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통영 해평열녀사당과 천서각

천부인권 2026. 1. 22. 15:00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통영시 해평513(봉평동 53)에는 해평열녀(海坪烈女) 사당(祠堂)이 있는데, 이곳 해평마을에 전해지는 해평열녀(海坪烈女) 이야기는 통영에 구전되는 대표적 열녀설화 가운데 하나로 통영지(統營志, 1890년대), 모성공회찬양문(慕聖公會讚揚文, 1922), 고해평열녀기실비(古海坪烈女紀實碑, 1932), 통영군지(統營郡誌, 1935) 등의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다.

옛날 용화산(龍華山, 미륵산) 아래의 해평(해핑이:통영 사람들이 부르는 마을 이름)에 열녀부인이 남편과 살았는데 성()과 생몰년대를 자세히 알지 못했으므로 살았던 마을 이름을 빌려 해평열녀라 일컬었다. 부인이 시집 온지 수개월만에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심한 풍랑으로 물에 빠져 실종되었다. 소식을 들은 부인은 남편과 함께 고기잡이 했다가 돌아 온 사람들에게 간곡히 청하여 남편이 실종된 바다로 갔으나 넓은 바다에서 찾을 길이 없어 허망해 하다가 그 바다에 몸을 던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사흘만에 죽은 남편의 시신을 안고 해평마을 앞 바다에 떠오르니 이를 본 사람들은 두 시체를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함께 장례해 주었다. 그런 후 마을의 나뭇잎을 벌레가 먹은 흔적이 전서체로 열녀(烈女)’라는 두 글자를 뚜렷하게 새겼으며, 이어서 온마을과 산에까지 나뭇잎에는 열녀(烈女)’라는 글자가 새겨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하늘이 감동하여 나뭇잎에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라는 기록이 통제영지에 실려 있다고 했다.

 

2024.3.9.통영 해평열녀초상

 

1887(고종 24) 이러한 해평열녀 이야기를 전해 들은 허진(許珍. 許瑾이라는 설도 있다)이라는 분이 이곳 바닷가에 그녀의 넋을 위로하는 작은 초가사당을 최초로 지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4절기마다 상식(上食)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1927년 정월에 사당(祠堂) 주변을 토담으로 쌓았으며, 1932년 사당 앞에 버드나무를 심고 봉숫골(烽燧谷)로 오르는 봉평동 비석고갯길에 고해평열녀기실비(古海坪烈女紀實碑)’를 세워 열녀의 혼을 추모하고 귀감이 되도록 했다. 1938년 봄 기와로 중건했으며 1988년 다시 사당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중건기

 

重建記

余於壬申春豙居山齋 有金鄭二人踵余所 而告之曰 海坪烈女 奉祀之禮 每以歲時 今蓈毌闕芬苾 然艸祠一間蕪沒于 荒烟海㟁之曲知 其有烈祠者寡矣 令欲伐石紀蹟竪于 大道之近 以千古特異之烈耀 於世人心目 然顧我十室孱村不能致力何願 以措畵之方畀之惟黨焉 再三要余余之淺劣窃不自揆遍告于 鄕中有志之彦幸得樹石之資付諸工及其功告之日會多士落之逮至是年 又以祠宇之傾頹集諸人謀仍址而新之攺茅 而瓦之祠皃于 以爀然憶余於 是祠非敢以售其勞也 夫事不患於不成而患於怠庎 余特區區於是者使後之人敬慕毋怠嗣 以新之是祠之久存可 以數計也 故爲文記之以告來者焉

戊寅三月 日 李鍾彦記

監董 李鍾彦

從事 金守奉, 鄭順宗, 金宗柱, 成夢三, 嚴明汝, 金良五, 鄭富贊, 嚴俊明

 

중건기 (重建記)

