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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향교와 은행나무

『합천향교陜川鄕校』는 세종 때 세워졌으며, 1881(고종 18)년에 합천에 홍수가 들어 합천군청을 합천읍에서 야로면으로 옮기면서 향교도 함께 옮겨 왔는데 이후 합천군청은 합천읍으로 다시 돌아 갔지만 향교는 야로면에 그대로 남게 되어 지금까지 합천향교로 이어지고 있다. 『합천향교陜川鄕校』는 평지에 위치하여 명륜당明倫堂의 좌측에 대성전大成殿이 나란히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외삼문인 영귀루詠歸樓 안에는 동·서재는 없고 명륜당만 있으며,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향교를 지킨 정씨부인의 사당이 있다. 대성전 영역은 담장을 둘렀으며, 내삼문을 들어서면 동·서무가 있고 대성전이 위치하는데 이는 교육기능이 쇠퇴하고 제례 기능만 남았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명륜당明倫堂의 마당에는 은행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높게 솟아 있는..

합천 가남정과 사우정 느티나무

합천 야로면冶爐面 하림리 753(빈연길 7-9)에 위치한 가남정伽南亭은 사우정四友亭이란 현판도 함께 붙어있는데 야로면冶爐面에서 해인사 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 가야천 변에 마을과 떨어져 독채로 있다. 가남정伽南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 정인함鄭仁涵(1546~1613)을 도와 공을 세운 문암文庵 정인기鄭仁耆(1544~1617)·금월헌琴月軒 정인함鄭仁涵·우천愚川 정인휘鄭仁徽(1548~1606)·낙재樂齋 정인지鄭仁止(1550~?) 4형제를 모시고 추모하는 곳으로 ‘사우정四友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738년 서산정씨瑞山鄭氏의 시조와 4형제를 우계리에 세덕사를 세워 모시기 시작했고 1862년 운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는데 1919년에 가남정伽南亭을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입..

합천 강양향교 江陽鄕校

합천 강양향교江陽鄕校는 1965년 합천읍 합천리 690-2(충효로1길 5-12)인 이 장소에 새로 지었는데 현재 문화재자료 제210호로 지금까지는 문화재로 등록된 향교 중에서 가장 늦게 지정된 향교이다. 합천의 중심지인 합천읍에 합천향교가 있었는데 1881년(고종 18년) 큰 수해가 나서 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자 향교도 야로면으로 옮기고 합천향교라 이름했다. 그 후 다시 군청을 옮겨오면서 향교를 그냥 두었다가 야로면의 “합천향교”를 옮기려 하자 야로면의 반대로 이전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합천·용주·율곡·대양면의 유림들을 위해 현재의 위치에 향교를 지었는데 야로면의 합천향교와 구별하기 위하여 “강양향교”라 했다. 이곳은 언덕의 정상부에 평삭平削한 좁은 땅이라 일반적인 향교처럼 ‘전학휴묘前學後廟’의 형태가 아..

고운 최치원 가야산 신선이 되다

『고운 최치원 가야산 신선이 되다』는 2015년 12월에 합천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발행하고 역은이는 이병생, 감수 윤한무, 발행인 전정석이 제작한 책이다. 권두에 합천문화원 전정석 원장의 발간사를 붙였고, 향토사연구소장 이병생의 ‘책머리에’를 붙인 후 ‘최치원 선생의 생애’와 ‘가야산 내 발자취’ ‘문헌설화’, ‘지역의 전설’, ‘시’, ‘경학대장’, ‘난량비서문’, ‘기문’ 등을 실었다. 책은 떡제본으로 크기는 가로 189cm, 세로 259cm이며 272p이다. 이 책은 2024년 3월 합천문화원의 배려로 소장하게 됐다.

합천의 문화유적 文化遺蹟

『陜川의 文化遺蹟』은 2000년 12월 합천문화원 권병석權丙錫 원장이 발행하고 유영기柳泳基 사무국장이 편집을 했으며 교육사가 인쇄 간행한 책이다. 권두에 권병석權丙錫 원장의 발간사를 붙였으며, 합천군수 강석정과 의장 이민택의 축간사를 싣고 문화제 현황을 붙이고 목차를 넣었다. 말미에 편집 후기가 실려있다. 책은 떡제본으로 모두 컬러판이고 크기는 가로 211cm, 세로 296cm이며 165p이다. 이 책은 2024년 3월 합천문화원의 배려로 소장하고 있다.

