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 1264

몰운대 다대진 동헌과 정운공 순의비 탐방

아미산 응봉봉수대에서 친구와 산책 온 그 동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다대진성 객사”를 찾으러 가니, 네비는 몰운대 주차장으로 안내를 했다. 다른 분들에게 물으니 객사가 몰운대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올랐더니 처음 출발지처럼 경사가 조금 있는 동헌 건물을 가기 전에 동래부사를 지낸 이춘원(李春元,1571∼1634)의 몰운대(沒雲臺) 시비가 있어 여기에 옮겨 둔다. 沒雲臺 浩蕩風濤千萬里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만리로 이어지고 白雲天半沒孤臺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 부상(扶桑)¹⁾의 새벽해는 붉은 수레바퀴처럼 常見仙人賀鶴來 언제나 신선은 학을 타고 나타나 오시네 九畹 李春元 朝鮮 宣祖 四十年 東萊府使 (구원 이춘원 조선 선조 40년 동래부사) ​【주석】 부상(..

단양 도담삼봉 島潭三峯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회의를 지방에서 처음으로 단양에서 열 개 되어 부울경지역회원들도 참석을 하게 됐다. 창원시역에는 총 6명의 사료조사위원이 있는데 이번에는 4명이 참가하고 자가용으로 이동 수단을 이용하기로 해 김해지역 위원 1명도 포함해서 5명이 한차량으로 이동하게 됐다. 새벽 5시에 출발하자고 해 출발하여 단양에 도착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배위원의 건의로 국보(1979.05.22.)로 지정된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를 탐방하게 됐다. 이 탐방은 다음에 기록하기로 하고 전국회의 중 잠시 짬을 내어 다녀온 단양 팔경의 하나이며, 명승 제44호인 도담삼봉(島潭三峯)의 이야기를 먼저 남긴다. 도담삼봉(島潭三峯)은 개인적으로 몇 번을 갔다 왔지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이번에도 기록하지..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수원백씨 벽양재 碧陽齋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347-1(대암로171번길 49)에는 수원백씨水原白氏 중시조 별좌공파別坐公派 옥계공계玉溪公系의 백창직白昌稷을 1세로 하여 그 후손들이 선조의 영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재실齋室인 벽양재碧陽齋가 위치한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83m, 좌표는 35°12'52"N 128°42'38"E를 가리킨다. 창원의 역사를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창원의 누정樓亭을 찾아보게 됐는데 정작 내가 살았던 지역은 천지개벽을 하여 원주민들의 재실은 없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나마 창원 주택지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재실을 발견하였고 지금에서야 창원의 본래 주인들을 찾아본다. 지금 수원백씨 재실을 관리하는 백성웅 친구의 도움으로 벽양재를 둘러보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 능력이 부족하여 더 많은 정보와..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루 岳陽樓

악양루岳陽樓는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 122에 위치하며 중국 후난성 웨양시의 동정호洞庭湖가 보이는 곳에 건설한 악양루岳陽樓의 경치와 비교하며 함안군 서촌리 남강南江과 함안천咸安川이 합수하는 곳의 함안천 절벽 위에 1857년 안효순安孝淳(1790~1846)이 지은 정자에 그의 손자 안정호安廷鎬(1884~1938)가 기문을 의뢰해 걸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63년에 그 손자 안판수安判洙(1914년 9월 22일생)가 고쳐 지었고, 2003년 문화재청의 중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판수의 적명籍名은 안상수安祥洙이다.1857년 악은처사안공岳隱處士安公이 창건했을 때 의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전해지고 지금은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峯(1908~1991)의 글씨인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이 정면..

창원부의 사라진 소루 小樓

우연히 구입한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 선생의 문집에 창원부소루기(昌原府小樓記)가 실려 있어 옮겨 적어 둔다. 창원부 고지도에는 소루라는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 昌原府小樓記上即位 十有八年于兹矣日 御經筵 潛心聖學 所以挽回 唐虞三代之治于今之世 猶慮赤子 之無告也 何以保之 風俗之澆漓也 何以化之曰 守曰 令皆吾分憂者 惟爾銓曹其愼揀之凡 賢士大夫之在六部在臺閣者 亦皆分授而列於郡縣 盖重其邦本也 吾同年 申公末舟 纍世勲閥 文武全材 上之眷待隆矣 一朝特授昌原公聞 命郎行下車之日 首除苛政宣希 德音政平 訟理 民樂爲用 顧府之館舍 經營既久 頹圮亦多 無以慰王人之鞅掌者 於是鳩材備瓦役 人吏之入番者 始工於 甲辰仲秋斷手於 乙巳季春 寝房内外 合閣前後中廳 行廊 南廳 中廊 東軒之 隅又起 高樓三間 其規模制度 皆出心匠榱題 丹艧輝暎鮮明 若夫火傘張空 流汗..

