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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무안 어변당(魚變堂)-덕연서원(德淵書院)-편액

덕연서원(德淵書院)은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421-2(연상1길 29)에 위치하며,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394에 있는 어변당(魚變堂)의 부속건물로 어변당은 박곤(朴坤, 1370~1454)의 후손들이 1994년 세웠고, 덕연서원(德淵書院)은 어변당 기념사업회(魚變堂 記念事業會)가 1998년 정부(政府)에 건의(建議)하여 국비보조(國費補助)로 건립한 서원이다. 이곳에는 어변당(魚變堂) 박곤(朴坤, 1370~1454)과 종향(從享)으로 임진공신(壬辰功臣) 모우당 박몽룡(慕優堂 朴夢龍), 죽림제 박세용(竹林齊 朴世墉;1685~1773)을 매년 추향(秋享)으로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박곤의 충효쌍전(忠孝雙全)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은 덕연서원(德淵書院)을 창건하면서 당호를 ‘쌍전당(雙全堂)’이라고 붙였고, 덕연..

기장의 금석문(機張의 金石文)

『機張의 金石文』은 2017년 12월 기장문화원을 발행처로 하고 발행인은 기장문화원장 송영우이며, 향토문화연구소장 황구(黃龜)의 감수를 거쳐 발행한 책으로 대훈기획에서 인쇄해 발간했다.권두에 목차를 싣고, 송영우 기장문화원장의 발간사를 붙이고, 노기정 한국수력원자력(주)고리원자력본부장의 축사와 이종봉 부산대학교 사학교수의 서문을 붙인 후 비석들의 사진을 실었다. 목차는 기장읍, 장안읍, 정관읍, 일광면, 철마면, 기타 등으로 실었으며, 편집후기를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이 썼다.『機張의 金石文』은 컬러 양장본으로 원문은 사진과 함께 세로쓰기를 했고, 해설문은 가로쓰기를 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5cm, 세로 28.8cm이고, 502p이다.이 책은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의 배려로 소장..

의령의 금석문화

『의령의 금석문화』는 2015년 12월에 의령문화원을 발행처로 하고 의령향토문화연구소가 발행한 책으로 도서출판 화인이 인쇄해 발간했다.권두에 의령문화원장 허흔도의 「金石文化(금석문화)의 發掘(발굴)과 그 保存(보존)」에 대한 의견을 붙이고, 군수 오영호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찬란하게 빛나기를」과 군의장 오용의 「문화의 흔적과 맥을 찾아 보존·계승하는 문화민족!」, 도의원 이종섭의 「의령의 전통문화가 세계로」, 향토문화연구소장 전보수의 「의령의 금석문화(金石文化)를 내면서」를 붙였고 일러두기를 붙이고, 목차를 실었다.목차는 의령군의 읍면 단위별로 실었는데 의령읍, 가례면, 칠곡면, 대의면, 화정면, 용덕면, 정곡면, 지정면, 낙서면, 부림면, 봉수면, 궁류면, 유곡면의 순으로 실었다.『의령의 금석문화』는 ..

논어(論語)_하루에 한 문장135

子曰 質勝文則野(자왈 질승문즉야)요선생이 말하길 실질 바탕이 꾸민 문제보다 더 나으면 비루한 시골 사람 같고,文勝質則史(문승질즉사)니 반대로 문체가 바탕보다 나으면 문서(文書)나 다루는 고루한 관원[史]과 같을 것이다.文質(문질)이 彬彬然後(빈빈연후)에 君子(군자)니라.문체와 바탕이 고루게 어울려서 조화를 이룬 뒤에라야 비로소 군자라고 할 것이다.

산청군금석문총람(山淸郡金石文總覽)

『山淸郡金石文總覽(산청군금석문총람)』은 1998년 6월에 산청군이 발행하고 「山淸郡金石文編纂委員會(산청군금석문편찬위원회)」의 편집을 거쳐 한림인쇄사가 인쇄해 발간한 책이다.권두에 편집위원장 손성모의 발간사를 붙이고 산청군수의 축간사를 싣고 범례를 실은 후 목차를 붙였다. 목차는 크게 어제문비, 신도비, 정려비, 충효열행비, 선정·시혜·불망비, 사적·기적·기념비, 송덕·공적비, 추모·숭모비, 유허·유적비, 충혼(忠魂)·위령비(慰靈碑), 기타비 등으로 이루어졌다.『山淸郡金石文總覽(산청군금석문총람)』은 양장본이고 세로 글씨의 원문과 해석문을 실었으며, 흑백사진을 실었다. 크기는 가로 19.3cm, 세로 26.3cm이고, 610p이다.이 책은 2023년 3월에 한림인쇄사 손원모 사장의 배려로 소장하게 되었다.

창원 관해정의 가을

합포구 교방동 237은 창원에서 유림들이 선비로써 모습을 갖추게 한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이 노닐며 강학했던 관해정(觀海亭)이 있는 곳이다. 관해정 앞 은행나무는 그의 제자 미수 허목(許穆, 1595년 12월 11일 ~ 1682년 4월 27일)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원 줄기는 자연재해로 파괴되고 현재의 모습은 맹아(萌芽)가 자란 모습이라 한다. 다른 은행나무 보다 단풍이 늦게 들며, 이 은행나무는 1982년 11월 10일 관리번호 12-1-1-8-1호 보호수로 지정 되었으나 창원시의 재원은 엉터리로 기록 되어 있어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은행나무는 총 3그루로 한그루는 독립된 모습이고, 두 그루는 뒤엉켜 있어 그 모습이 한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독립된 한 그루의 가슴높이 둘레..