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향교와 뿌리

창원향교_군용철도 반대 서명

천부인권 2025. 10. 5. 07:58

 

昌原郡士林安琦錫金思百金鎬源等謹齋沐上書于

監理閣下 伏以車書所到 孰不尊尙夫子 地利從便 莫如克諧柛人 何者 今日日人 軍用鉄道之 經始本郡也 標抹於 聖殿前後壓逼之地 闕牌閣與政堂 至近之地 視若 道傍空舍 小無嫌避 生等 耳聞目格 心寒膽碎 寧欲毁冕裂裳 溘死無知 而窃伏念 我國五百年 扶植禮義 萬國之所敬者 彼下執事雖迷然不省 彼亦尊 聖學講禮讓之國也 我國 從政者與 彼國領事者 論理講好 格之以忠信 則彼必幡然改悟 宜有従便移標之端 而見今本郡之事勢 本倅 尙未還衙 署理亦不莅邑 此際此務之所關 異譯之交接 閣下 今當之矣 生等之瀝血恳陳 不但守義慕 聖之一端 亦 閣下 奉命綏遠之一大政敎也 玆以冒萬死仰陳大槩

閣下 黙諒而裁擇焉

甲辰八月日

曺秉翼 金思珉 盧鍾泰 金宗鎭 金沃元 李炳林 等 後安寅錫

 

창원향교_군용철도 반대 서명

창원군(昌原郡)의 사림(士林) 안기석(安琦錫), 김사백(金思百), 김호원(金鎬源) 등이 삼가 재계하고 목욕하고 감리(監理) 각하께 글을 올립니다.

엎드려 아뢰옵니다. 수레와 글이 미치는 곳이라면 어디엔들 성인(夫子)의 가르침을 존숭하지 않겠습니까. 지리(地利)의 편리함을 따르는 것이 신()과 사람을 화합시키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어찌된 일인고 하니,

오늘날 일본인들이 군용 철도를 우리 군()에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성전(聖殿)의 앞뒤를 압박하는 땅에 표목(標木)을 설치하고 궐패각(闕牌閣)과 정당(政堂)에 지극히 가까운 곳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를 길가의 빈집처럼 보아 조금도 꺼리고 피하는 기색이 없으니, 저희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목격하매 마음이 서늘해지고 간담이 부서져 차라리 관을 부수고 의복을 찢으며 갑자기 죽어 아무것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엎드려 생각하건대, 우리나라는 500년간 예의(禮義)를 길러와 세계 모든 나라가 공경하는 바이며, 저들 아랫사람들이 비록 어리석어 살피지 못한다 하나 저들 또한 성인의 학문을 존중하고 예와 겸양을 강론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사를 맡은 분께서 저들 나라의 영사(領事)와 더불어 논리적으로 잘 이야기하고 충성과 신의로써 타이른다면, 저들 또한 반드시 생각을 바꾸어 깨닫고 마땅히 표목을 편리한 곳으로 옮기는 실마리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군의 형편을 보면, 본래의 수령(本倅)은 아직 관아로 돌아오지 않았고 대리인(署理) 또한 읍에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통역을 통해 교섭해야 하는 이 일의 책임은 각하께서 마땅히 맡으셔야 할 것입니다. 저희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아뢰는 것은, 단지 의리를 지키고 성현을 사모하는 일단의 마음에서뿐만 아니라, 이 또한 각하께서 왕명을 받들어 먼 곳을 안정시켜야 하는 큰 정치와 가르침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만 번 죽을 것을 무릅쓰고 대강의 사정을 우러러 아뢰오니, 각하께서는 깊이 헤아리시어 결정하여 주시옵소서.

갑진년(1904) 8월 어느 날

조병익(曺秉翼), 김사민(金思珉), 노종태(盧鍾泰), 김종진(金宗鎭), 김옥원(金沃元), 이병림(李炳林) 등 올림

후에 안인석(安寅錫)이 이름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