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告由文
忠翼公 忘憂堂 郭先生 追慕時 告由文
維歲壬辰 距穆陵當亂之六周 三百六十一年也 爲紅衣將軍忠翼公報德閣之役 設追慕會於閣前 人衆也 以成榮台 布奠燒香斟酌而祭之 咸鞠躬而專拜爲禮 即夏曆十一月四日 庚子 其文曰 人以地勝地 以人名 惟此岐江洛汾合榮 在昔壬辰 島倭用兵蹂躙至 此渡江欲右時 有忠翼倡義鄕 糾兵不在多 有將用奇 彼之所畏 天降紅衣 溯流以西 津曰鼎嚴 二舍要害 閃忽戰酣 誘之殲之 人手無出 十七名將二千 其卒矧爾 翼虎亦在鼎幕 江水殷紅 駿馬踊躍 洛江左右 戰闘數百 孤軍不挫 以遏衡襲 陸海同功 曰有忠翼 山湖兩南賴保以謐 丁酉又亂 釋兵奉喪 迢迢蔚海 鄙事鞱光 亂機欲定 時事滄桑 忠武李落 翼虎金碎 當時名將 公惟是 在鎻鑰西北 年病告退 餐松休粮 無關人世 是以免夫 不觸罪戻 漢有子房一般 高風明儒 史筆載稱 斯翁三韓 血氣皆知 載功久矣 吾鄕片石畵閣 岐江之上 砥山之側 忠翼魏勳 于斯發迹 是以誌之 昭揚不忘 中間日政義 而無障 維新之會 夫何頹唐 六六回甲 玆値壬辰 大德追慕 冬暖如春 鄕人會拜 式場繽紛 豈特而己 學有淵源 敬義詮自來 曺門出處 光明功業 炟赫 夫其考終 智慮攸策 鴻飛冥冥 弋人何成 言念往事 心寒夢驚 人家祖先 孰非蒙惠 布奠傾觴 先生是祭 涙流滂滂 非吊伊感 天地爲愁 草木帶慘 今又亂離東西 波盪子弟之憂 千萬 疇曩先生 泉下或思可 作瞻望江天 平沙漠漠 地勝人名 萬古岐音 有來精靈 驗之楓林 今人古人 何以爲心 山高水長 挹風盈襟 嗚乎 噫噫 庶幾歆享

고유문(告由文)
충익공 망우당 곽선생을 추모하며 올리는 글
세월은 임진년, 선조(穆陵)께서 임진왜란을 당하신 지 여섯 번의 갑자가 돌아온 삼백육십일 년이 되는 해입니다. 홍의장군 충익공의 덕에 보답하고자 지은 보덕각의 역사(役事)를 위해 그 앞에 추모회를 여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성영태(成榮台)가 제물을 차리고 향을 피우며 술을 따라 제사를 지내니, 모두가 몸을 굽혀 오로지 절하며 예를 올립니다. 때는 음력 11월 4일 경자일입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땅은 사람으로 인해 빼어나고, 사람은 땅으로 인해 이름이 나는 법인데, 오직 이곳 기강(岐江)은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영화로운 곳입니다. 옛날 임진년에 섬나라 왜적이 군사를 일으켜 이 땅을 짓밟고 이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나아가려 할 때, 충익공께서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키셨습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고 장수가 기이한 전술을 사용하니, 저들이 두려워하는 바는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이었습니다.
흐름을 거슬러 서쪽으로 나아가니 나루의 이름은 정암(鼎巖)이요, 이곳은 두 진영의 요충지였습니다. 번개처럼 나타나 싸움이 무르익자 적을 유인하여 섬멸하니, 살아남아 빠져나간 자가 없었습니다. 열일곱 명의 장수와 이천 명의 병사가 그러하였고, 하물며 날개 돋친 호랑이(翼虎, 김덕령) 또한 정암의 막사에 있었습니다. 강물은 붉게 물들고 준마는 힘차게 뛰어올랐습니다. 낙동강 좌우에서 수백 번의 전투를 치렀으나 외로운 군대는 꺾이지 않고 적의 공격을 막아내었습니다. 육군과 수군의 공이 같았으니, 충익공이 계셨기에 영남과 호남의 산과 호수가 평온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정유년에 다시 난리가 났을 때, 군대를 해산하고 어머님의 상(喪)을 받들었습니다. 아득한 울산 바다에서 속된 일을 멀리하고 재능을 감추셨습니다. 난리의 기운이 잦아들려 할 때 세상일은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듯 변하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전사하고, 익호 김덕령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의 명장들 가운데 공께서는 오직 살아남으셨습니다. 서북의 요충지를 지키다 나이와 병으로 물러나, 솔잎과 곡식을 먹으며 인간 세상과 관계를 끊으셨습니다. 이로써 저 무고한 죄에 연루되는 것을 면하셨으니, 이는 마치 한나라의 장자방과 같은 고결한 풍모였습니다.
밝은 유학자로서 사필(史筆)에 일컬어지기를, 이 어른은 삼한의 혈기 있는 이라면 누구나 그 공을 안 지 오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고향의 작은 비석과 사당이 기강의 위, 지산의 곁에 있으니, 충익공의 위대한 공훈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기에 이를 기록하여 밝히 드러내고 잊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중간에 일제 강점기에는 정의가 있었으나 막힘이 있었고, 유신의 모임 때는 어찌 그리도 무너지고 허물어졌는지요.
여섯 번의 갑자가 돌아 다시 임진년을 맞이하여, 공의 큰 덕을 추모하니 겨울 날씨가 봄처럼 따뜻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모여 절하니 식장은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어찌 다만 그뿐이겠습니까. 학문에는 깊은 연원이 있으니, 경(敬)과 의(義)를 몸소 실천하신 것은 조식(曺植) 문하에서 나온 것입니다. 빛나는 공업은 불꽃처럼 밝았습니다.
그 생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지혜로운 생각으로 앞날을 내다보셨으니, 큰 기러기가 아득히 먼 하늘로 날아가니 사냥꾼이 어찌 잡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하고 꿈에서도 놀랍니다. 이 땅의 어느 집안 조상인들 어찌 선생의 은혜를 입지 않았겠습니까. 제물을 차리고 술잔을 기울여 선생께 제를 올리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이는 슬퍼서가 아니라 공의 위업에 감격해서입니다. 천지가 근심하고 초목이 슬픔을 머금은 듯합니다.
지금 또 동서로 나뉘어 어지러우니, 자제들의 근심이 파도처럼 천만 갈래입니다. 지난날 선생께서 지하에서 혹 생각하시어 강과 하늘을 바라보시며 평화롭고 고요한 사막을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땅이 사람으로 인해 이름나니, 기강의 소리는 만고에 흐릅니다. 정령이 오셨거든 저 단풍나무 숲에서 증험하소서. 지금 사람과 옛사람이 어찌 마음이 다르겠습니까.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흐르니, 선생의 풍모를 가슴 가득 담아봅니다.
아! 슬프고 감격스럽습니다. 바라옵건대 흠향하시옵소서.
『遯嵒遺稿 돈암유고』_성영태成榮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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