내가 임신년(1932년 추정) 봄에 산재(山齋)에 거처하고 있을 때, 김씨와 정씨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해평 열녀에게 제사를 받드는 예는 매번 명절과 제사 때마다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초가로 된 사당 한 칸이 거친 연기 가득한 바닷가 구석에 파묻혀 있어, 그곳에 열녀의 사당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이제 돌을 깎아 자취를 기록하고 이를 큰길 가까이에 세워, 천고에 특별하고 뛰어난 열행을 세상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빛나게 하고자 합니다. 다만 우리 열 집 남짓한 잔약한 마을의 힘만으로는 전력하기 어려우니, 원컨대 계획할 방도를 우리에게 주시면 오직 따르겠습니다"라며 재삼 나에게 간곡히 요청하였다.

나의 얕고 보잘것없는 실력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향중(鄕中)의 뜻있는 선비들에게 두루 알렸더니 다행히 비석을 세울 자금을 얻게 되었다. 이를 장인들에게 맡겨 공사를 마치고, 그 일이 보고된 날에 여러 선비들을 모아 낙성식(落成式)을 치렀다.

이 해에 이르러 또 사당 건물이 기우뚱하고 무너진 것을 보고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그 터를 그대로 쓰되 건물을 새롭게 하고 초가지붕을 기와로 바꾸니 사당의 모습이 이에 빛나게 되었다.

생각건대 내가 이 사당의 일에 참여한 것은 감히 나의 수고를 내세우려 함이 아니다. 대체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룬 뒤에) 게으름 피우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내가 특별히 이 일에 정성을 쏟은 까닭은,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경모하는 마음을 가져 게을리하지 말고 대를 이어 사당을 새롭게 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사당이 오래 보존될 것임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지어 기록함으로써 뒷사람들에게 알리는 바이다.

 

무인년(1938) 3월 어느 날, 이종언(李鍾彦) 적음.

감동(監董, 감독하고 일을 한 사람): 이종언(李鍾彦)

종사(從事, 실무): 김수봉(金守奉), 정순종(鄭順宗), 김종주(金宗柱), 성몽삼(成夢三), 엄명여(嚴明汝), 김양오(金良五), 정부찬(鄭富贊), 엄준명(嚴俊明)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천서각시병서

 

天書閣詩幷序

烈女某氏適龍南郡山陽面海坪里某壯人宜實才閱月其夫乘船駕海爲風濤所渰烈女聞変諗得其漂湜處頫首投從居三日投死而浮出里中人咸餠愕收而同竁之本里樹葉虫蝕成篆茅烈女二字遍于四山鄕人謂之天書非格天感神之烈曷以及此曺娥負父之出事雖不同而其貞操大義足與幷千古也無疑矣其牲氏年代不能詳知而人稱海坪女事載郡志丁亥年間郡人許夢湖珍捐家資立祠買田數歿以妥奉之雖遲 朝家綽楔之典其天彛之不斁可欽也巳日金君煥翼乞其贊楣於舘閣諸公而袖烈爲狀謁子詩文於京師之寒僦辭辞之不獲遂爲之詩而歸之曰

海水萬仞深海礪千丈直魂未海波絲魂去

海雲黑明眸皓齒若有人羅袖裔裔海之干

海之干兮不可留下有千尺層瀾鮫𩽨鯨鱷

相擊搏藁砧拏舟衝其汭盲風颶吹倏颯颯

乾坤覆亭亭一棹輕於葉大檝小檣槯朽沒

于尾閭谷身與駛波浴人仕龍官僕妾旣許

百年安忍獨自洲危岩陡戋削下有千仞汨

㶁之激湍用力倏擧趾渢渢抵其淀陽侯不

敢阻海若爲其殿紅濤碧浪千萬人天風海

瀾爲之相後前明沙素礫湛然處鬖髿亂髮

側身偃於衆礁間相逢涙如鉛相襯卸其環

鉤手直其前赤紧抱其身海濤一輪三萬月

晃朗照之開水漘容與且翶翔灧灧澦澦薄

言浮游乎始渰之瀆妾心今始諒妾願今始

贖君不見靑陵臺上歿飛鳥于荒萬劫此節

此烈不可泐

歲丙辰復月下浣 延安 李炳勖稿

金寧 金煥翼書

 

