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조선(朝鮮) 통신사(通信使)

천부인권 2026. 8. 19. 20:52

2026.4.7.대마도 통신사박물관 한글 안내

 

201710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에 관한 기록 111건과 333점이 등재된다. 이는 “NPO법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와 부산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신청한 한국(63124)과 일본(48209)의 자료를 높이 평가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에 파견한 '일본 국왕사'의 일본과 맞추기 위해 후대 매국노가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라고 부르고 있을 뿐 정확한 당대의 공식 명칭은 그냥 通信使(통신사), 조선 시대에 '조선 통신사'라는 호칭을 조선 측이 스스로 쓴 적은 전혀 없었다.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라는 명칭을 가지고 일본 극우들은 조선이 조공을 바쳤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다.

 

2026.4.7.대마도 통신사박물관 한글 안내

 

통신사(通信使)의 교류는 임진왜란 이전 무로마치 막부 시절에는 딱히 규칙을 정해놓지 않고 몇 번 오갔고, 오닌의 난 이후 일본 전역이 전란에 빠지면서 중앙 정부가 지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우치 등 지방 다이묘가 따로 조선에 공물을 바치고 교류하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해 전국 시대를 끝내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직후에는 당연히 일본과 외교가 단절됐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사절단이 일본 각지로 70번가량 방문했다.

임진왜란 이후 160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우리 신막부 정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도 아니고 임진왜란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오"라고 언급을 하며, 국교 재개를 꾸준히 수차례 요구한 끝에 조선 조정이 이를 받아들여 다시 수교를 재개한다.

에도막부 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通信使)12번이다. 통신사(通信使)의 단절은 영국의 일본 침략을 계기로 끝난다.

 

2026.4.7.대마도 통신사박물관 일본 안내

 

통신사교류사업

 

조선통신사 문화교류사업(조선통신사역사관)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 사절단 통신사의 행렬은 한양에서 에도까지 이어졌으며 조선통신사를 통하여 조선과 일본은 ‘통신(通信)’이란 의미처럼 신의를 나누었다. View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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