 1921년에 ‘전주사가시(箋註四家詩)’라는 표제로 박경길(朴景吉)이 주를 달고 백건칠(白建七)이 교정하여 재판을 간행하였다. 

≪한객건연집≫의 내용을 작가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덕무는 육언시 1, 칠언절구 28, 오언율시 14, 칠언율시 48, 오언고시 3, 칠언고시 5로 모두 99수이다. 유득공은 육언시 8, 오언절구 1, 칠언절구 35, 오언율시 19, 칠언율시 19, 오언고시 13, 칠언고시 1, 동금언(東禽言) 4로 모두 100수이다. 박제가는 육언시 1, 오언절구 6, 칠언절구 25, 오언율시 18, 칠언율시 45, 오언고시 4, 칠언고시 1로 모두 100수이다. 이서구는 육언시 3, 오언절구 3, 칠언절구 28, 오언율시 14, 칠언율시 28, 오언고시 13, 칠언고시 1로 모두 100수이다. 
≪한객건연집≫에서 사가의 특징은 답습(踏襲)·진부(陳腐)를 버리고 독창·참신을 주장한 점이다. 이덕무는 〈증인지임금교찰방 贈人之任金郊察訪〉이라는 시에서 늘그막에 벼슬길에 나서는 노인과 모여서 웃고 있는 소년을 대비시켜 묘사하였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휘날리는 살구꽃 속에 뽐내며 날뛰는 말들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를 읽고 중국인 이조원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평하였다. 그의 시의 소재는 조선의 산천자연, 자기의 생활 주변에서 가려 다분히 감각적으로 읊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眞景山水)의 화풍은 이들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본다. 

≪발해고 渤海考≫를 지은 유득공은 역사의식이 강한 시인이다.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는 그의 역사의식을 잘 나타낸다. 음향성에 밝은 그는 민족의 역사를 음향성을 감안하여 읊고 외우기 쉬운 시형식을 빌어서 고취하고 싶었던 것으로 본다. 이 땅의 자연이야말로 시의 참된 소재임을 인식하고 조선의 자연과 풍물을 시로 읊었다., 널뛰는 모습, 그네 타는 모습을 한폭의 풍속도를 보듯 그려나갔다. 

이서구는 나이가 가장 어렸으나 비교적 중후한 맛이 있는 시를 썼다. 이서구를 제외한 셋은 서출이어서 관로가 널리 트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학문·예술의 세계에 정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공통적으로 답습·진부를 싫어하고 독창·참신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사가시는 실학사상 위에 핀 꽃이라 하겠다. 

출처 및 참조  
다음 블로그-진품명품 고서 고문서 .골동품 .카페갤러리/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 필사본

 

사가시 四家詩-한연건연집 韓客巾衍集-표지 뒷장

 

韓客巾衍集
今年春正 偶以心疾 閉門攝靜 謝絶來客 不窺戶外者 十有五日 又懶不作詩 遂無一事 每日暮臥聽轢轢車聲 人語喧闃大都 皆都人士女 踏歌鬧哦 爭看火橋星樹來也 愈思僻之 偶有剝啄聲 啓之則一秀士丰神朗 潤眉如長松 眼爛爛若巖下電 頭戴笠子 衣道衣 不似中國人 問之則目瞪然不解一語 因以筆代言 始知爲朝鮮來中國 賀聖天子元朝 副使禮曹判書徐浩修所差幕官 來求詩集 姓柳 名琴 字彈素而別號幾何主人者也

금년 봄 정월에 뜻하지 않게 마음이 편치 못했다. 문을 닫아걸고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며 손님도 거절하면서 바깥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지 보름이나 되었다. 또한 게을러 시도 짓지 않아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해질녘에는 덜컹거리는 수레 소리를 누워 들었었다. 사람 소리로 도시가 온통 시끄러웠는데 도시의 모든 사녀士女들이 떠들썩하게 답교踏橋 노래 부르며 불 밝힌 다리와 나뭇가지에 걸린 별빛을 다투어 구경하고 있었기에 더욱 멀리 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준수하고 풍채 좋은 선비가 있었다. 눈썹은 소나무 같고 암벽 아래의 번개처럼 눈빛은 반짝였으며 머리에는 패랭이를 썼고 사신使臣의 평복을 입고 있었는데 중국사람 같지 않았다. 누구냐고 물었는데 눈만 멀뚱멀뚱 한마디 말도 알아듣질 못했기에 붓을 들고 필담을 나누고서야 비로소 천자의 신년을 하례하기 위해 조선에서 중국에 온 부사 예조판서 서호수徐浩修 막하의 차비관으로 시집을 구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것을 알았다.
성은 유柳 이름은 금琴, 자는 탄소彈素 별호는 기하주인幾何主人이었다.