합천의 정려 陜川旌閭

『陜川의 旌閭』는 2013년 12월 합천문화원을 발행처로 차판암車判岩 원장을 발행인으로 하여 편집위원 윤한무尹漢武 외 4명이며 세기사에서 간행했다. 권두에 차판암車判岩 원장의 발간사를 붙이고, 「합천의 정려 기준」을 싣고 각 면단위로 목차를 붙였으며 말미에 윤한무尹漢武 향토사연구소장의 편집후기를 달았다. 책은 떡제본으로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0cm이며 544p이다. 이 책은 2020년 5월에 합천문화원의 배려로 소장하게 됐다.

陜川神道碑 합천신도비

『陜川神道碑 합천신도비』는 2010년 2월 합천문화원을 발행처로 차판암車判岩 원장을 발행인으로 하여 편집위원은 한두석韓斗錫 외 3명이며 세기사에서 간행했다. 권두에 차판암車判岩 원장의 발간사를 붙이고, 합천군수와 김영수金英洙 유림회장의 축간사를 실었으며, 「신도비神道碑 란」이라는 신도비神道碑가 무엇인지 설명과 함께 비석사진, 내용요약, 원문, 번역문을 순서대로 실었다는 해설을 했다. 부록으로 관직官職을 설명하고 상식적 용어들을 해설해 두어 이후 조선시대의 관직에 대한 이해를 돕게 했다. 책은 떡제본으로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0cm이며 137p이다. 이 책은 2022년 6월 합천문화원에서 택배로 보내 주어 소장하게 됐으며 택배비는 4500원이다.

합천문인록 陜川文人錄

『陜川文人錄 합천문인록』는 2013년 3월 발행처와 발행인을 차판암車判岩 합천문화원장으로 하고, 편집처는 합천문화원부설향토사학회 허종만許宗萬 회장 외 3명이며, 세기사에서 간행한 책이다. 책의 권두에 차판암車判岩 합천문화원장의 발간사가 있고 향토사학회 허종만 회장의 ‘발간에 즈음하여’를 붙인 후 목차를 붙였는데, 가나다 순으로 문인文人의 이름을 실었다. 강씨 9명 중 8명의 이름은 우리집 족보에 직계와 방계로 나오는 분들로 진천군 중시조 강위상姜渭祥, 화재공和齋公 강인수姜仁壽, 당암공戇庵公 강익문姜翼文(1568~1648), 구주공鷗洲公 강대적姜大適(1594~1678) 등은 직계이고 한사공寒沙公 강대수姜大遂(1591~1658), 경호공鏡湖公 강대연姜大延(1606-1655) 형제는 강익문姜翼文의 첫째와 막내..

합천의 입향조 入鄕祖

『합천의 입향조』는 2013년 3월 합천문화원을 발행처로 하여 발행인은 차판암車判岩 합천문화원장이고, 편집인은 이성동李星銅 외 4명이 했으며, 세기사에서 간행한 책이다. 권두에 차판암車判岩 합천문화원장의 발간사가 있고, 책에 싣는 ‘입향조 기준’를 붙였으며, 합천을 본으로 하는 득성조得姓祖를 먼저 넣고, 관향으로 하는 성은 가나다 순으로 실었다. 책은 떡제본으로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0cm이며 195p이다. 이 책은 2024년 3월 합천문화원의 배려로 소장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본 합천 지명

『조선왕조실록에서 본 합천 지명』은 2014년 12월에 발행처를 합천문화원으로 하고 발행인 차판암 문화원장, 편저자 이재형, 편집인 이성동·윤한무, 새기사가 인쇄해 간행했다. 표지에 「시명지보施命之寶」의 직인을 넣고 권두에 합천문화원장차판암의 발간사와 향토사연구소 국정菊亭 이재형李在珩의 서언序言을 붙였다. 목차는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부록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택리지, 문헌에서 찾은 합천·초계·삼가의 지명 수, 실록 연대일람표를 붙이고 편집후기를 달았다. 책은 떡제본으로 크기는 가로 182cm, 세로 255cm이며 416p이다. 이 책은 2024년 3월 합천문화원의 배려로 소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