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구산면 수정리 전주이씨 승유재 承裕齋

천부인권 2020. 2. 22. 12:36



2020.2.18. 수정리 승유재承裕齋 전경


구산면 수정리 838-2번지(수정2길 70)에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완창대군파 밀춘군密春君 척陟을 모신 승유재承裕齋가 위치한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0m을 표시하고 「위도 35°07′21″N 경도 128°34′35″E」를 기록한다. 전번 수정리 일대를 탐방할 때 미처 찾지 못한 곳이라 첫 번째 목적지로 정하고 접근 했다.
다행히 열쇠가 있어 대문인 열화문悅話門을 열고 본당인 승유재承裕齋에 접근하여 기문 등을 기록하게 되었다. 승유재承裕齋의 위쪽은 논이라 보의 물이 재각의 뒤쪽을 흘러 대문인 열화문悅話門 방향으로 흘러 습기가 많은 곳이기도 했다.




2020.2.18. 수정리 승유재承裕齋에 접근한 모습



대문인 열화문悅話門 입구



열화문悅話門 편액



전주이씨 재실 승유재承裕齋 모습



승유재承裕齋 편액



승유재承裕齋 주련




承裕齋記
余以大同譜務僑居大田 族丈晳模璨模氏 以宗事來曰 吾族之居昌原者 世厥悠久 而椒聊不甚菴過五六十矣 累代香火之黃 而迄無所房齋宿 則所爲霜露之感者云 如之何哉 不揆綿力 乃占先生塋所近 雲仍所居之中 屈發山下曠奧之地 築三間四楹 以爲修歲事會賓族肄 兒孫之所 而門名於余作而 嘆曰善哉一乃 心力醵而食 其工迭而役 其力不㫷年而突兀 其視蕃門强族之仞堂尺題誠力已萬萬也 而齋之名自在 奚必他求哉 因以名齋曰承裕 門曰悅話矣 旣而請之懇曰 子孫旣名 其齋願發明 其義使複承以知 今日命名之義焉 余在同根之誼 不勝栢悅而曰 承資後承先也 裕者先裕後也 承先而不失 籩豆之供於祖宗裕後而不墜箕裘傳於子孫 則孝慈之心油然感生 而承裕之道於是乎 盡且至矣 弟念承裕之道 莫先於繼人志述人事 而庸非密春君之氣 脈之所遺乎 盖密春君寔 我藝祖創業時 以忠孝之恣 族親之班 從太宗契誼密勿贊翊弘多 而曾有丹書 鐵券之頒 像贊詩贈之恩矣 則豈不題且盛哉 凡爲後承者 信勿以芝醴之有根源而自請時 時會於斯齊宿於斯之齋勵胥勗上 而克承祖宗之志事下 而益裕子孫之謨 猷思所以无恭乎 因夜則李園之樂事 栗里之情 話庶專美而固不愧乎 承裕悅話之多矣 盍相勉哉是役也 總其務而操縱者 贊模氏如終賢勞者晳模氏云
歲在 乙卯十月上浣
族人鎭白謹記


