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53

신통한 할배, 할매 미륵불을 모시는 합천 삼가 원금마을

경남 합천군 삼가면 원금마을에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할배미륵과 할매미륵이 지금도 마을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정월 초사흘에는 원금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이곳의 지명은 금리(錦里)로 불리고 있는데, 삼가읍을 둘러쌓고 있는 산이 금산으로 멀리서보면 여자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금리 안에는 원금, 상금, 하금마을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할배, 할매 미륵불은 황매산에서 삼가읍으로 들어오는 원금마을 입구인 남쪽 끝 가수교(嘉樹橋)와 만나는 삼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가수교가 놓이기 전에는 삼가면에서 황매산 방향으로 오가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원금마을 입구에서 나쁜 액은 물리치고 좋은 것만 들어오라는 구복신앙의 믿음으로 세웠을 것으..

'대구바다'는 우리 동네 지명이다.

대구바다는 우리 동네 지명이다.창원시 지귀동 일원의 옛날 지명이 ‘대구바다’였고, 현재 허&리 병원 자리는 염창(소금 창고)이 있던 곳이다. 명곡이란 지명은 아마도 소금창고를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창원읍지에 의하면 ‘대구바다’란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다가 대구가 올라오면 빨래방망이로 내리쳐서 잡았다는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에는 지귀상가 근처에 지이포가 있었고 이곳은 바다였다 요즘 대구 한 마리에 4만~7만 원 정도에 거래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지금도 마산 앞바다에서 몽둥이로 대구를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할까? 물고기가 흔하던 옛날에는 누구나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에 대해서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대구바다’에서 처럼 대구..

고인돌과 회화나무

사림동 79-6번지에 가보면 이 땅에 600년의 생명을 이어온 신목의 뿌리와 엉켜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졌으나 그 위용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 고인돌에 [퇴촌 괴헌정]이란 글귀와 광무9년 을사년(1905년) 3월에 새겼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불과 7개월 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 민족의 비극인 조선이 망하는 안타까운 해이기도 하다. 창원의집 출신인 안희상(51세)씨에 의하면 “창원의집 뒤편 야산에 있던 것을 공단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옮겨 둔 것이라고”전한다. [槐軒亭]이란 말 그대로 회화나무가 정자의 처마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이다. 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운이 흘러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