 

 

韓客巾衍集 卷之一
이덕무 李德懋
字懋官 號炯菴 漢城府人 貫全羅道完山府 辛酉生年 今三十六著 有靑莊館集

이덕무
자는 무관, 호는 형암으로 한성부 사람이다. 관향은 전라도 완산부이다. 신유년(1741)에 태어 났으며 지금 36세다. 저서로 『청장관집靑莊館集』이 있다.

秋燈急雨-李德懋 가을 등불 아래 소낙비 내리고-이덕무
凉宵顧影剔燈紅  서늘한 가을밤에 그림자 돌아보며 등잔 심지를 자르는데
釼錄星經揷架充  검술 책과 천문 서적이 시렁 가득 꽂혔구나.
頓有扁舟浮海想  문득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떠다닐 생각하니
秋齋忽泛雨聲中  가을의 서재가 갑자기 빗소리에 떠는 듯하구나.

 

 

凉雨夕   찬 비 내리는 저녘에
事如塵梁瞥然抛 티끌 물든 일들을 놀란 듯 그만두니
不獨朋譏卽自嘲 벗의 기롱 뿐 아니라 스스로도 조롱하네
弟倣法奇纖掃帖 동생은 서법 따라 섬세하게 글 익히고
妻知骨傲闊裁袍 아내는 골격 알고 넉넉하게 옷 만드네
黃花値閏還添壽 누런 국화 윤달 맞아 오히려 생명 길어졌고
紅酒除禁更托交 금주령 풀려 홍주 다시 마시누나.
雨打夕庭經小劫 저녘 뜰에 오랫동안 비 치더니 
妙觀無數遞騰泡 무수히 일고 지는 물거품이 오묘하구나.

 

漫書六絶      붓길 가는 대로 짓다.
陰符經難涉世  『음부경』¹⁾으로도 세상 살기 어렵나니
參同契豈引年  『참동계』²⁾인들 수명 어찌 연장하랴.
渾無一物挂戀  어디에도 마음 쏟지 않으니
白雲天地浩然  천지간에 흰 구름만 넓고 넓구나.

【주석】
『음부경』¹⁾ : 황제黃帝가 찬술 했다고 전해지는 도가류道家類의 책이다.
『참동계』²⁾ : 중국 후한 때의 위백양魏伯陽이 지었다는 책으로 주역을 풀이해 놓은 듯하지만 실상은 연단술과 관련된 내용이다.

 

金奉常 章行 輓 봉상 김장행 만사
疴後題君輓     병 앓은 후 그대 만장 쓰노니
淚彈筆逕昏     눈물이 나서 붓길이 흐릿하구나
些兒濃態去     그처럼 다정했던 모습 떠나니
一副勢腸存     한 조각 끊어진 창자 남았구려.
可愛儒中俠     선비 중의 호걸로 사랑했었고
不厭峭處溫     엄하면서 온화함 싫지 않았지
是猶皮膜外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孝友大堪尊     효도와 우애가 가장 돋보였다네.

 

漢水舟中 한강의 배 안에서

日脚玲瓏水步舒 햇살은 영롱하게 물가에 퍼지는데

春波綠闊素舲虛 넓고 푸른 봄 물결에 빈 배만 두둥실

潛吹細沫空明裏 맑은 투명한 물속에 잔거품 불어내는

針尾芒鬚二寸魚 바늘꼬리 가시수염 두 치 되는 물고기

 

七夕翌日遊泣請亭 칠석 이틑날 읍청정에서 놀며
夏尾秋頭接       늦여름과 초가을에 연이어서
新晴才數日       산듯하게 개인 날 몇일째
一蟬涼槐多       서늘한 회화나무에 매미 한 마리
脩然作者七       시원하게 일곱 작가 모였구나.   

