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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동 봉진비(鳳津碑)

천부인권 2025. 10. 23. 06:23

2025.4.6.봉암교-봉암나루

 

봉암동을 찾은 것은 창원천의 발원지를 찾으면서 그 최종 종착지인 봉암갯벌을 가면서 들렀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블로그를 하게 된 계기가 봉암나루 때문이다. 봉진비를 처음 본 것이 거의 20년 전의 일인데 환경운동연합에서 아무거나 좋으니 글 한 편 달라고 했다.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재주도 없는데 억지로 꺼리를 만들려고 찾은 곳이 내서와 창원 분지를 잇는 봉암(鳳岩)을 찾게 되었다. 이곳 나루는 기수지역이라 무언가는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찾았는데 뜻밖에 이 봉진비를 만나게 되었고 그 내용이 아름다워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봉진비문의 원문을 옮겨 적게 되었고 한글로 해석하면서 옛 선비의 생각도 보게 됐다.

봉암동 비석군이 위치한 이곳은 창원시 회원구 봉암동 103이며, 좌표는 35°12'47"N 128°37'03"E이고, 고도는 5m이다.

 

2025.10.10.봉암나루 비석군

 

鳳津碑

徃年余有事諸檜山所過津渡凣五六所 每抵岸津吏督副符傳不副輒苛留從者病之 至鳳津不問布錢有無心窃異之 他日聞諸檜人有尹員外君玉者津俗置田數十畝属津夫廩其食造二舟至爲用俾行族利渉 余嗟歎曰 昔有人編竹渡蟻獲陰騭 天所以騭之者不唯以物之得生理而喜之 期其能勤於済物而勖之也 又聞君玉嘗節其食編其衣救寒餓者 復歎賞曰君玉腔子裡己自有一副編竹 而旣識之於黨里推以及於行旅前途所済曷可量哉 己未冬檜之上南坊士人 吳鍾泳文鍾贊金鍾洛金容泰曺喜誠申生鉉遣申衝均又鍾煥二君爲余告君玉事曰 本坊通鳳津荷惠優方竪石津口使来徃者知君王心幸有以識之 余曰吾意也 吾所爲意者非所以謝君玉也 爲政者苟存心於済物天下之人安徃而非鳳津哉

大正九年一月 日 光州 盧相稷掽 上南面 立

 

2025.4.6.봉암동-봉진비

 

봉진비(鳳津碑)

지난날 내가 일이 있어 회산(檜山) 지방에 가면서 대여섯 군데의 나루터를 지나게 되었다. 매번 나루에 닿을 때마다 나루터 관리가 통행증을 확인하고는, (증표가) 맞지 않으면 번번이 가혹하게 머물게 하니, 나를 따르는 자들이 이를 괴롭게 여겼다.

그런데 봉진(鳳津) 나루에 이르러서는 (관리가) 뱃삯으로 낼 베나 돈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으니, 내심 이상하게 여겼다.

훗날 회산 사람에게 들으니, 윤원외(尹員外) 군옥(君玉)이라는 분이 있어, 나루터의 (나쁜) 풍속을 안타깝게 여겨 밭 수십 묘를 마련하여 나루터 사공에게 주고 그 식량을 대어 주었으며, 배 두 척을 만들어 잘 쓰이게 하여, 여행객들이 이롭게 강을 건너도록 하였다고 한다.

내가 감탄하며 말하기를, "옛날 어떤 이가 대나무를 엮어 개미를 물에서 건네주고서 하늘의 숨은 공덕(陰騭)을 입었다고 한다. 하늘이 그에게 공덕을 내린 까닭은, 비단 미물이 생명을 얻은 것을 기뻐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능히 남을 구제하는 일에 힘쓸 것을 기대하고 이를 권면하려 한 것이다."

또 듣건대, 군옥(君玉)은 일찍이 자신의 먹을 것을 아끼고 입을 것을 검소하게 하여, 춥고 굶주린 자들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나는 다시 탄복하여 말하기를, "군옥의 가슴 속에는 이미 스스로 한 벌의 '개미를 구한 대나무 엮음(編竹)'이 있구나. 그리하여 이미 마을에서부터 이를 실천하였고, (그 마음을) 미루어 나그네에게까지 미쳤으니, 앞으로 그가 구제할 바를 어찌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기미년(己未年, 1919) 겨울, 회산(檜山) 상남방(上南坊)의 선비들인 오종영(吳鍾泳), 문종찬(文鍾贊), 김종락(金鍾洛), 김용태(金容泰), 조희성(曺喜誠), 신생현(申生鉉)이 신충균(申衝均)과 종환(鍾煥) 두 분을 나에게 보내어 군옥의 일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 마을이 봉진을 통해 다니는데, 입은 은혜가 두텁습니다. 이에 나루 어귀에 돌을 세워, 오고 가는 이들로 하여금 군옥(君玉)의 훌륭한 마음(君王心)을 알게 하고자 하니, 부디 글을 지어주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그것은 (진작부터) 내 뜻이기도 하오. 내가 (글을 짓고자) 마음먹은 까닭은 단지 군옥에게 감사하려는 것만이 아니오. 정치를 하는 이들이 만일 진실로 남을 구제하는 데 마음을 둔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어디를 간들 그곳이 봉진(鳳津)이 아니겠는가!"

다이쇼(大正) 9(1920) 1월 일

광주(光州) 노상직(盧相稷) 지음

상남면(上南面) 사람들이 세움

 

 鳳津(봉진): '봉황 나루'라는 뜻으로, 현재 창원시 회원구 봉암동 103에 위치하며, 봉암교 아래 옛 나루를 말한다.
 尹員外君玉(윤원외군옥): 윤군옥(尹君玉)이라는 인물. '원외(員外)'는 원외랑(員外郎)과 같은 정식 관직일 수도 있으나, 조선 후기나 근대에 와서는 명예직이나 존칭으로 쓰인 경우가 많음.
 編竹渡蟻獲陰騭(편죽도의획음즐): '대나무를 엮어 개미를 건네주고 숨은 공덕을 얻다'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작은 생명이라도 구제하는 선행이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윤군옥의 자비심을 이에 비유한 것
 腔子裡(강자리): '가슴 속' 또는 '마음 속'을 뜻하는 속어적 표현
 君王心(군왕심): '임금과 같은 훌륭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윤군옥의 인자하고 훌륭한 마음을 극찬하는 표현
 盧相稷(노상직): 비문을 지은 사람. (1855~1931). 한말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호는 추인(秋人)이다.

 

봉암대교와 봉암나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