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원읍 운곡리 855-1에는 백운대(白雲臺)와 雲林臺(운림대)가 인접해 있다. 이곳의 좌표는 위도 35°18'59"N 경도 128°32'27"E이며 고도는 53m이다.
옛 운곡초등학교의 남쪽 담장 밖의 농로 위에 위치하고 백운대(白雲臺)와 雲林臺(운림대)는 운곡초등학교 숲의 내력을 담고 있다. 이 숲은 이팝나무 4그루와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가 있다. 느티나무가 보호수라는 안내판은 있었으나 그렇게 오래된 느티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백운대(白雲臺) 비갈 옆면을 다듬어
西紀 一九七六년 丙辰 七月 七日(서기 일구칠육년 병진 칠월 칠일)
金鍾榮 金尙煥 事役 (김종영 김상환 사역)
黃喆柱 撰 金正淵 書(황철주 찬, 김정연 서)라 새겼다.

백운대(白雲臺) 비갈과 나란히 오석의 비를 세웠는데 내용은 한글로 기록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백운대기
우리 고장의 명승고적을 자랑하는 무릉산과 작대산의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운곡천 연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한 마을이 있으니 이 마을이 바로 운동촌이다. 마을 어귀에 이팝 고목의 숲이 우거져 있고 그 머리에 오래된 정자나무 한 그루가 엄연히 사방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이 정자는 옛적부터 우리들의 선부로께서 북돋우고 백아정이라 불러 왔으며 현종조 때에 미수 허문정공께서 이 정자에 머무르시고 경개의 아름다움을 치사하셨다는 전설이 전해왔다. 그러므로 역대 인사들은 이러한 천연기념수의 전설을 되살리고저 노력하여 왔으며 그중에 특지자 한 사람이 있으니 이는 곧 향토애가 가장 열열한 昭岡 金小景(소강 김소경)씨 였다. 공은 경술년에 백아정을 수리하고 정명을 백운대로 고쳤으며 유지인 백운계를 조직하여 영세불민을 도모하여 왔다. 공의 그 위대한 공적과 불타는 향토애는 우리 지방 사람들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또 우리들이 환영하고 찬양할 바는 갑인년 봄에 고 小景(소경)씨의 윤우 基一基大基明(기일기대기명) 손 대현현석규완군이 자기 선대인의 뜻과 업적을 후세에 들내고저 본대를 중수하고 계금을 보충하여 주니 그 2대 공적은 맑아오는 백운대와 함께 천추에 기리 빛 나도다.
서기 1976년 병진 7월 7일
백운계원 일동


백운대(白雲臺) 비갈 옆에는 『雲林臺(운림대)』라는 비석이 있는데 비대와 비신, 가첨석을 제대로 갖춘 모습이고 제법 크기가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雲林臺(운림대)
사람은 自然(자연)을 사랑하고 自然(자연)은 사람을 保護(보호)하나니 이것은 大自然(대자연)의 攝理(섭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우리의 祖上(조상)들이 그 住居(주거)를 選擇(선택)함에 반듯이 그 周圍環境(주위환경)의 자연적조건(自然的條件)을 바탕하였으니, 그 實例(실예)로서 山明水麗(산명수려)하고 向陽溫暖(향양온난)한 곳을 가려 마을을 이루고 四方(사방)에 喬木(교목)을 심어 마을의 守護神(수호신)으로서 洞神(동신)을 祭祀(제사)하고 마을 어귀에는 鬱蒼(울창)하게 나무숲을 가꾸어 풍경을 造成(조성)하는 한편 사나운 바람을 막아 마을의 安定(안정)을 圖謀(도모)하는 등 그 遺俗(유속)이 현금(현금)까지 傳來(전래)되어 왔으니만치 인간과 自然(자연)과는 不可分(불가분)의 相互關係(상호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回想(회상)컨대 이 雲東(운동) 숲은 그 造成年代(조성연대)는 未詳(미상)하나 距今二百餘年前(거금이백여년전)에 許眉叟先生(허미수선생)이 이곳을 遊歷(유역)하면서 雲谷八景(운곡팔경)으로 吟咏(음영)하였으니만치 그 역사는 悠久(유구)하다 하겠다. 그런데 이 숲이 李朝末期(이조말기)에 統營統制使(통영통제사)가 造船(조선)을 憑籍(빙적)하고 伐取(벌취)할려는 것을 本洞居住裵文俊裵文佑裵文健三位先父老(본동거주배문준배문우배문건삼위선부노)가 代錢(대전)을 獻納(헌납)하므로서 이를 冒免(모면)하게 되었던 것인데 그 후 雲谷國民學校 建築敷地(운곡초등학교 건축부지)에 編入(편입)되면서 그 대부분이 伐採(벌채)되고 現在不過幾十株(현재불과기십주)가 남아있어 雲東(운동) 숲으로서의 名分(명분)을 保全(보전)하고 있을 뿐 鬱蒼(울창)하든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음은 참으로 愛惜(애석)하다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간은 實情(실정)을 안타까히 生覺(생각)한 本洞士人裵鍾澤君(본동사인배종택군)이 선인들의 뜻을 이어 받들어 그나마 남은 것이라도 永久保全(영구보전) 하므로서 이 숲의 역사적인 傳統(전통)과 이 마을의 由緒(유서)를 길이 世傳(세전)코자 有志人士(유지인사)들의 協贊(협찬)을 얻어 自力(자력)으로 이 대를 모으고 느티나무 두 그루를 補植(보식)하여 雲林臺(운림대)라 題名(제명)하였으니 갸륵한 그 愛鄕精神(애향정신)은 높이 평가 되어야할 것이다. 이에 그 유래의 大綱(대강)을 記述(기술)하여 後世(후세)의 참고에 資(자)했으면 한다.
서기1918년 丙寅春分節(병인춘분절)
商山 周永晉 撰(상산 주영진 찬)
盆城 裵淇漢 서(분성 배기한 서)
協贊 黃喆愿 周漢植 郭炳旋 韓柄五 裵鍾達 申鉉培(협찬 황철원 주한식 곽병선 한병오 배종달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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