 

九日麻浦同朴在先宿朴穉川相洪水舍 중양절 마포에서 재선 박제가와 함께 치천 박상홍의 물가 집에서 자며
誰家雨懷垣 비에 무너진 담장은 뉘 집이런가.
樨楓姸膩膩 계수나무 단풍은 반질반질 곱기도 해라.
眼醒蔥蒨中 푸르름 속에서 눈이 번쩍 뜨이니
爲似紅蠟紙 새빨간 밀랍 종이와 같아서이네.
波穿赭石岸 물결은 붉은 돌 언덕 뚫어버렸고
蒼蒼隱舟尾 푸른 물결 배꼬리 감추는구나.
夕江闃人聲 저녁 강가 사람 소리 고요하니
魚立鬊鱗偉 지느러미 비늘 제법 크기도 해라.        

 

碧蹄店¹⁾-이덕무 李德懋 
天兵癸巳齒倭鋒 계사년 명군明軍이 일본과 싸울 적에
鐵馬蹄勞膩土濃 철마의 발굽은 진흙탕에 빠졌었지²⁾
未抵輕儇蝴蝶陣 재빠른 호접진³⁾을 막아내지 못하여
臨風痛哭李如松 바람 향해 이여송은 통곡을 하였다네. 

往往鋤頭觸鐵丸 이따금 호미에 철탄환 걸려 나와
村娥綴佩愛團團 둥근 것을 좋아하여 시골 처녀 꿰어 찼네
太平生長那由識 태평시절 나고 자라 어이해 알리오
透甲曾成壯士瘢 갑옷 뚫어 장사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주석】
碧蹄店¹⁾ : "碧蹄店在坡州牧惠陰嶺下. 萬曆癸巳,李提督如松,與倭戰于此. 是時,凍新解,水田皆泥濃,馬不得馳突. 倭步卒拔刀,斫馬蹄,捉提督愛將李某,?殺於馬前. 提督慟哭,仍隱退兵. 倭軍三三五五,散合無常,故號爲胡蝶陣云."
계사년....빠졌었지²⁾ : 계사년(1593)에 명나라에서 구원병으로 출정했던 제독 이여송이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이 때에 얼음이 갓 녹아 논이 모두 진흙투성이여서 말이 달려 나갈 수 없었다. 일본 보병이 칼을 뽑아 말의 발굽을 자르고서는 제독이 친애하는 이유승李有昇을 사로잡아 그를 말 앞에서 찢어 죽였다. 이여송은 통곡을 하며 이에 병사를 후퇴시켰다.
호접진³⁾ :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삼삼오오 흩어지고 모이는 것이 일정치 않았는데,이를 '胡蝶陣"이라 부른다

 

延安府¹⁾
申公築城炳幾先 신각申恪²⁾이 성 쌓은 것은 앞날 미리 짐작했고
畢境奇功李月川 마침내 이정암李廷馣³⁾ 커다란 공 세우셨지.
敗壘蜿蜒連卉寇 패한 진지陣地⁴⁾ 풀 사이로 왜구들 도망쳤고
崇碑屭贔辨龍年 높은 비석⁵⁾ 우뚝 서서 임진년⁶⁾을 말해 주네
池蓮適用還徵稅 못 연꽃 쓸만하여 세금으로 거둬 가고
野鶴橫罹亦直錢 들판 학도 잡으니 또한 돈이 되기 때문이네
飯顆延州誰謂美 연안 쌀을 그 누가 최고라 하였던가
秋荒禾麥劇蕭然 가을 들판 벼 보리가 너무나도 썰렁하네