천서각 서문과 시

어떤 열녀가 용남군 산양면 해평리의 한 장정에게 시집을 갔다.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익사하였다. 열녀는 변고를 듣고 남편이 가라앉은 곳을 알아낸 뒤, 고개를 숙여 남편을 따라 투신하였다. 사흘 만에 죽은 채로 떠올랐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슬퍼하며 시신을 거두어 남편과 합장하였다.

그런데 그 마을의 나뭇잎들을 벌레가 갉아먹어 '열녀(烈女)'라는 두 글자가 전서(篆書)체로 새겨졌고, 이것이 사방 산천에 가득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이를 '하늘이 쓴 글씨(天書)'라 불렀으니, 하늘을 감동시킨 열렬한 정조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조아(曺娥)가 아버지를 업고 나온 일과 사건은 다르지만, 그 정조와 대의는 천고에 나란히 할 만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씨와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이 '해평녀'라 부르며, 그 사실이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정해년(1887) 연간에 고을 사람 허몽호(許夢湖)가 가산을 내어 사당을 세우고 논을 사서 제사를 받드니, 비록 조정의 정려(정문)는 늦어지고 있으나 하늘의 도리가 끊이지 않음이 가상할 따름이다. 어느 날 김환익 군이 관각(舘閣)의 여러 어른께 현판 글귀를 청하고, 열녀의 행장을 소매에 넣어 서울의 가난한 내 거처로 찾아와 시와 글을 청하였다. 사양하다 못해 마침내 시를 지어 보내며 다음과 같이 읊는다.

바닷물은 만 길이나 깊고, 바다 암석은 천 길이나 곧은데 혼은 바다 물결에 맺히지 못하고, 넋은 떠나가 버렸구나. 바다 구름 검게 드리운 곳, 눈동자 맑고 하얀 치아의 여인이 있는 듯하니 비단 소매 나부끼며 바닷가를 거니네.

바닷가여, 머무를 수 없구나. 그 아래엔 천 척의 층층 시퍼런 물결, 상어와 고래 무리가 서로 치받고 싸우네. 남편은 배를 저어 물굽이를 찌르는데, 갑자기 휘몰아치는 광풍에 세상이 뒤집히네. 우뚝 솟은 돛대도 잎사귀보다 가벼워지니, 큰 돛 작은 돛 모두 썩은 나무처럼 침몰하네.

깊은 바다 구렁 속으로 몸은 거센 물결과 함께 씻겨가고 남편은 이미 용궁의 신하가 되었구나. 백 년 세월을 어찌 참으며 홀로 이 섬에 머물겠는가. 위태로운 바위 깎아지른 듯 서 있고 그 아래엔 천 길 소용돌이치는데, 세찬 여울물 속으로 힘껏 발을 내디뎌 풍덩 소리 내며 깊은 곳에 닿았네.

바다의 신도 감히 막지 못하고 해약(海若)이 뒤를 호위하니, 붉고 푸른 물결 천만 사람이 지켜보는 듯, 하늘 바람과 바다 물결이 앞뒤로 따르네. 밝은 모래와 깨끗한 자갈 잠잠한 곳에, 더부룩한 머리칼 흩뜨리고 여러 바위 사이에 몸을 뉘었네.

(꿈속인 듯) 서로 만나니 눈물은 납똥처럼 떨어지고, 서로 곁하며 팔찌를 풀어 놓네. 손을 맞잡고 그 앞으로 나아가 남편의 몸을 붉은 띠로 꽉 껴안으니, 바다 위 둥근 달이 온 세상을 비추고 환한 빛이 물가에 열리네. 유유히 노닐며 높이 날아올라 넘실거리는 물결 위를 떠다니며, 처음 빠졌던 그 물가에서 이제야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고 소원을 풀었구나.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청릉대(靑陵臺) 위에서 죽어 날아가는 새를. 거친 세상 만겁의 시간이 흘러도 이 절개와 매서움은 결코 지워지지 않으리.