남해 망운산 망운사 望雲寺 주련

남해에 문중 재실이 있는지 알아보고 겸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망운산봉수대를 찾으러 갔다가 찾지 못하고 예전에 영상으로 봤던 망운사望雲寺를 찾았다. 망운사는 돌일주문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찾아보니 입구에 일주문一株門을 세웠고 절집의 이름을 전면에 “望雲山望雲寺”라 편액하고 뒷면에는 “不二門”이라 편액하여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라 이러지만 그 본뜻은 ‘진리란 말’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양 기둥에 대련을 달았는데 그 뜻은 이러하다. 一株門 對聯 일주문 대련 入此門內莫存知解 이문 안으로 들어오면 아는 체 하지마라 無解空器大道盛滿 아는 것이 없는 빈 그릇이 큰 도를 이룬다. 불이문을 지나 너들강을 건너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에 돌일주문이 암반위에 세워져 있다. 돌일주문의 패..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예천권씨 초간정 草澗亭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용문경천로 874)에 대구부사大丘副使, 승정원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를 역임하고 초간일기草澗日記 등 문집을 남긴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49세 때인 1582년에 창건하고 도승지 박승임朴承任이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26년에 아들 죽소공竹所公이 초가집 몇 간으로 다시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붕괴 되었다. 그후 1739년 세 번째로 세운 것이 현재의 모습을 한 초간정이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174m, 좌표는 36°42'05"N 128°22'55"E를 가리킨다. 초간정草澗亭은 금곡천金谷川이 바위를 만나 휘돌아 가는 계곡의 상부에 위치하며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개천으로 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를 했다. 초간정草澗亭을 ..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함양박씨 영사정 永思亭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352(금당실길 127)에 함양박씨 금당 입향조 박종린(1496~1553)을 모시기 위해 건립한 추원재 옆 영사정永思亭은 그 후손들이 1940년에 세운 정자이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141m, 좌표는 36°41'38"N 128°246'31"E를 가리킨다. 영사정永思亭은 입향조 박종린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금당실의 함양박씨 문중 사람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정자이다. 건립 내력과 취지를 담은 영사정기에 의하면, 정자의 이름은 『시경』 대아大雅 하무 편의 永言孝孝思維(길이 효도할 마음을 생각하니, 효도하려는 생각이 준칙이 됨이라)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영사정의 건물과 담장 등의 모양을 보면, 상주에서 박눌이 다섯 아들을 공부시켰던 모정과 유사하다. 이는 벼슬에 올랐지만 뜻을 이..

高麗推誠致理翊戴功臣金紫興祿大夫兵部尙書兼太子太傅上柱國天水縣開國男食邑三百戶贈太子太師諡殷烈姜公遺墟碑銘 幷序

晦堂先生文集卷之三十三 / 碑銘 高麗推誠致理翊戴功臣金紫興祿大夫兵部尙書兼太子太傅上柱國天水縣開國男食邑三百戶贈太子太師諡殷烈姜公遺墟碑銘 幷序 晉陽軍治東玉峯開慶之鄕。此殷烈姜公嶽降之地也。公諱民瞻。元尹甫能子。妣愼氏。高麗光宗癸亥公生。甫成童入鄕校。講詩書禮樂。四十三登文科。顯宗庚戌。契丹入寇。進兵西京。王南遷。公與統軍趙元死守孤城。虜解圍去。壬子女眞陷淸河諸州。公督兵擊走之。及大中祥符間。中國患契丹侵凌。徵兵本國。公以副元帥大捷而還。戊午契丹將蕭遜寧。將兵大至。姜邯贊爲上元帥。公爲副。伏奇兵山谷中。又以大繩貫牛皮塞城東川。賊兵至。决塞伏發。大破之。己未與丹兵戰於盤嶺。僵尸蔽野。大獲器仗。自兵興以b149_046d來。未始有此捷之盛也。凱還。王親迎于迎波驛。結彩棚備御樂。大饗將士。金花八枝。親揷兩將之頭。宣醞以勞之。擢拜公銀靑興祿大夫鷹揚上將軍上柱國天水縣開國男食邑三百戶。明年賜..

아희원람 - 창시 創始2 (면류관)

冕 黃帝作 冠上有覆前後有旒 夏冕曰收 殷冕曰冔 면류관[冕]: 면류관은 황제가 만들었다. 왕관 위에 덮개가 있고앞뒤에는 주옥을 꿴 술이 달려 있다. 하나라 때의 면류관을 수(收)라하고, 은나라 때의 면류관을 후(冔)라 한다. 袞衣黄帝作 繪龍山華蟲火宗彛五章 天子之龍 一升一降 上公但降龍 龍首卷然故名 곤룡포[袞衣]: 곤룡포는 황제가 만들었다. 용과 산과 꿩과 불, 종이 등 다섯 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천자는 용이 한 마리는 오르고 한 마리는 내려오고, 상공은 내려오는 용만 있다. 용의 머리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 곤의라고 이름 지었다. 緇布冠 太古冠也 其制僅可撮髺 치포관(緇布冠): 치포관은 태고 때부터 사용되던 관인데, 치포관으로 인해 비로소 상투를 틀 수 있게 되었다. 笠子 制自古之臺笠 갓[笠子]: 삿갓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