승유재기承裕齋記
내가 대동보 일로 대전에서 우거하고 있는데 족장族丈석모晳模찬모璨模씨가 종중일로 와서 말하기를 우리 일족이 살고 있는 창원은 여러 대로 오래되어도 자손의 번성은 불과 오륙십호이다. 여러 대로 누른 향을 피움에 마땅한 장소가 없어 흩어져서 재숙齋宿하니 그 소이 상로절霜露節에 느낌이란 것을 어찌 말을 하랴 작은 힘에 높은 집은 짓지 못하고 이에 묘소가 점점이 있는 곳 가까이 후손들이 살고 있는 안에 굴발산屈發山¹⁾ 아래 넓고 그윽한 터에 삼간집을 지었다. 연중행사를 다스리고 손님과 친족을 모으고 아이 손자들에게 글을 읽는 곳이라 하고 문의 이름을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감탄하여 말하길 옳도다하였다. 마음과 힘을 길러 밥을 짓고 그 공사를 번갈아 부역을 하여 일년의 돌이 되기 전에 높이 솟았으니 그 우거진 집안 강한 씨족들이 한자한자 포개어 한길의 집을 이루는 정성과 힘이 만만하였다. 재실의 이름도 스스로 있음이니 어찌 다른 곳에서 구할 손가 인因하여 재실의 이름은 승유承裕라 하고 문門의 이름을 열화悅話라 하였다. 이미 청한 것에 간곡하게 말하기를 자손들이 이미 정한 재실 이름에 그 뜻을 명확히 해주기를 원하기에 다시 이음으로 하여금 오늘의 명명의 뜻을 알리라. 나는 같은 뿌리의 의로써 곧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기를 잇는 것은 후손들이나 선조들이 있었고 너그러이 한 것은 선조들이니 후손도 너그럽다. 선조를 이어서 조종祖宗²⁾에 제사 받침을 잃지 않으면 후손도 너그러이 선조의 가업을 자손에게 전함인즉 효도하는 어진 마음은 구름일 듯 일어남이니 너그러이 잇는 도道는 이에 다하고 또 다다랄 것이니라. 경건히 생각하건데 너그러이 잇는 도道는 선인의 뜻을 이어 폄이 사람의 일로 아주 먼저이다. 범상이 아닌 밀춘군密春君³⁾의 기맥이 물러 내린 곳이다. 대개 밀춘군 이분은 문덕을 갖춘 우리의 선조로 창업시에 충효의 자질로 족친에 나뉘었고 태종太宗 때에 들어 종유하였고 정치에 힘써 도움이 넓고 많아 붉은 글로 쓴 철권鐵券⁴⁾을 내려 퍼트렸고 칭찬의 시詩로 은혜를 주심인 즉 어찌 또 성하다 아니하랴 뭇 뒤를 이으려는 자 진실로 향기롭고 감미로운 근원이 있지 아니해도 스스로 청하고 때때로 모여 재계하고 묵은 이 재실에 서로 힘써 도우면 위로는 조종祖宗의 뜻과 일에 극진히 이음이요. 아래로는 자손을 꾀하는 일에 너그러움 더하리라. 생각 하는 바 욕됨이 없음에 말미암아 반면 곧 이원李園⁵⁾에서 즐거운 일과 율리栗里⁶⁾의 정다운 말은 거의 온전한 아름다움이니 진실로 부끄럽지 않게 너그럽고 정겨운 말 많이 할 것이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아니하랴 전체적으로 그 일을 다룬 자는 찬모贊模요 끝까지 현명하게 노력한 사람은 석모晳模씨라 했다.


【주석】
굴발산屈發山¹⁾ : 구산면 수정리 산 84-1번지 정상의 산을 말하며 해발 200M가 되는 뒷산 이름.
조종祖宗²⁾ : 대대로 이어진 할아버지
밀춘군密春君³⁾ : 밀춘군 척(陟)은 태종대왕과 동갑계원(同甲契員)으로 호조판서를 제수 받았다. 배유자는 한양漢陽 조돈趙暾의 따님이다.
철권鐵券⁴⁾ : 임금이 공신에게 주는 쇠로 만든 패
이원李園⁵⁾ : 대대로 선조께서 고향에 오얏나무를 심어 동산이 된 것을 의미함.
율리栗里⁶⁾ : 도연명의 고향을 뜻하며 즉 선조가 사신 고향마을을 뜻함.





承裕齋 原韻
崛發山高景氣淸
翼然白閣錫嘉名
季園不絶叙倫樂
栗里何多悅話情
船笛近揺簷角去
晶川細入礎根鳴
克承克裕方無愧
感慕年年孝祀成
歲在丙辰八月旣望
族人鎭白謹稿





密春君事蹟
恭愍王丁未生으로 太宗替卽時에 同甲契員二十一人中의 一人이시다. 太宗卽位後에 贊辭를 下賜하시고 또 丹書鐵券으로 二十一人에게 頒賜하시며 戶曹判書를 贈하시다.

太宗大王御製贊
吾東淑氣 우리 동방에 맑은 기운 있으니
毓鍾賢姿 쇠북이 자라나 어진 자태 드러나네.
溫淳恢器 따뜻하고 순박하나 그릇은 크고
良確風儀 어질고 확고함이 겉으로 드러나네.

太宗大王御製
漢封二八大功臣 한나라 28명 큰 공신 봉하였고
剙業當年賴此人 창업한 그 당년에 이분들 힘입으니
今吾甲契惟三七 오늘 오직 나의 갑계원 21명은
三角山崩誼不泯 삼각산 무너져도 義는 변치 않으리.




승유재承裕齋 뒤쪽에서 본 모습



출처 및 참조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