 

병진(1916) 11월 하순

연안 이병욱(李炳勖) 짓고

김녕 김환익(金煥翼)

 

[주석]

百年安忍(백년안인): '백 년을 어찌 참는가'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 고독이나 역경을 견뎌온 화자의 정서가 담겨 있다.

獨自洲(독자주): '홀로 있는 모래섬'. 세상과 떨어진 고립된 처지를 비유한다.

危岩陡戋(위암두잔): 험하고 위태로운 바위가 가파르게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다.

千仞汨(천인골): '천 인()'은 아주 깊은 깊이를 의미하며, '()'은 물이 세차게 흐르거나 소용돌이치는 모양을 뜻한다.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중건기

 

重建記

海坪烈女閣創建以來 第三次重建完工함으로 萬古烈女婦道表象烈女閣累代春秋祭享으로 致誠하고 保存連綿코자 保存會員一同表記

戊午 一九七八年陰三月初三日

海坪烈女閣保存會

會長 成福云

總務 鄭正浩

會員 鄭南奎, 成云伊, 李圭煥, 池太萬, 嚴鶴來, 朴淳祚, 鄭秋和, 宋命允, 朴東浩, 丁洪凡, 成天云, 嚴鶴祚, 鄭世奎, 成良云, 張道天, 具福根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천서만고

 

天書萬古

正一品輔國崇祿大夫原任 奎章閣提學 八十二翁 海鹵堂 金聲根書

 

천서만고(天書萬古) 하늘의 글(진리의 기록)은 만고에 영원하리.

정일품(正一品)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 규장각 제학(提學), 82세 노인 해로당(海鹵堂) 김성근이 쓰다.

 

[주석]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18351919)의 묵서현판 글씨와 '八十二翁 海鹵堂' 도서와 '金聲根印' 낙관이 있다.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는 조선 시대, 정일품의 문무관, 종친, 의빈의 벼슬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위세인칙

 

爲世人則

崇祿大夫前判敦寧院事 尹用求書

 

위세인칙(爲世人則) 세상 사람들의 법칙(본보기)이 되다.

숭록대부(崇祿大夫) () 판돈녕원사(判敦寧院事) 윤용구가 쓰다.

 

[주석]

윤용구尹用求(1853~1939)의 호는 석촌(石村)ㆍ해관(海觀)ㆍ장위산인(獐位山人). 예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지낸 뒤,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 밑에 은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특히 해서(楷書)ㆍ행서(行書)ㆍ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다.

 

2024.3.9.통영 해평열녀사당 축문

 

祝文(축문)

()

이제,

歲次丙戌年陰九月甲申朔九日壬辰(세차병술년음구월갑신삭구일임신)

해의 차례가 바뀌어 병술년(2006) 음력 99(초구일),

海坪烈女保存會長(해평열녀보존회장)

해평열녀보존회장

成正吉(성정길) 敢昭告于(감소고우)

성정길은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顯考海坪烈女婦人(현고해평열녀부인) 世存遷易(세존천이)

해평의 열녀 부인이시여, 세상의 세월이 흐르고 바뀌어

登考諱日(등고휘일) 復臨(복림)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追遠感時(추원감시) 不勝永慕(불승영모)

지난날을 추모하고 때에 맞는 감회가 일어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謹以淸酌(근이청작) 庶羞(서수) 恭伸(공신) 奠獻(전헌)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제물을 공경을 다해 올리며 제사를 받드오니,

尙 饗(상 향)

부디 흠향하시옵소서.

 

출처와 참조

해평열녀제와 우럭개 매구-통영문화원(2021.12)-김일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