【주석】
延安府¹⁾ : 萬曆辛卯 重峯先生趙文烈公憲 胎書延安府使申公恪以爲不久 倭寇將動 願修城池 申公如其言繕修之 明年壬辰 倭果入 寇八路風靡 招討使月川君李公延馣守此城 拒倭大捷 府之北山 有倭屯壘處 城中有大捷碑 鰵城君李公恒福所撰 府南有大池 官稅蓮子 延安鶴最梁白 故居人捕而賣之 延安稻米 通一國 顆粒朗潤
신각申恪²⁾ : 원문은 신공申公, 신각(?~1592)은 연안부사로 있으면서 임진왜란 직전에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의 ‘멀지 않아 왜구의 난리가 있을 듯하니 성을 정비하라’는 편지를 받고 연안성을 보수했다.
이정암李廷馣³⁾ : 원문은 이월천李月川, 월천은 월천군月川君의 봉호를 받은 이정암(1564~1635)를 말한다. 신각이 연안부사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이 나기 전인 신묘년에 이곳에 성을 쌓았었는데 임진왜란이 나자 이정암은 의병을 모집하여 이 성을 끝까지 사수하여 큰 공을 세웠다. 
패한 진지陣地⁴⁾ : 원문은 패루敗壘, 연안부의 북산에 왜구가 진을 쳤던 곳을 말한다.
높은 비석⁵⁾ : 원문은 숭비崇碑, 연안부 성 안에는 이정암이 왜구를 물리쳤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찬한 대첩비가 있다. 
임진년⁶⁾ : 원문은 용년龍年, 임진년이 용의 해이기에 이렇게 한 것이다.

 

金沙寺¹⁾
水背如弓不見洲 물굽이 활과 같아 모래섬 보이잖고
壯遊吾且散羈愁 장쾌한 유람에 길손 근심 사라지네
群龍鬐戲潮音逈 아득한 파도소리 용이 몸을 터는 듯
諸佛眉憂地軸浮 떠 있는 지축은 불상 눈썹 찡그린 듯
遍滿穠棠開亦艶 해당화 지천에 꽃을 피워 고운데 
飛來芽菽事頗幽 날아 온 씨앗의 그 일 자못 기이해라²⁾
年年首夏唐船泊 해마다 초여름에 중국배 정박하니
僧將營高海月樓 승장³⁾의 진영에는 해월루 높다랗네

【주석】
金沙寺¹⁾ : 寺在海道長淵府 新羅時所創 沙如糝粉 四五月 短叢海棠發於沙中 有菜如天頭黃拳 形與味 無差麥 自海中飛來 有海月樓 僧將鎭之 每歲四月 登萊人來泊采海鼠防風 八月始還
해당화....기이해라²⁾ : 금사사는 황해도 장연부에 있는데 중국의 등주登州와 내주萊州에서 해당화 씨앗이 날아와 이곳에서 꽃을 피웠다는 의미로 보인다.
승장³⁾ : 황해도 장연부에 성보城堡를 설치하고 승장僧將 1명을 두었다고 한다. 또한 그 곁에 해월루가 있었다고 한다.

 

 

曉發延安  새벽에 연안을 떠나며-이덕무 李德懋¹⁾
不已霜鷄郡舍東 객사 동편의 새벽 닭 우는소리 끊이지 않고 
殘星配月耿垂空 지는 별은 달빛 짝해 하늘에서 반짝이네
蹄聲笠影朦朧野 갓 그림자 흐릿한 말굽 소리 들리는 들판에
行踏閨人片夢中 아낙의 한 조각 꿈속으로 걸어가네

【주석】
이덕무 李德懋¹⁾ : 이덕무(1741~1793)는 영조 17에서 정조 17년까지의 사람이다. 실학자이며 자 무관懋官, 호 아정雅亭. 청장관靑莊館. 형암炯菴. 본관 완산完山이다.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사대가의 한사람으로 박학다식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서화에도 출중하였다. 벼슬은 규장각 검서관, 적성현감에 그쳤다. 저서는 방대한 내용을 포괄한 “청장관전서”가 있다.

 

與東隣朴進士綏壽賦  동쪽 이웃 진사 박수수와 함께 짓다.
秋室蕭蕭問起居 쓸쓸한 가을 집서 기거를 물으면서
張燈軟話二更餘 등잔 아래 얘기하다 이경이 넘었구나
輕衣煖閤趺如佛 따스한 방 포근한 옷으로 부처처럼 앉았는데
朱葉霜垣罥似魚 붉은 잎 서리 온 담에 고기인 듯 걸렸구나
懶可蜨菴爲配享 게으르니 접암에 배향되기 적당하나¹⁾
貧難麴部做尙書 가난하니 국부의 상서 되기 어렵겠네²⁾
祇將文雅招同里 다만 시문詩文으로 마을 친구 부르니
茶果情眞契不疏 다과 대접 참다운 정 소원 않게 하리라.

【주석】
게으르니....적당하나¹⁾ : 접암蜨菴은 암자 이름으로 이는 장주莊周가 꿈에 호접胡蝶으로 변화 했다는 고사를 붙인 이름이다. 후당의 이우李愚는 밤낮 없이 공직에 매달려 매우 바빴다. 그는 사람에게 “내가 이다지도 바빠 한 번도 꿈나라에 가보지 못하니 낙양에다가 수죽水竹을 사서 접암을 짓고는 모든 일 버리고 여기에서 살려는데 이 암자에는 마땅히 장주를 시조로 모시고 신선이 진박陳搏을 배향시키겠다.”고 하였다. 『청이록淸異錄』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게을러 낮잠이나 자고 있다는 의미이다.
가난하니....어렵겠네²⁾ : 당나라 여양왕汝陽王 진璡은 술을 빚는 특별한 방법이 있어 감로경甘露經이라 이름했으며 ‘양왕겸국부상서釀王兼麴部尙書’라 자칭했다. 『취선기醉仙記』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가난하여 술을 자주 마시지 못한 상황을 빗대어 말했다.

 

贈人之任金郊察訪 금교찰방으로 부임해 가는 이에게 주다.¹⁾
草色官袍老太常 초록빛 관복에 나이 많은 태상경太常卿이
淋漓諧笑少年場 농담과 해학으로 소년들과 놀고있네
酒酣臥聽荊卿傳 술 취하면 누워서 형가전荊軻傳²⁾ 들을 적에
特捋蒼髥意氣長 흰 수염 쓰다듬으며 의기가 대단터라

驛樹禽嗚旅想粉 역마을 숲 새소리에 길손은 마음 착잡한데
滿斟官酒頰雙醺 가득한 관아 술에 두 뺨이 불그스레
杏花亂落家家櫪 살구꽃 어지럽게 날리는 집집마다 마구간에는
驕躍靑驄赭白群 청총마靑驄馬 자백마赭白馬가 뽐내며 날뛰누나

【주석】
금교찰방....주다.¹⁾ : 찰방 노윤중盧允中이 금교찰방金郊察訪으로 갈 때 지어 준 시.
형가전荊軻傳²⁾ : 원문은 형경전荊卿傳, 형경은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자객(刺客) 형가(荊軻)를 말하며, 그의 전은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보인다.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으로 진시황秦始皇을 살해하려다 오히려 진시황에게 죽었다.

遊徐氏常修東庄 서상수¹⁾의 동쪽 별장에 놀면서
儔侶聯翩步屧齊 벗들 서로 연이어 발걸음 짝하여 오고
徐家亭子道峯西 도봉산 서편의 서씨 정자 찾아가네
幽花漠漠逢僧落 그윽한 꽃은 중 만나자 이리저리 떨어지고
白月紛紛向客低 밝은 달은 길손향해 어지럽게 기우누나.
依樣亂萍多影樹 부평초는 희미하니 나무 그림자 가득하고
七分寒雨善嗚鷄 차가운 비 내리니 닭은 잘도 우는구나.
重遊政遂新來燕 제비가 날아들제 거듭 이곳 유람하며
幷宿還同對待栖 서로 마주보고서 가지런히 잠을 자네

【주석】
서상수¹⁾ : 서상수徐常修(1735~1793)본관은 달성 자는 여오汝五·백오佰吾·기공旂公이고, 호는 관헌觀軒이다. 1768년 무렵 서울의 원각사지圓覺寺址 부근에 살면서 박지원·이덕무·이서구·유덕공·박제가 등과 백탑청연白塔淸緣을 맺고 시문과 서화를 즐겼다. 그림뿐 아니라 글씨와 문장 음악에 두루 능통했고 특히 작품을 보는 감식안이 뛰어났다.

題田舍 농가에 짓다.
荳殼堆邊細逕分 콩깍지 쌓인 곁에 오솔길 나눠지고
紅暾稍遍散牛群 붉은 노을 퍼져오니 소 떼들이 흩어진다.
娟靑欲染秋來岫 가을이라 산허리는 물든 듯 푸르르고
秀潔堪餐霽後雲 비갠 후의 흰구름은 깨끗하여 먹음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